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는 – 빈칸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에밀리 디킨슨(1830∼1886)
고통에는 – 빈칸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
그것이 시작되었던 때 – 아니
그것이 없던 때가 있긴 했는지 -
그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에게는 미래가 없다 – 그 자체뿐 -
그것의 무한 영역에 들어있는
그것의 과거 – 깨닫고 인식하는
새로운 주기의 – 고통
: 12월 연말 아주 가깝지도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는 후배 지인이 요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제는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지난 초겨울 스쳐가며 인사할 때 반짝이는 눈동자위로 손뜨개질한 빨간 모자를 쓴 얼굴이 떠오른다. 지인은 암으로 인해 근 10년 넘게 치료와 재발과 치료를 반복하고 있다. 몇 해 전에 재발이 반복되기 전에 후배에게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Invictus’써서 보내 적이 있다.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신들이 어떻게 하든지
정복되지 않는 내 영혼에 감사한다
잔인하게 쓰러진 상황에서
나는 움츠러들지도 소리내어 울지도 않으리
내 머리에 피가 나도록 내리치는 위협에도
나는 굽히지 않으리
분노와 비탄 너머에
어둠과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
문이 좁은 것은 중요치 않다
어떤 벌도 문제되지 않는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 끝이지 보이지 않는,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 우리의 운명과 영혼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고통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봄이 오면 지인의 반짝이는 장난기 가득한 눈동자를 다시 마주보고 싶다. 힘내길 바라며 마음을 담아 보낸다.
'천변지나 dreaming > 음미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시 (사이토 마리코 1) (0) | 2022.01.24 |
---|---|
밑바닥까지 (지니이다 니꼴라예브나 기삐우스) (0) | 2022.01.23 |
작은 말 한마디 흘러 넘쳐, 이렇게 명랑한 꽃 한송이 (에밀리 디킨슨 6) (0) | 2022.01.21 |
마녀에는 계보가 없다 (에밀리 디킨슨 5) (0) | 2022.01.21 |
아침이 전보다 순해졌다 (에밀리 디킨슨 4) (0) | 2022.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