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지나 dreaming/쓰기 writing

#LETTER 32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공동체’

지산22 2021. 10. 27. 13:50

20211026 #LETTER 32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공동체

 

안녕 ! H. 봄봄님의 기분과 건강은 좀 어떠신지 ?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이해(사리를 분별하는 앎)의 영역이 아니라, 인정(고유의 개체 자유로웠던 야생동물이었음)과 수용(인간에게 맞춰 살아가야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 받아들임)의 영역인 것 같아. 반려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매번 화장실에 싸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셈 아닐까 ?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네. 일요일 조기축구 정기훈련 시작시간 6시가 이제는 깜깜해. 물론 저녁 6시도 어두워지는 가을이네. 축구하러 갈 때엔 5시에 기상해서 30분정도 차를 타고 가야하는데, 축구장에 도착하니 보름달이 비추는 새벽이었네. 푸른 어둠 사이로 온기 없는 서늘한 달빛에 몸은 움츠러들고, 서둘러 준비운동하며 체온을 끌어올렸어. 10월 내내 한일장신대 지나 상관생활축구장에서 훈련을 했었는데, 지난 주엔 겨울이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어. 몇몇은 벌써부터 운동장에 걸어 다니는 침낭들? 롱패딩을 꺼내 입은 이들이 눈에 띠네. 푸른 새벽 찬공기의 맛과 색을 마주하면 산위에서 야영을 하며 자다 일어나 첫 텐트를 열고 나오는 순간이 매번 떠올라. 텐트사이로 마주하던 숲속의 새벽, 그 새벽을 담고 있는 찬 공기를 맛보면 영혼까지 개운해지거든. 영성을 깨우는 숲의 서늘한 지혜가 내 몸에 들어온다고 할까? 생생하게 살아있다고 느끼는 좋아하는 몇 순간 중 하나인 셈. 쨍한 겨울날 파란 하늘의 차갑고 명징한 맑은 날처럼.

그동안 훈련했던 여러 축구장 중에서 난 상관축구장을 좋아하는데 좀 멀긴 하지만 도심에서 떨어져 산으로 둘러싸여 산의 기운과 응원을 받으면서 운동하는 맛이 나거든, 훈련 중 산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만드는 빛의 쇼가 일품이야, 파도타기하듯 하나둘 산의 둘레를 밝히며 아침을 여는 색과 찬란한 빛들, 빛이 소리를 낸다면 교향곡일거야, 태양이 지휘자요, 산들이 악가가 되어 거대한 빛의 교향곡, 종국엔 그 빛 무리가 축구장에 가득하고 뛰는 선수들의 얼굴과 몸짓에 반사될 때, 그 순간순간이 한없이 경이롭고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충만하다는 느낌이 들어. 날씨인사가 길어지면서 삼천포로 빠졌네. 나의 패스미스는 여전하고 축구실력은 나아지지 않는데, 암튼 산에 있는 축구장이 좋다는 말.

 

H. 청소년들과 변화무쌍한 여행하느라 고생했어. 비건 여행자가 되는 연대와 서로의 여정을 지지하며 한발한발 걷고 서로 협력하며 제주여행을 마쳤다는 것을 다시 한번 축하해. 여행을 준비하며 마치기까지 그동안 청소년들과 함께한 수많은 여행의 시공간들이 H에게도 소중한 인생의 보물, 보람일 거야. 언젠가 H의 인생의 해가 지는 계절, 밤이 깊도록 이야기 나눌 선물일 것 같아.

 

어젠 올해의 팟캐스트 시즌 5 정규방송의 마지막 에필로그 녹음을 했어, 9회 방송, 14개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며 빠른 송별? 한해를 돌아보았네. 벌써 올해의 연말이 시작되었네. 코로나19로 인해 기획했던 코너들이 횟수를 채우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서로의 녹음전후 소회를 나누고 청취자들과 작별인사를 했어. 기억에는 남는 코너는 기획특집 중 하나였던 우리함께 살까?’라는 주제였는데, 여성들의 주거공동체이야기야, 한번쯤 꿈꾸던 같이 살고, 함께 살고픈 사람들과 사는 주거 공동체, 나는 누구랑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몇일 전에 전주의 중년비혼여성 10명을 대상으로 한 여성주거공동체 관련 연구발표회에게 다녀왔거든, 50이 되니 막연했던 주거공동체의 상과 앞으로 노후의 긴 삶의 구체적인 대책으로 고민이 닿아있네. 상호의존과 상호지지의 돌봄과 노후에 함께 재미있게 놀며 흥마당과 앎마당인 될 배움공동체와 주거공동체의 필요성을 절감하는데 20대부터 맴돌았던 공동체의 멀고도 막연한 실행력은 여전히 지속(불가능)되네. 공동체를 일구겠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럼에도 꿈꾸는데...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많은 대안 공동체들을 봤어. 모두 같은 패턴이었지. 처음에는 거창한 기치를 걸고 모여. 유토피아 공동체를 표방하거나, 종교를 중심에 두기도 하고, 사냥꾼들이 모여 집단일 때도 있고, 그도 아니면 평화로운 생존을 바라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해. 모두 돔 시티안에서 답을 찾지 못해서, 돔 시티 밖에서 대안을 꿈꾸는 거야, 하지만 그게 뭐가 됐든 결국 무너져, 돔 밖에는 대안이 없지, 그렇다고 돔 안에는 대안이 없을까 ? 그것도 아니야...돔 안은 더 끔찍해, 다들 살겠다고 돔을 봉쇄하고, 한 줌 자원을 놓고 다른 사람들을 학살하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중에서

 

최근 김초엽의 첫 번째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이 생각나네. 먼지폭풍, 기후위기로 지구는 멸망하고 인간 및 모든 동식물이 멸종하고, 소수의 부자들은 기후 돔을 세워 자신들만의 폐쇄된 도시를 만들고 용병으로 경계를 세워 지키지, 다수의 죽어가는 사람들 마지막 남은 숲의 버려지고 가난한 자들의 프롬빌리지공동체 탄생하지, 파괴된 지구의 마지막 온실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가지고 다시 지구곳곳의 프롬빌리지 같은 공동체를 일구며 전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네.

 

“ ...불완전한 채로, 그럼 그게 대안인가 ?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꺼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야...”

-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중에서

 

공동체의 운명은 어쩌면 꿈꾸며 만드는 과정과 파괴되는 과정, 그 불멸의 불가능함에도 향해 가야 한다는 점. 공동체로의 여정이 지금 보다는 나아지는 길이니까, 실패하더라도 공동체의 실패는 다음 공동체인들의 안내일 뿐. 요즘 난 도와 줘심심해’ ‘정겹게 밥 먹을 수 있는에 가까이에 응답할 수 있는 마을 친구들공동체를 일구거나 찾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말다 해,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 벌이는 것그 자체가 나를 우리를 좀 더 나은 인간으로 성숙하게 할 것 같은데 말이지. 소설 속 프롬빌리지의 리더인 지수는 만일을 대비해 지금 이 곳 공동체와 비슷한 환경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을 전해 우리가 혹시 이곳을 지킬 수 없게 되더라도 이게 있으면 또 다른 프롬빌리지를 만들 수 있어지금쯤은 510년 후의 나의 공동체의 첫 삽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신나는 일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주변을 돌아보니..... 안개가 가득하다. 레비나스의 책임윤리에 나와 있는 ‘responsibility’ 은 응답하다 ‘respond’ 내용이 떠오르네. 50년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곁에서 듣고 응답하는 것을 게을리 한 나의 현재, 공동체를 생각하면 안개 속을 걷고 있는지도.... 여전히 난 닝반데룽(짙은 안개 및 폭풍우를 만났을 때나 밤중에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지점을 계속 맴도는 일)중이네.

가깝고도 먼, 멀고도 가까운 H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