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지나 dreaming/쓰기 writing

# LETTER 33 전환점과 반환점

지산22 2021. 11. 7. 19:37

20211107 # LETTER 34 전환점과 반환점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H에게, 삶의 반환점을 막 지난 것 같은 나는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해도 좋다또는 해봐도 좋다고 전하고 싶어. 직접 경험해 본 것과 생각만 한 것은 큰 차이가 있거든, 바라는 결승점의 성취와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결승점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레이스에서 달리기 시작한 나는 이미 다른 내가 되어 있거든. 반환점을 돌아보니, 이제까지 익숙한 삶의 자리에서 안주하고 있더라고, 좀 더 낯선 공간의 낯선 시간의 삶을 살아볼 걸. 삶이 주는 새로운 공간과 낯선 시간의 선물을 이제라도 맘껏 누리자고. 최영미의 시처럼 순간순간 기적을 만날 수 있길 바라며.

 

노트르담의 오르간

                                            최영미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만큼만 꿈꿀 수 있다. (얼음을 보고 만지지 못한 열대인들은 얼음을 상상하지 못한다) 노토르담 성당의 시간을 보고 돌기둥에 반사되는 색유리의 반짝임을 머리로 그릴 수는 있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에 내가 들었던, 이 세상에 소리 같지 않게 울려 퍼지던 파이프오르간의 신비를 어찌 짐작할까. 고딕 성당의 벽만큼이나 오래된, 고뇌와 기도들이 한순간에 환생하여 솟구치다 소멸하는 기적을.......우리는 경험의 우물 안에서만 상상하고 창조한다.

 

주말오전에 축구를 하고, 종일 내내 제주여행 짐을 꾸리고 있어. 낼 차량을 이용해 완도에서 직접 배를 타고 들어가니, 이것저것 군더더기 짐들이 많아지네. 비소식이 있어 한라산 우중산행과 야영을 준비하네. 3일내내 비가 온다니....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도 비오면 비오는 대로, 타탁 타타닥 텐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우중 멍상’ ‘우중 먹방도 좋을 것 같고. 오랜 만에 한라에서 가을이 흐르는 산을 지켜보지 뭐. 어제는 제주 4.3 항쟁에 관한 글을 쓰다가 잠들지 않는 남도노래를 내내 흥얼거렸어. 청년시절 나의 애창곡이자 18번이었는데, 80년대 후반 대학신입생 때 교정의 마당극에서 처음 알게 된 4.3이야기, 참혹한 역사의 시간이 노래로 울려 퍼지는데, 그 먹먹한 슬픔과 아픔의 잠들지 않는 남도를 알게 된 때가 떠올랐어.

 

잠들지 않는 남도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녘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 아 아 아 아

/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노을빛 젖은 물결에/ 일렁이는 저녁 햇살/ 상처 입은 섬들이/ 분노에 찬 눈빛이여/ 갈숲에 파고드는/ 저승새에 울음소리는/ 아 한스러이 흐르는/ 한라의 눈물이어라/ 아 아 아 아

/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 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삶의 반환점을 도니, 한걸음 앞으로 가는 일보다 두 세걸음 뒤 돌아 보는 일이 많아지네. 반환점을 돌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뒤돌아도 보고 해찰도 하고 새길로도 빠지고 그렇게 천천히 내몸과 영혼이 함께 즐기면서 가면 좋겠다.

 

H. 가을에게 인사하며 여유있게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