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까지
지니이다 니꼴라예브나 기삐우스(1869∼1945)
너를 환영한다, 나의 패배여,
너와 승리를 나는 똑같이 사랑한다.
내 오만의 밑바닥에는 겸손이 깃들어 있고,
기쁨과 고통은 언제나 하나이므로.
고요 속에 잦아든 물결 위로
저녁 빛이 환한데, 도처에 안개가 서성인다.
그렇게 최후의 잔인함 속에는 무한한 다정함이,
신의 진실 속에는 가만이 숨어 있는 법.
나는 나의 한없는 절망을 사랑한다.
기쁨은 최후의 한방울 속에 주어지므로
지금 내가 아는 확실한 한가지는
모든 잔은 밑바닥까지 비워야 한다는 것.
: 어느 때부터인가 인생사 안달복달하는 것보다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나를 본다. 매번 현명한 멈춤(잠시 멈춤)과 호시우행虎視牛行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적절한 시작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작년 한해 동안 블러그를 이용, 글쓰기 훈련으로 후배와 편지를 왕래했는데, 그 글을 엮어 책자를 만들기로 했는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뭔가 계속 제동이 걸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말이다. 불편한 마음이 주말 내내 함께한다. 가만히 마음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다정함이 필요한 때인가.
패배와 승리, 오만과 겸손, 기쁨과 고통, 사랑과 고요, 잔인함과 무한한 다정한, 절망과 기쁨, 밑바닥까지 비워야 한다는 것.
: 지니이다 니꼴라예브나 기삐우스(1869∼1945)
러시아에서 기삐우스의 시는 현대시의 첫페이지를 여는 시인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녀는 지방 도시에 태어나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고 어릴 적부터 도서와 습작을 통해 스스로 시작을 하고 시인으로 성장한다. 그녀의 시는 당대의 보편주의적 인도주의 문학에서 벗어나 주관적이고 내밀한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하고 몰입하는 시세계를 보여준다. 그녀는 예리한 비평과 퍼포먼스 등 시뿐만 아니라 독특한 개성-여성성과 남성성의 카리스마로 남장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거나, 퇴폐적인 마돈나, 마녀 등등 불리며–으로 시대를 풍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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