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5일
아니에르노(1940년 ⁓ )의 부끄러움(1997)을 읽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책 한권이 저절로 써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을 재구성하여 자신(내면)을 거슬러 올라가는...용감한 이야기꾼.
2. 2월 3일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1997)⌟(이재룡(역)/ 비체/ 2019, 149쪽)
그녀의 강렬한 첫문장 만큼이나 삶의 비애가 칼날이 되어 나의 과거를 베기 시작했다.
“ 12살 여름 1952년 Y시, 6월 어느날 일요일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했다 ” (23쪽)
누구에게나 어떤 장면이나 사건이 마음 속에 떠난 적이 없을지 모른다. 한 사람의 정체성과 존재의 양식을 가장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것처럼... 심리학을 공부할 때 유년기의 첫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기분석을 하게 되는데 바로 그녀의 첫문장처럼 말이다. 그 첫기억이 부끄러움과 수치심이라면 아니 에르노는 불행을 벌다라는 표현을 했다. 공포스러운 일을 겪은 후 영원히 미치거나 불행해진다는 뜻처럼 말이다.
나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할 것이다.
“7살 겨울 1977년 12월 어느 날 엄마는 내가 입고있는 분홍망또를 우악스럽게 잡아 벗겨 아궁이에 넣어 태워버렸다. 우는 나를 때리고 그 밤 G시로 가는 버스를 태워 아빠가 있는 그녀의 집으로 분홍망또는 짜준 친절한 그녀의 살림 집으로, 가게로 안내하라고 나를 몰아세웠다. 그 추운 밤 망토없이 달달 떨며 돌아다녔다 ”
작가 부모님은 프랑스 소도시의 작은 식당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가난한 노동계급집안이다. 아니 에르노의 부끄러움은 서민계층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과 부르조아 계층(사립학교 그녀의 친구들과 교육받은 중산층)의 두세계와 가치관이 충돌하고 12살의 사건-그녀의 부모와 그녀의 삶을 둘러싼 것들로부터 수치심을 느낀다. 계급은 ‘우리동네’와 그 너머의 ‘저곳’을 가르는 경계선이지만, ‘우리동네사람’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기준 같은 것이다. 같은 계급에 속한다는 것은 같은 세상에 산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결국 웃거나 물건을 들거나 할 때라는 어떤 동작을 하고, 육체와 사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를 규정하는 방식”을 아는 것이다. 물질 즉 생산수단의 소유여부에 더불어 문화자본 상징자본이 생활양식, 일상의 습관으로 드러나는데 작가는 물질적 궁핍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수치심에 시달렸는데 그것은 지배계층의 생활양식과 언어가 몸에 배지 않았다는데에서 비롯된 열등감, 그 상징적 폭력과 소외감이 더욱 뿌리 깊은 근원적 불평등을 보인다고 했다. 10살 남도산골농촌출신인 내가 하루아침에 서울 대도시로 전학을 와서 겪었던 결핍과 소외가 마치 문맹과 문명의 차이만큼이나 커서 고독과 슬픔의 도시인?으로 동화되어 갔다. 작가에게는 부끄러움이었지만 나에게는 고독과 슬픔이었고 고독에 침잠해 고립이 되면 열등이 되기도하고 슬픔이 커지면 우울의 정서가 되지않았나 싶다.
“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았고.... 나는 사립학교 그곳의 품위와 완벽함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부끄러움속에 편입된 것이다. 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 존재의 모든 것이 부끄러움의 표식으로 변했다. 무시와 경멸의 대상인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에버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 ‘부끄러움’은 개인의 자전적 성격에서 벗어나 집단적 자아가 대필한 사회학적 자서전이라고 한다. 책을 읽은 지 한달이 지나 되새김질하며 쓰는 이 순간에도 애잔하다.
'책 reading > 소설읽는 밤' 카테고리의 다른 글
SF 8 : 톰 스웨터리치의 ⌜사라진세계(2018)⌟ (0) | 2020.03.10 |
---|---|
지금 딱 읽기 좋은 책 ! ⌜몬스터-한낮의 그림자⌟와 ⌜몬스터-한밤의 목소리⌟ (0) | 2020.03.06 |
아니에르노 1 : 단순한 열정 (0) | 2020.03.05 |
sf 7 : 김보영 '얼마나 닮았을까 ' (0) | 2020.02.26 |
sf 6 : 임성순 '우로보로스 ' (0) | 2020.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