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지나 dreaming/쓰기 writing

#LETTER 31 시간의 강가에서

지산22 2021. 10. 21. 15:14

20211019 #LETTER 32 시간의 강가에서

 

H 제주 여행학교는 잘 다녀왔지? 고생 많았네. 청소년들과 함께 가는 마지막 여행이라고 했는데, 그동안 10년 넘게 지구촌 곳곳의 길 위의 여행학교를 누빈 H, 이번 마지막 제주여행 의미 있는 시간이었길.

 

오늘은 세월이 전해주는 바람소리를 들었네. 2000년 전주에서 내려와 잠깐 활동했던 반성매매여성운동단체 20주년 좌담회에 다녀왔어. 시간은 삶이라는 물성을 채우고, 간 밤의 꾼 꿈결인 듯, 생의 허무와 찰나의 바람처럼 우리 곁을 떠나가네. 옛말에 지나온 세월이 화살처럼 지나갔다는 말. 20년이 흘러갔네, 모두들 흰머리 휘날리며 앉아 있구나. 사람들은 시간과 지나간 세월을 꿈과 흐르는 강에 비유하곤 하는데, 깨어보니 20년이 지나갔다. 20년의 시간의 강의 물줄기가 소용돌이 쳤을 텐데,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에 도도히 흐르는 생의 비밀 앞에선 저마다 지나 온 시간은 부질없기도 하네. 나는 어느 시간의 강가에 서있는 걸까? 융의 말처럼 인생의 전반기를 지나 후반기로 가는 어둠의 시간, 인생이 하루라면 해질 녘을 막 지나고 있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서...세상은 더욱 더 끔찍해져만 갔다. 젊은이는 성장을 거듭하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바쁘다. 어린 시절의 작은 침대에서 방과 집, 공원과 도시, 나라, 세계로 경계를 확장하기 위해 분주할 수 밖에 없다. 성년기가 되면, 뭔가 원대한 것을 꿈꾸게 된다. 그러다 사십 줄에 들어서면, 전환점이 온다. 젊음은 그 고유한 강렬함과 스스로의 에너지 속에서 지쳐간다. 어느 날 밤 혹은 어느 아침, 인간은 경계를 넘어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래를 향해, 즉 죽음을 향해 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나는 지금 당당하게 어둠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어둠을 부정하고 그저 방의 불이 꺼진 것 뿐이라 여기며 과거에 머물던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중인가

- 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중에서

 

소설 속의 인물이 이룬 게 하나도 없네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시간의 목적은 무엇일까요?’에 밑줄을 긋고 있네. 어제는 84편의 시간의 에피소드, 조각글로 구성되어 있는 올가의 태고의 시간들을 읽었네.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추크는 폴란드 사람으로 태고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 인류의 원형이 담긴 상상의 마을에 살아가는 3대에 걸친 1910년부터 1990년까지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네. 춥고 음습한 늪과 연못이 있는 깊은 원시림의 숲의 어두운 그림자 가득한 분위기에 광기의 인간과 신, 선과악의 흐르는 시간의 강, 폴란드의 비극의 역사, 1, 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유대인 학살과 전후 폴란드 국경선 변동, 사유재산국유화, 냉전체제, 사회주의시대, 민주화, 자유노조 체제전환까지 20세기 폴란드에서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이 배경이 되어 태고 마을의 사람들이 목격자이자 주인공이야. 작가는 심리학과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는데 신화, 전설, 민담, 성서 등의 이야기를 차용해, 태고라는 허구와 현실이 절묘하게 중첩된 우주를 시간의 힘으로 마술처럼 실존하게 하네. 작가는 또한 칼융과 불교철학에 지대한 관심으로 소설속 인물들의 꿈과 내면 무의식을 형상화하고 신성(神性)을 가진 모든 것들,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 등, 심지어 커피그라인더 사물에게도 각 개체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네. 시간의 씨줄날줄에 의해 인간의 삶의 패러독스, 불가항력적인 운명, 신비한 우연이 직조된다. 시간의 강은 자비롭지 않다. 잠이 깬 불면의 밤이 책을 펼치고 나의 시간의 물줄기를 생각하는데...

 

“....그 불면의 밤에 자신의 죽음이 시작되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의 인생에서 정오의 시각은 이미 지났음을, 이제부터는 은밀하게, 서서히, 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땅거미가 내려 앉으리라는 것을....자신이 길가의 한옆에 내던져진 돌멩이나 버려진 아이 같다고 느꼈다. 그는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이 거친 현재의 시간 속에서 바닥에 등을 대고 똑바로 누운 채 스스로가 매초 무()의 늪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생생히 감지했다

- 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중에서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은 시간을 붙들고, 사라져 버렸을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다고 전하네.

시간은 나를 삼키고 어디로 데려다 줄 것인지, 작가의 말처럼 글을 쓰는 동안은 생을 붙잡을 수 있을까 ?

 

일요일부터 쌀쌀한 가을 한파가 왔네. 가을은 쌀쌀한데 말이지. 그동안 이상고온이었네. 지난 주말엔 황악산아래 괘방령산장에 있었어. 과거보러가는 길 방을 붙여 소식을 전해주었다던 괘방령. 백두대간 종주할 때 2틀을 쉬면서, 보살핌을 받았던 반가운 산장지기 부부를 만났어.

나의 과거의 (2019년 백두대간 종주)시간을 역류해 현재의 산장에서 조우했네. 북진했던 백두대간의 우두령황악산운수봉괘방령 구간을 남진산행을 하고 오랜만에 김천의 직지사를 방문하고 사명대사길도 걸었네. 사명대사길은 직지사 왼편의 산들을 돌아 나오는 평화로운 둘레길이야.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안내하는 가을숲길을 여유롭게 거닐었네.

천년의 시간을 삼키는 나무들 곁에서 흩어져도 좋을 나의 시간.

 

건강하게 지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