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존재하기 : 천변레이스를 소개합니다.
• 이번주 러닝 총 26k
월 8월 3일 월 8k 나이트러닝
수 8월 5일 수 10k 아침 러닝
월 8월 13일 수 8k 아침 러닝
근 일주일만에 달린 날이다. 집중호우와 긴 장마로 인해 천변이 몸살을 앓고 나무들이 뿌리채 떠내려 다니고, 진흙이 가득하다. 한동안 쓰레기와 진흙의 잔해들을 헤치면서 달릴 것이다. 전주에 내려와 천변이 넘치고, 홍수를 처음 접했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자연의 반격과 보복, 기후위기...
나의 천변레이스를 달리다보면 다리를 3개를 지나게 된다. 그날의 컨디션과 날씨에 따라 1.5K 지점의 삼천교, 3.5K 지점의 신평교. 6K 지점의 원당교를 반환점으로 이용한다. 출발지점을 기준으로 총 12k를 달리게 된다. 집에서 출발할 때 삼천교까지는 워밍업으로 가볍게 걸으면서 달리기 엔진을 가동한다. 매번 달리기를 시작할 때마다, 몸의 무게를 가장 많이 느끼는 워밍업 레이스다. 머릿속으로 매번 어디까지 뛸지 ? 가늠한다. 조금만 뛰고 싶은 유혹도 느끼기도 하고 비장한 장거리 러닝을 상상하기도 한다. 삼천교까지의 러닝은 전형적인 도심속의 레이스 천변(강변)아파트 숲사이로 달리는 것이다. 도심의 나이트 레이스의 불빛과 조명이 화려하다. 우주선이 막 하늘로 오르는 모양의 삼천교의 조형물과 교각의 화려한 조명쇼도 일품이다. 시티러닝의 맛을 느끼는 구간이다. 아스팔트와 빌딩사이로 달리는 대도시의 시티러닝이 아니라 가지런한 빌딩을 끼고 달리는 소도시의 러닝이다.
삼천교을 지나 신평교까지의 두 번째 다리는 걷기족들이 선호하고 애용하는 구간이라 인기가 많다. 강둑을 따라 왼편은 논밭과 산들이 보이고 오른변은 천변이 펼쳐진다. 도심이 아니라 도농복합지역 저멀리 도시의 아파트들이 사라지는 여유로운 걷기레이스가 펼쳐진다. 벚꽃 가로수가 장관이다. 올해 4월 코로나속에 조용히 화려하게 몰래핀 벚꽃길. 왕벚꽃 가로수가 어여쁜 길. 걸어도 달려도 좋고, 자전거를 타고 가도 좋아 늘 사람들이 많다. 난 주로 건너편 천변을 이용하는 편이다. 요즘 같이 건널 수 없을 때는 늦은 밤이나 새벽,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이 레이스에는 운치있는 ‘시’ 찻집이 있다. 시집-책모양의 직사각형 건물, 큰 창문에 비친 천변의 풍경이 시가 된다. 꼭 들어가 차를 한잔 마시지 않아도 마신 것 같은 찻집, 가을밤 낙엽에, 겨울밤 소복히 싸인 눈송이, 여름밤 달빛을 담는 시집찻집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림책 책장을 넘기는 것 같다. 특히 개인적으로 시집찻집 마당에는 내가 좋아하는 짚차 흰색 레니게이드가 서있어 낭만적이다. 영화속 한 장면처럼 여행자들의 모험과 운치를 닮은 주인장의 차(자동차).
시집찻집을 지나면 몸이 달리기로 슬슬 가벼워지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적당히 땀이 흐르고 달리기 좋다. 신평교도 가까워보이고 저멀리 모악산도 손짓하고 ‘러너스 하이 또는 러닝하이’가 시작된다. 달려도 지치지 않고 계속 달릴 것 같은, 즐거운 중독의 달리기, 러닝하이.
신평교의 바람에 사르르 녹는다. 신평교는 천변레이스 중 가장 시원한 곳이다. 양옆으로 확 트인 들녘과 모악산 자락이 한눈에 펼쳐진다. 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모악산 자락을 훑어본다. 바람과 함께 산이 내안으로 들어온다. 산이 나무처럼 내몸에 심어지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산을 보면 기운이 난다. 작년 백두대간종주를 하는 50일 동안에 내 몸에 새겨진 산들, 눈을 감으면 어느새 끝없이 이어진 푸른 산위에 있다. 백두대간종주가 준 선물-언제, 어느 곳에서든 눈을 감으면 난 산속에 있게 되었다. 신평교에서 눈을 감고 바람에 나를 씻는다.
신평교에서 3k 더 가면 반환점 원당교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레이스다. 천변의 저수지를 지나고 한적한 농촌, 시골마을과 논밭이 펼쳐진다. 어릴 적 남도의 풍요로운 들판과 드문드문 보이는 작은 마을들 정겨운 풍경이다. 천변의 강폭은 넓어지고 모악산이 가까워진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저수지의 물소리를 들으려 이곳에 달려간다. 쏫아지는 포발을 보며 또는 물속에 노니는 한가로운 백로들, 쑥쑥크는 들꽃들의 꽃잔치로 여름 견딘다.
원당교까지는 러너들이 좋아하는 레이스일 것이다. 가로등이 없기에 달빛과 함께 하는 날은 그지없이 아름다운 레이스가 펼쳐진다. 또한 날이 좋은 날은 별빛이 쏟아진다. 지난 여름 반딧불이와 함께 하는 날, 하늘의 별과 땅위의 별빛이 가득하고 별을 차면서 달렸다. 잊지 못할 레이스였다. 원당교 근처에는 불루베리 농장과 복숭아 과수원이 많은 곳이다. 4월 복사꽃이 가득한 날, 흰고 반짝이는 분홍빛 꽃구름사이로 달리는 비현실적인 러너. 또한 이곳은 캣맘들이 함께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타고 온 다정한 캣맘들이 냥이들을 정성껏 돌보고 있는 곳이다. 냥이들의 나른한 일상과 행복한 몸짓을 보면서 달릴 수 있는 레이스다. 원당교 반환점을 돌아 신평교, 삼천교를 지나 집으로...
지난 주 내내 클라이밍으로 인해 고질병인 그전부터 발목염좌/ 인대파열, 연골손상이 있어, 평상시에도 운동후 왼쪽 발목에 물이 차 올라 1-2일이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온다. 그런데 3일이 지나도 붙기가 심해 결국 치료를 받게 되었다. 역시 노화로 인해 회복력이 늦어지는 것을 확인했고 장마철 (낮은)기압차로 인한 관절, 인대의 결림과 시큰거림, 재생이 늦어지는 것이란다. 신체의 노화는 슬프고, 체념이 하나둘 늘어가는 것. 김애란 소설 ⌜어느 밤⌟의 한귀절 “ 삶이 애잔하고 늚음이 허무하다 ” 주인공 할머니처럼 정갈하게 늙고 싶은데... 사금파리 같은 삶의 비의가 몸으로 시작되나 보다. 내몸과 시간이 어긋나, 몸의 시계가 망가지는 나이가 50대인가 보다.
50대의 레이스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말이다.
아 .... 에라모르겠다.
달리기로 50의 시작을 탕진할까부다! 10월 경포마라톤대회를 접수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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