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존재하기/달리기와 존재하기

달리기와 존재하기 9- 달려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의 거스러미

지산22 2020. 7. 13. 15:49

달려도 사라지지 않은 마음의 거스러미

 

이번주 러닝 총 35k

76일 자전거타기 1시간

7710k 아침러닝

78일 자전거타기 1시간

79일 아침 러닝 12k

710일 모악산 산행과 마실길 걷기 12k

71213k 아침러닝 (LSD)

 

장마인 듯 아닌 듯, 이상기후로 징검다리처럼 하루걸러 하루 비가 내리고 있다. 이른 아침 베란다 창문너머 모악산자락이 비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날이 연일 지속되고 있다. 결국 달리기를 하러 나가게 될 것이면서도 매일 매순간 망설이는 나약한 인간이 바로 나다. 심형래의 오래전 고전 코미디의 한귀절처럼 달릴까말까망설임을 나름대로 최소화하기 위해서 전날 운동복, 운동화를 준비해 놓고서도 막상 싣고 달리기까지 망설임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리기의 마지막 레이스의 결승점의 희열을 만끽하는 즐거움을 좋아하면서도 번뇌와 잡념의 나약함이라니.... 언젠가 SF소설모임에서의 주제인 인간과 인공지능로봇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에서 나온 인간의 나약함과 모순에 대하여가 떠오른다. 인간의 감정까지 데이터화되어 인공지능이 장착하게 되는데 로봇이 범인간보다 더 사고력과 창조력이 생기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인간만이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인가 ? 바로 나의 대답은 인간의 나약함과 모순그리고 이라고나 할까 ?였다. 이번 주는 바로 그 나약함과 모순으로 인해 마음이 시끄러웠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속에 돌멩이 서너개가 부딪치면서 내는 시끄러운 소리처럼....

 

하나는,

신기하게도 달리러 갈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에는 걸리지 않은 것이 걸려 지체하게 된다. 화요일 아침 5시반 일어나 운동복을 입고, 운동화를 싣고 나가는데 왼쪽 2번째 검지 손톱옆 거스러미가 일어있었다, 이미 운동화 끈을 꽉 묶어 신었다. 하필 이때 거스러미를 이미 인지해버렸다. 손톱깍이로 깍고 나가야 하는데....하면서 귀찮아 그냥 지나쳐 나갔다. 천변 내내 달리면서도 그 거스러미가 점점 거슬린다. 왼손으로3번째 손으로 자꾸 확인하고 신경쓰면서 달린다. 신경쓰고 싶지 않는데도... 천변의 여름바람도 개망초도 금계국도 새들도 눈칫밥을 먹고 자라는 거스러미에 밀려 뒤전이다. 점점 마음이 꼬인다. 그 작디작은 거스러미 하나가 아침러닝에 걸림돌이 되어, 달리기의 몰입의 즐거움과 천변아침풍경을 앚아간다. 이 상태에서 억지로 거스러미를 뜯으면 피가나고, 붓고 탈이 나서 번거롭게 된다. 신경쓰지말자. 달리자 마만의 페이스로 스스로에게 어르고 달레면서 거스러미가 10K 레이스보다 더 무섭다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꼬인마음이 펴지지 않는다. 이 작디작은 손톱의 눈칫밥 거스러미하나에게도 어쩌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니... 손톱 곁의 작디작은 거스러미가 아니라 마음의 거스러미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달리게 되었다. 최근의 마음의 거스러미라.....무척이나 부러웠지만 꼬인마음 때문에 친구의 일을 함께 기뻐해주지 못한 일이 떠올랐다. 질투없는 마음, 비틀림없이 환하게 밝혀 축하하며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지지와 응원을 해 주고 싶은데 말이다. 내 마음의 거스러미 때문에 가까운 지인과 친구가 멀어지게 느낄 때가 있다. 더 나아가면 샤덴 (고통) 프로이테(기쁨)’ 못난 마음이다. ()의 출발이 될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만의 페이스로 달리고 내삶의 걸림돌의 이유를 타인에게 찾는다고나 할까? 거스러미를 제때 자르지 않고 게을러 레이스전체를 망치지 말아야 하는데...달리다보니 순간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마음의 거스러미가 꼬인마음을 알게 하는구나. 어느 덧 원당교 반환점이다. 반환점부터는 꼬인마음을 거스러미를 제때 자르고 기쁨을 함께 누리는 삶을 살아야지.... 축복과 응원의 레이스를 달리자구.

 

두 번째는

박원순 서울 시장의 죽음에 대한 단상이다. 광주지역의 코로나지역사회확산으로 인해 강좌가 잠정적으로 연기되거나 대면 강좌가 어떻게 될지 예측불허다. 프리랜서의 삶이 풍전등화다. 지난 주 한주 2회 강좌를 쉬고 이번 주 강좌를 목요일 소그룹(6명이하)으로 나누어 힘겹게 진행한다. 힐링타로심리치유를 주제로 한 9일 저녁 3시간 강좌인데 쉬는 시간에 수강생 중 누군가 박원순 서울시장 실종신고 ... 행방불명... 성추행고소사건으로....연락두절 기사를 검색하고 이야기한다.

 

수강생 1 : 뭔일이야 ? 매번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

수강생 2 : 진짜야 ? 누군가 짜고 하는 거 아니야 ? 고소한 피해자가 누구야? 비서라는데 ? 미투가 무섭네.

수강생 3 : 박원순 마저, 놀랍지도 않다. 안희정에 이어 진보에는 젠더감수성이 없구, 끝이없구나 !

수강생 4 : 그래도 박원순인데 그럴 리가 ? 진짜 그랬다고

수강생 5 : 또 자살하는 거 아니야, 넘 무책임하게 하는 것 아닌가 ? 떳떳하게 밝히고 죄 지은 것 있으면 벌을 받고 해야지, 뭐야 ? 이렇게 밖에 못해

수강생 6 : 실종 ? 자살하는 거 아니야 ? 진짜 뭐 있는 거야 ?

 

난 사건자체가 당혹스러웠지만, 담담히 받아들이는 나를 발견했다. 수강생들을 진정시키고, 사실확인 더불어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한 주의를 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난 진보진영안의 남성들에 대한 신뢰가 없다. 고 박원순시장-평소 그의 말과 실천의 모순을 떠올리며 허약한 시민운동과 진보세력의 민낯을 다시 확인하고 슬픈심정-비애를 느낀다. 허무함까지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한가 ? 잠시 그의 무책임함에 화가 나고, 바람빠진 풍선처럼 화가 증발하고 나니 어이없고 허탈감이 몰려온다)

 

박원순 시장의 소식은 온라인에서는 실시간으로 온갖 뉴스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그의 자살이 알려지고 성추행 고소사건이 접수되었으며, 이에대한 대책회의가 진행되었고, 그의 유서가 발견되고, 서울시장에 대한 추모와 애도의 형식을 놓고 장례절차, 문상 등 찬반진영, 고소인에 대한 2차가해 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칼날이 오고가고 있다. 마음의 거스러미가 인다. 손톱깍이로 잘라지지도 않는다. 마음이 시끄럽다.

 

80년 후반 선배들과 함께 대학을 다닌 나, 운동권내 독자여성조직을 꾸리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안희정과 같은 진보마초들때문이었다. 민주주의와 통일과 노동이라는 진보의 내용과 실천에는 가부장제와 여성차별의 악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여성과 약자에 차별을 당연시하며 자신들이 행하는 권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그들을 보며 좌절하고 등을 돌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힘들었으나, 가끔 힘을 주는 선배들은 진보마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성선배들의 지원이었다. 그녀들은 진보마초들과 숨을 쉬고 조직에 익숙해져 있지만 평등에 대한 꿈을 꾸며 후배(여성)들의 세상을 열게 하고자 발판을 만들며 지원하는 장을 만들어 주고자, 넗히고자 노력하는 이들이었다. 발판과 지원을 위한 자원이 진보마초들과의 삶과 연대하는 장에서 밖에 나올 수 없으니 말이다. 진보마초들과 삶을 엮어 살 수밖에 없는 시대에 태어난 그녀들, 그안에서 페미니스트 남성동지들을 찾고 길을 넓히고 자원을 만들며 성평등 민주주의 사회를 일구고자 하는 심상정, 남윤인순 등 같은 선배들을 생각했다. 애도와 비판이 동시에 가해지는 자리에서 함께 해야 하는 선배들과 후배들을 보면서 류호정, 장혜영 그녀들의 마음이 더 와닿고 무책임한 죽음으로 서울시장에 반대하는 20만명이 떠올라 마음이 시끄럽다. 이로인한 여성들간의 연대의 걸림돌들이나 반목의 우물이 깊어질까 조심스럽다.

 

난 근 20년간 진보+마초들의 함께 하는 한국 민주주의라는 공식의 허구와 효력을 확인하곤 한다. 진보마초 그들의 일상의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와 차별의 악은 새로운 시민운동의 장을 펼치는 장에서도 여전했다는 것은 2000년대 운동권내 성폭력뿌리뽑기 100인위 활동을 통해 확인했다. 가부장제 남성중심의 기득권을 위한 악들의 향연이 일상적으로 난무하는 동안 2015년 메갈리아, 2016년 강남역살인사건, 2017년 미투, 2018 안희정 사건에서 정점을 찍고, 버닝선, n번방, 손정우 석방 등 2020 박원순 죽음으로 확인사살 받은 느낌이다. 고 박원순 시장이 행한 좋은 사회를 위한, 약자들을 위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한 죽음이 슬픈현실이다. 그의 유서를 보면 더 슬프고 조금 더 들여다 보면 화가 나고 허탈하다. 박원순 시장의 장례식장에서 한 여성이 들고 있던 핏켓의 내용이 생각난다.

 

정세랑 작가의 멋진 작품 시선으로부터(2019/문학동네)’의 한귀절이었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그 자신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

소설 속의 인물 화수(대기업 여직원)’ 염산테러피해자인데, 염산을 던진 가해자(중소기업 사장)가 자살한 사건이 배경이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과정이 잘 드러나있다. 하필 대기업 사장이 아니라 대기업에 다니는 여직원들에게 염산을 던졌을까 ? 지구상에 염산테러 99%는 피해자가 여성이고 99% 가해자는 남성이다.

 

박원순의 죽음을 둘러싸고 오늘 신문에 두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평상시 내가 좋아하는 강남순교수(신학자이자 여성학자)고인에 대한 추모와 피해자를 향한 연대는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것. 흑백논리를 넘어서서, 한 인간이 지닌 복합적인 면들을 한꺼번에 보아야 한다. 그와 함께 그리고 그를 넘어서 보다 인간의 권리가 확장되는 서울, 한국을 만들어가기 위한 과제를 우리 각자의 어께위에 짊어져야 한다

 

또 한사람은 40년간 박원순과 친구이자 동지로 함께한 조희연 교육감의 이야기였다.

“...나 또한 충격속에서 그가 남긴 또 다른 숙제를 생각하며 끙끙대고 있다....인권변호사로서의 모습과 그와 상반되는 또 다른 모습이 한 인간에 공존한다는 모순성에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그의 죽음을 보면서 내가 늘 죽일 놈과 좋은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인식틀에서 세상과 사람을 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반문을 했다. 인간의 허물의 무게와 죽음의 무게를 비교하고 분리해서 저울질할 수 있는 능력을 신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탓하면서도 그의 죽음은 나에게 하나의 난제이다

 

달리기의 좋은 점은 많고 많지만, 뛰고 나면 개운해진다는데 있다. 일주일에 한번 맘먹고 장거리 러닝을 하는데 뛰어도 뛰어도 개운하지 않았다.

 

나에게 박원순의 죽음의 난제는

죽음으로 밖에 말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나약함과 모순, 공동체의 무력감이다.

공동체와 함께 하는, 할 수 있는, 책임있는 성숙한 리더, 아름다운 사람이 그립다.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를 돌아보고, 자신의 인식의 자리를 넓히고 공동체에서 함께 고민하고 개인의 비난이나 무력과 허탈, 답답함을 너머 함께 나누며 성장하는 성숙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더 그리운 날이다. 정세랑 소설속의 심시선과 같은 아름다움 사람이 그리운 날

 

지지 않고 꺽이지 않을 꺼야, 그걸로 충분할 꺼야....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지 십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작이 우리안에 있으니까

 

기억하고 않고 나아가는 공동체는 있을 수 없었다. ”

 

주말내내 정세랑 소설책과 함께 마음속 레이스를 달렸다.

성평등한 세상을 위한 연대하는 마음으로 박원순시장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

죽음은 사람을 성장하고 성숙하게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개인과 사회가 죽음을 통해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하면 좋겠다.

 

성숙하다.

1. (누구또는 무엇에서)단계를 거쳐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정도에 이르다.

2. 나이를 먹어 어른스럽게 되다.

3. 충분히 자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