천변지나 dreaming 115

하루 종일 애썼네(에밀리 브론테1)와 미싱타는 여자들

하루 종일 애썼네 에밀리 브론테(1818∼1848) 나는 하루 종일 애썼으나 고통스럽지 않았어 배움의 금광에서 그리고 지금 다시 저녁이 밀려와 달빛은 부드럽게 반짝이네 눈은 내리지 않았고 바람이나 물결에 서리도 없이 남풍이 여린 소리를 불며 불어와 저 싸늘한 무덤을 흔들었네 밤에 이곳을 돌아다니며 겨울이 사그러지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 여름의 햇살같이 여름의 하늘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오 지금 나를 부드럽게 어르는 평화를 나 잃지 않기를 비록 세월에 따라 내 젊은 얼굴이 변화고 내 이마에 그림자 드리워도 나 자신에게 진실되고 모두에게 진실하여 늘 건강하기를 그래서 열정의 부름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나 자신의 격렬한 의지를 통제할 수 있기를 : 아쿠마린 하늘빛, 그 크레파스의 하늘색, 바람부는 초록의 언..

20220207 #LETTER 1. 더 다정한 희망을 불러본다.

20220207 #LETTER 1. 더 다정한 희망을 불러본다. 안녕! H, 허리수술을 하고 회복하고 있다는 H의 소식,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 핸드폰너머로 전해지는 맑은 목소리가 반가웠어. 힘겨운 수술이었을텐데. 통증이 사라진 것만으로 견딜만하다니 얼마나 아팠을까 싶었어. 몸조리 잘하고 퇴원과 재활도 잘 되길 응원할게. 늦은 밤, 꼭 읽어야할 독서모임 준비 숙제를 미루고, 방안에서 방황하다 해찰하며 펼쳐든 시집, 에밀리 브론테의 시를 읽다가, 위로의 편지로 2022년의 인사를 전해. 상상력에게 에밀리 브론테(1818-1848) 긴 하루의 근심과, 아픔에서 아픔으로 세상 변하는 것에 지쳤을 때, 길을 잃어 절망에 빠지려 할 때, 그대의 다정한 음성이 나를 다시 부른다. 오, 나의 진실한 친구여. 나는 ..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에밀리 디킨슨 9)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에밀리 디킨슨 (1830∼1886)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 그 크기는 그 파멸의 무덤애 들어가서 재는 대로 추측할 뿐 - 고독의 가장 무서운 경종은 스스로 보고는 - 스스로 앞에서 멸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 -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는 동안 - 공포는 결코 보이지 않은 채 - 어둠에 싸여 있다 - 끊어진 의식으로 - 하여 굳게 잠가진 존재 - 이야말로 내가 두려워하는 –고독- 영혼의 창조자 고독의 동굴, 고독의 회랑(回廊)은 밝고도 –캄캄하다- :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자 페미니스트인 에드리언 리치는 “자신이 특출하다는 점과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던 에밀리 디킨슨의 은둔은 그녀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었다” 고 했다. 누구나 자신답게..

그가 값진 언어를 먹고 마시더니 (에밀리 디킨슨 8)

그가 값진 언어를 먹고 마시더니 에밀리 디킨슨(1830∼1886) 그가 값진 언어를 - 먹고 마시더니 정신이 튼튼해졌다 -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 정도만 기껏해야 알고 있었고 자신의 액자는 먼지에 불가하다는 것도 - 우중중한 날에 춤을 췄고 날개가 준 이 유산은 오직 책 한 권 - 느긋한 정신이 가져다 준 이런 자유 - : 이런 자유, 좋다. 좋아한다. 에밀리의 집에는 커다란 서재가 있었는데, 그녀는 아버지의 서재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계를 엿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점점 은둔자가 되어 외부세계와 외부현실에 대한 관심을 잃어 간다. 24세가 될 무렵에는 가족들에게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단다. 일평생 정신의 여행만으로도 충분히 자유로웠을 시인. 1800여편의 유산을 남긴 그녀로 인해 오늘 같은..

여행 (사이토 마리코 3)

여행 사이토 마리코 마음이 말의 몸이고 말이 마음의 몸이고 몸은 마음의 말이다 타는 말 멀리 와서 멀리 돌아간다 : 주말엔 서울에서 놀러 온 후배들과 처음으로 딕싯 DiXit 보드게임을 해 보았다. 라틴어로 ‘그는 말했다’라는 뜻이라는 카드를 이용한 이야기 게임이다. 그림카드에 대한 질문과 이야기를 통해 보드판의 토끼들이 경주한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 만화의 한 장면이 ‘찰칵’ 그려진 일종의 투사검사지인 셈이다. 질문과 더불어 지금 이 순간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말을 통해 마음을 말하는-를 통해 과거현재미래의 마음을 여행하는 게임이다. 20년의 인연의 강을 거슬러 가 서로의 삶을 추억하고, 현재의 엿보기도 하고, 10년 후의 지금 이맘때 쯤의 우리를 그려보기도 하고, 함께 한 ‘감..

지뢰 (사이토 마리코 2)

지뢰 사이토 마리코 상처가 가장 맥박 치고 상처가 가장 살아 있다 상처가 가장 기다리고 있다 자기를 밟아주는 꿈이 오기를 : 시인은 꿈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나는 내안의 요동치는 지뢰들을 밟아주는 루틴을 맞이하고 절하는 중이다. 지난 해부터 아침루틴으로 해맞이 자세(요가동작)와 절하기 8배(108배 대신)를 하고 있다. 세월이 주는 힘인지, 50이라는 나이가 주는 지혜로운 낙담과 체념인지, 팬데믹 하늘아래에서는 지나간 상처마저도 애잔하다. : 사이토 마리코는 시인, 번역가로 고고학을 공부하고, 한일 학생모임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1983년부터 시집을 발표하고 1990년 첫 시집 를 출간했다. 1991년 한국에 유학을 와 한국어로 시집을 발간하고, 2014년부터 , 등 한국의 문학작품 등을 번..

서시 (사이토 마리코 1)

서시 사이토 마리코 커다란 나무는 그대로 한 권의 역사책이다. 잎사귀 하나하나가 한 페이지며 해마다 새로 쓰여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 책, 하루 종일 바람이 읽고 있다. 가끔 언더라인한다. : 나는 빼곡한 숲 한가운데 있다.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 찬 서재에 있으니 말이다. 월마다 날마다 새로운 나무를 찾고 방안의 숲을 울창하게 한다. 밀림이 되어버린 방, 책으로 집을 짓고 종종 간식(알라굿즈)으로 소소한 기쁨을 누린다. 시인처럼 가끔이 아닌 잦은 언더라인 때문에 숲속에 갇혔다.

밑바닥까지 (지니이다 니꼴라예브나 기삐우스)

밑바닥까지 지니이다 니꼴라예브나 기삐우스(1869∼1945) 너를 환영한다, 나의 패배여, 너와 승리를 나는 똑같이 사랑한다. 내 오만의 밑바닥에는 겸손이 깃들어 있고, 기쁨과 고통은 언제나 하나이므로. 고요 속에 잦아든 물결 위로 저녁 빛이 환한데, 도처에 안개가 서성인다. 그렇게 최후의 잔인함 속에는 무한한 다정함이, 신의 진실 속에는 가만이 숨어 있는 법. 나는 나의 한없는 절망을 사랑한다. 기쁨은 최후의 한방울 속에 주어지므로 지금 내가 아는 확실한 한가지는 모든 잔은 밑바닥까지 비워야 한다는 것. : 어느 때부터인가 인생사 안달복달하는 것보다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나를 본다. 매번 현명한 멈춤(잠시 멈춤)과 호시우행虎視牛行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적절한 시작을 결정하기란 쉽지..

고통에는 빈칸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에밀리 디킨슨 7)

고통에는 – 빈칸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에밀리 디킨슨(1830∼1886) 고통에는 – 빈칸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 그것이 시작되었던 때 – 아니 그것이 없던 때가 있긴 했는지 - 그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에게는 미래가 없다 – 그 자체뿐 - 그것의 무한 영역에 들어있는 그것의 과거 – 깨닫고 인식하는 새로운 주기의 – 고통 : 12월 연말 아주 가깝지도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는 후배 지인이 요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제는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지난 초겨울 스쳐가며 인사할 때 반짝이는 눈동자위로 손뜨개질한 빨간 모자를 쓴 얼굴이 떠오른다. 지인은 암으로 인해 근 10년 넘게 치료와 재발과 치료를 반복하고 있다. 몇 해 전에 재발이 반복되기 전에 후배에게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In..

작은 말 한마디 흘러 넘쳐, 이렇게 명랑한 꽃 한송이 (에밀리 디킨슨 6)

작은 말 한마디 넘쳐흘러 에밀리 디킨슨(1830∼1886) 작은 말 한마디 넘쳐흘러 듣는 이는 누구나 추측했다 열정이라고, 또는 눈물이라고,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흘러, 전통이 성숙하여 쇠퇴하니, 웅변인 듯하다 - 이렇게 명랑한 꽃 한 송이에 에밀리 디킨슨(1830∼1886) 이렇게 명랑한 꽃 한송이에 마음을 빼앗겼으니 비통한 마음 이었다 - 그렇다면 – 아름다움은 고통인가? 전통은 알아야 한다 - : 에밀리의 시집을 골라 옮긴 박혜란은 ”백년도 훨씬 전 그것도 미국 시인인데 요즘도 읽으 만 합니까?“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시가 읽을 만하다는 것은 ”시인이라는 발화의 주체가 시를 쓴 순간이 아닌 발화 이후 시를 인식하고 사유하는 언어의 주체와 시가 조우하는 순간 작동한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는 읽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