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18 수요조찬북클럽에서
3월의 작가 윤이형
여성의 신비 (⌜멜랑콜리/해피엔딩⌟(2019/작가정신)
지혜와 슬기 : 나와 내친구 이야기
우연히 sns를 통해 연락이 끊긴 대학절친 슬기와 지혜(30대후반)가 다시 연결되어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의 삶을 보듬어가는 이야기. 소설은 두친구가 함께 본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보늬밤’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친구라는 관계는 오랜 시간 정성들여야 하는 보늬밤, 지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야하며 다시는 만들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늬밤 한병을 만들었다. 불가능해 보였지만 할 수 있었다. 서로의 차이보다 공통점을 위해 꼭 한번은 노력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다.
현재 30대인데 친구들 생각이 많이났다. 친구와 나의 이야기.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고 눈물이 났다. 그렇지만 슬프기만 현실이 아니라 “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불공평함에서 시작된 성난 마음을 딛고 언제가 되든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서로를 조금 더 좋아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라며, 온갖 불순물과 이 물질이 날아가고 말갛게 남은 진실의 모양새는 그랬다.” 아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앞으로) 될 수도 있겠구나하고 좋았다. 내 마음의 힘듦과 상처가 한번 지나가서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수습을 해야하는데 이 말이 그래... 그래 이렇게 살아가는거야.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해-경력단절 8년차 지혜는 그동안 두 번의 복직기회를 포기하고 남편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다시 복직을 원하는 지혜에게 남편은 쌍둥이 육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기적이라며 비난한다. 그녀는 자신안의 지난 8년동안 독박육아와 남편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는 동안 매설되고 정비되고 업그레이드된 거대살상무기(부비트랩)가 터져 급기야는 자살극까지 벌여 종교단체의 회계업무를 담당하는 일을 다시 시작한다. 결국 연로한 친정부모님과 이모의 도움을 받아 육아를 해결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 점점 일에 대한 회의와 자격이 없는 엄마-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에 힘들어 한다. 우연히 sns를 통해 단짝친구였던 대학동창 슬기와 다시 연결되고, 세프이자 수공업 장인-전업주부로서 자신의 역할을 긍정하고 만족하는 삶을 사는 슬기와 달리 자신은 열등감 가득하고 불만과 자괴감, (나이들고 무능력한 직원, 형편없는 아내, 자격없는 엄마 등)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시달린다.
들여다보면 과거 슬기는 직장상사에게 오랫동안 스토킹을 당해, 참다못해 직장을 그만두었고 엄마가 된 뒤에는 다시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것, 겨우 복직을 했으나 베이비시터를 찾을 수 없었고, 아이는 정서불안증세와 등교거부로 결국 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지혜는 끊임없이 서로의 차이와 현재를 비교하고 슬기의 불행을 통해 현실을 안도하며 반목한다. 부정하고 싶은 자신의 과거,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서로에 대한 차이보다 소중했던 공통점을 위해 마지막으로 지혜는 슬기를 만나 사과를 하고 마음을 털어놓는다. 조금 더 건강해지고 덜 못나지면 연락할게, 그때 꼭 다시 만나자.
혜연과 수빈: 나와 친구의 이야기. 친구는 4살된 아이가 있고 올해 둘째를 갖으려고한다. 친구와 난 20대 많이 의지하고 엃혀있던 사이. 둘다 지금은 결혼을 했고 연락을 하지 않다가 최근 우연히 sns를 통해 연락이 되었다. 우리의 삶이 결혼이라는 서사 속에 휩쓸려서 지금은 이렇게 멀어졌고, 내가 쉬다가 일을 다시 시작하는 순간 연락이 왔는데 계약직으로 일한다고 하니까 안심하는 모습.....30대의 우리 둘의 관계가 결혼과 아이와 가정으로 아주 멀어지고 달라져서 소설 속의 지혜와 슬기보다 더 멀다. 책을 읽고 친구를 생각하며 오열을 했다. 더 이상 그 친구를 사랑할 수 없고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불공평함에서 시작된 성난 마음을” 나는 불공평함을 알아차렸지만 친구는 여전히 개인의 서사로만 치부하고 개인의 삶으로 귀인하는 딜레마, 어떻게 하면 이것을 개인의 서사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불공평한 문제로 다룰 수 있을까 ? 친구와 함께 이것을 이야기하고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 친구는 능력주의 그래도 나는 00는 할 수 있어, 안도하며 넘어가고 반복하고 저에게 이 소설은 단편이지만 나에겐 긴 이야기였다.
2020년 한국사회 지혜와 슬기에 의해 드러나는 여성의 신비
“ 막연한 데다 개선의 기미가 없는 불평등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환경호르몬의 증가 등으로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에 불신과 회의를 품게 된 여성들이 어차피 임금도 낮고 성취감도 주지 못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손수 만들어 쓰고 먹는 것으로 자부심을 느끼며 주부의 역할을 자처하게 된 2000년대 초반의 경향.... ”
“ 독박육아... 병적으로 집착하는 거, 자랑하지만 사실은 안간힘이고 발버둥인 거, 지적당하면 미치는 거.... 계속 서로의 다름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 참 바보 같긴 한데...., 나는 이제 이런 나를 바꿀 수 가 없고, 그러면 계속 너를 건드리게 될 것 같아.....은근슬쩍 너를 화나게 하고 싶다고...너보다 행복하다고 나를 과시하고 싶었어, 그런 나를 못견디겠더라 ”
“ 결국 자신의 역할을 긍정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함으로써 건실하게 하루하루를 꾸려가는 생활인이 된 것처럼 보이는 슬기와 달리, 지혜의 내면은 불만과 자괴감으로 터질 것 같았다. 쓸모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함께 나워 먹는 음식의 정겨움과 따스함.... 같은 것 전부가 내면의 부비트랩이 폭발할 때 흔적없이 날아가버렸다. ....수년간 일방적으로 혼자사 해야 했던, 아무도 도와주지 않던, 그리고 이제는 지혜의 무능함을 사사건건 일깨우는, 손으로 하는 그 수많은 일들...모든 게 내가 한 선택이고 비난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
“ 마음이란 얼마나 허역한지, 한 몸으로 여러개의 역할을 하며 살아내야 하는 처지도 같고, 능력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것도, 언제나 시간이 부족해 발을 구르는 것도 똑같은데, 너의 과거나 내 현재이고, 내현재가 다시 너의 미래가 될 수 있으며, 그런 서로에게 굳은 의리를 느끼는 것도 사실인데, 그런데 끝없이 서로의 현재를 비교하고 다른 점을 찾아내려 한다. 너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너무도 쉽게 치환해버린다. 나보다 즐거운 너를 견딜 수가, 거리를 둘 수가, 없다. ”
1963년 발간된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는 1960년대 제2기 여성운동의 촉매제가 되어 여성들의 불평등한 현실을 고발하고 변화를 이끌었다. 여성의 신비란 ‘여성다움이라는 미명 하에 여성에게 신비하게 덧씌워진 고정된 역할과 이미지’를 의미한다. 여성잡지를 포함한 각종 매체나 학자들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신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란 것이다. 프리단은 이런 신비스러운 여성의 이미지가 현실 속의 삶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피면서 미국 여성들이 당면하고 있는 딜레마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프리단은 안락함이 보장되는 미국의 중산층 가정을 ‘편안한 강제 수용소’라고 묘사하면서 여성의 신비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미디어 조작자, 광고주, 사회학자, 교육학자들이 여성의 신비라는 ‘이데올로기’를 공모해 여성을 가정에 속박하고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여성이 엄마나 주부가 아닌 인간으로서 행동할 때 느끼게 되는 죄책감이란 덫에 나는 걸려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결론은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천국과 지옥을 선택해 만들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자각이다. 프리단은 고정화된 성역할을 약화시키고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실질적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재, 가부장제 가족, 결혼이 무엇이 얼마만큼 달라졌는가 ? 결혼과 가정안에서의 여성의 모습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가까운 지인 30대 후반 후배를 보면 결혼후 직장생활하면서 아이에 대한 죄책감, 엄마로서의 역할 등 일가정양립 등 여성에게만 책임이 지워지는 것은 변함이 없다. 50대이상의 지인과 언니들을 보면 가정안에 있는 여성들은 아직도(00하는) 남편이라도 있는게 났다. (남편)불쌍하다는 사람부터, 그 정도(때리지않고 돈벌오면)면 괜찮다는 여성들...20-30대를 현재 살아가는 여성들은 신자유주의사회의 각자도생해야하는 능력주의에서 결혼과 가족,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개인간의 격차와 자원이 크고 그에 따른 억압과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았나 싶다. 노동시장내의 여성차별과 불평등이 사회구조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82년생 김지영처럼 오늘날의 2-30대 여성이 여전히 악순한이 되풀이되고....
성난마음과 각자의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성난마음과 각자의 방식으로 여성노동시장의 차별과 독박육아가 해결되지 않는다. 성난마음으로 나는 여성단체에서 일하고, 무자녀를 계획하고 제 친구는 성난마음으로 둘째를 계획한거죠. 외로운 첫째를 위해... 성난마음은 맞는데...성난마음을 각자의 방식데로 한다면 가부장제에 먹힌다. 현재 가부장제는 (성역할과 성별분업 재생산하는) 결혼과 가족제도를 통해 지속되는데, 현재 여성들이 결혼과 가족제도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
한국의 2019년 6월 기준 여성경제활동의 참여율은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54.4% (남성 77.6%)로 OECD국가 33위 중 27위이고 비정규직, 저임금에 종사하고 여성노동자가 50%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사업이다. 지혜와 슬기의 현실에서 보듯 경력단절(육아 38.2%, 결혼 30.7%, 임신과 출산 22.6%, 가족돌봄 4.4%, 자녀교육 4.1%)과 직무, 직급, 고용관계 등이 성차별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중삼중의 차별이 여성에게 집중된다고 볼 수 있다. 이중삼중의 차별을 딛고 살아남은 여성노동자들이 유리천장지수 (직장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고 있응 것 같지만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은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혀 있는 것처럼 지위상승이 어려운 현상-교육, 경제활동참가율, 임금, 관리자중 여성비율, 임금대비 육아비용 등)는 OECD국가 29개국 중 100점 만점 중 20점(평균 60점에 스웨댄 80점 최하위다. 그 중에서도 임금은 남성보다 34.6%. 여성 관리자 12.5%, 기업여성이사 2.3%는 꼴찌였다. 이러한 사회현실에서 여성 개인에게 잘못을 돌리고, 지혜가 정신과 진료를 받고 문제해결을 위한 수퍼우먼-워킹맘-능력주의로 해결하려는 자유주의적 발상. 독박육아, 거리두기 등 그렇게 정신적으로 도를 닦는다고 이해되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속의 모든 지혜의 말은 ‘소확행’같았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인데 소소하게 오늘하루 견디고 만족하고 죽겠다. 이렇게 최면을 시키고 마비시키는 것이 아닌가 ? 전업주부로 살 수 밖에 없는 슬기의 삶과 워킹맘 지혜(불안정과 저임금 여성노동시장, 직장내 성추행과 스토킹. 임신과 출산, 육아으로 인한 경력단절, 내재화된 가부장제의 가족이데올로기와 모성 등) 이렇게 ‘개인’‘마음’의 문제로 치부하며 불평등사회와 구조를 ‘성난마음’과 ‘각자의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면 짜증나고 화난다.
“ 응, 괜찮아, 이해했어, 지혜야,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네가 힘든 건 그동안 하나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의 잘못이니까 ? 뭐든 무리해서 극복하려고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데....우리 당분간 조금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어떨까 ? 그냥 앞으로도 사사건건 부딪치고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서로 못할 것 같아서.... ”
여성의 신비-이름없는 문제는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여성들의 불평등과 차별이 여성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중심의 차별과 불평등한 사회에 있다는 것을 고발, 사회변화를 촉구한 것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서로를 조금 더 좋아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라며,...”를 가능하려면 각자의 방식으로 개인을 갈고 갈아라 즉 세계화 신자유주의적, 타인의 불행을 보며 안도하고 안심하고 여성의 가족과 모성을 일차적으로 중요시하고, 죄책감을 내재화하고 한편으로 경쟁과 능력주의-노동시장에서 (여성노동시장의 불평등성-기회나 구조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능력에 대한 열등감과 자괴감을 끊임없이 부추기는 사회(구조)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몇몇 고위직 여성, 대중매체에 떠다니는 걸크러시-소수 전문직으로 성공한 여성상의 최면에 속지 말자. 드루데 달레루프(스웨덴, 1988)는 여성이 상징적인 존재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집단 내에 일정정도 이상의 수를 확보되어야만 제대로된 목소리를 낼수 있다는 개념 “임계수치(critical mass)”을 제시했다. 최소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여성의 비율이 30%가 확보되고, 여성을 위한 자원, 권력관계의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의 차이보다 소중했던 공통점을 위해, 꼭 한번은 노력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다”
“ 내가, 조금 더 건강해지고 덜 못나지면 연락할게. 그땐 꼭 다시 만나자, 미안해 ”
“ 그냥 한번 꽉 안아줄 걸 그랬지 ”
끝으로 하고싶은 말과 소감을 나누면 아침솔⁓을 닫았다.
윤이형작가 너무 좋아요. 윤이형작가는 여성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여성들의 균열, 여성들 끼리 같은 편이 되지 못하고 반목하는 것을 다시 생각케하고 노력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개인이 구조와 싸우기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선택 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고 싶다. 아무 상관하지 않으면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 각자의 삶을 살다가 한번 안아줄 껄하는데 각자의 삶을 살다가 만날 수 있을까 ? 기본적으로 각자의 삶이 어디 가지 않을 것이 아닌가 ? 안주하게 되지 않을까? 개인의 삶의 에너지를 충족해서 어떻게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 누군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이다. 각자의 삶의 무게와 자리에서.....
공동체를 위한 장에 늘 연결, 연계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개인이 이렇게 각자의 삶에 고립되면,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가부장제는 여성들이 서로 반목하고 분열과 과로로 사적인 공간에 머물기를 음모한다. 어떤 식이든 삶의 단계 단계 어떤 문제로 함께, 가부장제에서 주어진 역할이 아니라 여성 개인으로 자기 삶을 살아 간다는 것, 실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문제해결을 함께하는....노력과 경험이 쌓여야...
서로의 균열, 다름에 너무 밀어지지 말고 불평등이 너와 내가 불평등이 아니라 상황을 보고 왜 그럴까를 모색하고, 모색하고 뭔가를 하고 싶어요. 안주하면서 소확행하면서 사는 것말고
소확행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성난마음을 각자 여성연대를 위한 자원과 연계하고
불평등, 차별을 강화하는 권력관계의 변화에 담아 함께 싸우자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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