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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사이토 마리코 2)

지뢰 사이토 마리코 상처가 가장 맥박 치고 상처가 가장 살아 있다 상처가 가장 기다리고 있다 자기를 밟아주는 꿈이 오기를 : 시인은 꿈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나는 내안의 요동치는 지뢰들을 밟아주는 루틴을 맞이하고 절하는 중이다. 지난 해부터 아침루틴으로 해맞이 자세(요가동작)와 절하기 8배(108배 대신)를 하고 있다. 세월이 주는 힘인지, 50이라는 나이가 주는 지혜로운 낙담과 체념인지, 팬데믹 하늘아래에서는 지나간 상처마저도 애잔하다. : 사이토 마리코는 시인, 번역가로 고고학을 공부하고, 한일 학생모임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1983년부터 시집을 발표하고 1990년 첫 시집 를 출간했다. 1991년 한국에 유학을 와 한국어로 시집을 발간하고, 2014년부터 , 등 한국의 문학작품 등을 번..

서시 (사이토 마리코 1)

서시 사이토 마리코 커다란 나무는 그대로 한 권의 역사책이다. 잎사귀 하나하나가 한 페이지며 해마다 새로 쓰여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 책, 하루 종일 바람이 읽고 있다. 가끔 언더라인한다. : 나는 빼곡한 숲 한가운데 있다.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 찬 서재에 있으니 말이다. 월마다 날마다 새로운 나무를 찾고 방안의 숲을 울창하게 한다. 밀림이 되어버린 방, 책으로 집을 짓고 종종 간식(알라굿즈)으로 소소한 기쁨을 누린다. 시인처럼 가끔이 아닌 잦은 언더라인 때문에 숲속에 갇혔다.

밑바닥까지 (지니이다 니꼴라예브나 기삐우스)

밑바닥까지 지니이다 니꼴라예브나 기삐우스(1869∼1945) 너를 환영한다, 나의 패배여, 너와 승리를 나는 똑같이 사랑한다. 내 오만의 밑바닥에는 겸손이 깃들어 있고, 기쁨과 고통은 언제나 하나이므로. 고요 속에 잦아든 물결 위로 저녁 빛이 환한데, 도처에 안개가 서성인다. 그렇게 최후의 잔인함 속에는 무한한 다정함이, 신의 진실 속에는 가만이 숨어 있는 법. 나는 나의 한없는 절망을 사랑한다. 기쁨은 최후의 한방울 속에 주어지므로 지금 내가 아는 확실한 한가지는 모든 잔은 밑바닥까지 비워야 한다는 것. : 어느 때부터인가 인생사 안달복달하는 것보다는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받아들이려고 하는 나를 본다. 매번 현명한 멈춤(잠시 멈춤)과 호시우행虎視牛行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적절한 시작을 결정하기란 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