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reading /소설읽는 밤

SF 16: 오정연의 남십자자리(2021)를 읽고

지산22 2021. 8. 25. 14:49

202108/지산

2달동안 성평등예술비평학교 강좌를 듣고, 마지막은 자신만의 장르를 선정하여 비평글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SF 16: 오정연의 남십자자리(2021)를 읽고

 

SF페미니즘이 여는 초고령미래사회 - 오정연의 남십자자리’(2021)

 

미래(the future)란 지금이라는 순간으로부터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 무수한 길들이 종국에 모이게 되는 지점이다

- 마가릿 애트우드-

 

생의 마지막이 길어지는데, ‘최소 1,500 2,000만원이 필요해

 

40대후반에 접어들 때쯤부터 나이듦과 노화가 친구들사이에서 화제로 등장하지만, 막연한 미래의 시간속에 일어날 일이었다. 나이만큼 세월의 속도가 흐른다는 할머니의 말처럼 50대로 접어드니, 시속 50킬로로 가속도가 붙는다. 신체의 노화를 갱년기 증상, 1인가구의 고립과 질병으로 확인받는다. 간간 보모님의 노환과 지인들의 부음을 전해들으며 죽음의 여정으로 삶이 가는 길임을 상기한다. 한편으론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비교하면서 살아온 날이 아니라 살아갈 날이 길어질까봐 노후-돌봄, 죽음과 치매-병사(病死)’의 비극에 두려움과 불안을 떠올리며 (과학)기술에 의지하는 생의 마지막을 선택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보곤 한다.

일부 나라에서는 엄격한 조건하에 합법적으로 안락사(조력자살)이 진행되는데, 대표적인 나라가 스위스다. 그러나 누구나 스위스에서 생의 마지막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안락사 비용이 2,000만원이다. 웃스갯소리로 한 친구는 그 돈이면 생의 마지막 순간 크루즈여행을 하고 원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꽐라돼서 바다속에 풍덩하겠다고 하고, 또 한 지인은 2,000만원 있으면 새삼 삶을 다시 시작하겠단다. 돈이 없으면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사회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이 세계1위이며, 2025년이면 국민의 20.3%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접어든다.

초고령사회의 미래,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게 될까 ? 고령화와 돌봄의 문제, 지난해 1인가구가 전체가구의 30%를 넘어섰다. 고령화시대에 발맞춰, 포스트코로나 비대면시대에 더해 기술로 독거노인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지자체에서는 인공지능돌봄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노후와 죽음, 돌봄이 어떻게 달라질까?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포스트휴먼이 도래할 초고령미래사회를 보여주고 현재의 성찰과 반영으로서 SF, 상상속에선 언제나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오정연의 남십자자리’(2021) 평균연령 114세의 양로행성을 배경으로 한, 초고령미래사회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SF를 통해 현재가 만들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자.

 

SF는 페미니스트의 놀이터, 한국의 SF페미니즘

 

2010년 후반 들어 한국의 출판시장과 문학장르에서 SF가 부쩍 조명받기 시작했다. 2016년 즈음부터 SF전문 출판사들이 생겨나면서 다양한 시대와 언어의 해외SF소설이 번역출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많은 국내 SF작가들의 창작SF앤솔로지나 단행본 형태로 출간되고 있다. 이러한 SF출판의 양적팽창은 SF도서 판매량 및 SF독자 증가와 궤를 같이하며 한국 SF문학장을 확대해 나가는 중이다. 한국여성작가는 SF장르가 남성적이라는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한국문학장에서 왜소한 입지를 가졌던 SF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다.

SF의 가장 큰 장점이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익숙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 SF가 만났을 때는 그 장점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 SF는 일찍부터 페미니스트들의 놀이터였다. “꿈꾸는 대로 세상은 변화하지는 않지만, 꿈을 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바뀌어왔습니다라며 20198명의 SF여성작가들이 모여 첫번째 SF허스토리앤솔로지를 발간했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SF의 낯설게 하기를 통해 현재의 사회를 비판하고(저항하고) 가능성과 잠재력의 대안의 (미래)세계를 꿈꾸는 것(실천하는 것)이다. 정세랑작가는 아직 오지 않는 세계에 대해 쓰면 그 세계가 오는 속도가 조금은 빨라지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SF의 잠재적인 미래가 페미니즘과 조우하면서 차이를 긍정하는 힘, 세계를 재편하는 역량을 발현하고 있다. 2015년 페미니즘대중화이후 여성작가들의 SF페미니즘 작품들이 급증하고 독자들의 인기, 페미니즘 실천으로서의 읽기와 더불어 한국의 페미니스트SF가 시작되고 있다.

 

오정연의 남십자자리

 

오정연의 남십자자리는 올해 38 세계여성의 날에 출간 된 SF페미니즘 두 번째 앤솔로지 우리는 이 별을 떠나기로 했어(2021/허블)에 수록되어 있다. 작가 오정연은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마지막로그을 통해 SF작가로 등단했다. 마지막 로그자신에게 생애 최고의 일주일을 주고 싶다라고 죽음을 예약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2078년 안락사가 가능한 시대, 생을 스스로 마치고자 실버라이닝(양로원과 안락사시설)에 입소해 7일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기록이다. 남십자자리는 작가의 첫 작품 마지막 로그의 실버라이닝의 시설의 완성판이자 인간다운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의 연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남십자자리평균연령 114세 양로행성에서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들과 함께 유사일상을 살아가는 노인 해리와 지구의 휴머노이드 유지보수관리팀장 미아의 이야기다. 대략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6년 전 해리는 80세가 지나자 양로행성으로 이주했다. 지구밖의 양로행성은 노인 12천만여명이 거주하고, 이들을 부양하는 것은 1063만여구의 휴머노이드다. 양로행성은 거대한 인공지능AI에 의해 모든 것이 관리통제되는 무인행성이다. 양로행성은 자기인식이 가능한 워킹메모리(기능과 활동분야에 적절한 맞춤기억)를 탑재한 휴머노이드가 100% 케어를 담당하고 있다. 병상에 누워있는 2천만명을 부양하는 단순보호사 휴머노이드를 제외한 1천만구의 휴머노이드는 24시간 활성화로 양로행성의 1억명의 인간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일상을 제공한다. 그러던 중 특정 휴머노이드가 이상행동을 보이고 고장이 접수된다. 휴머노이드 한구당 하루평균 40.8명의 인간과 그들의 건강상태에 따라 (간병과 돌봄을 위한)상호작용서비스를 하고 있는 셈인데 고장은 심각한 문제이다. 지구에 있는 미아는 고장의 원인조사와 신기술의 임상실험대상을 찾기위해 출장을 온다. 해리의 치매는 서서히 진행되고, 미아는 해리와의 우주여행을 하고 지구로 돌아간다.

 

초고령사회의 미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도심 속 많은 십자가들보다, 언젠가부터 곳곳의 어르신 보호시설, 요양원과 요양병원 건물들의 불빛이 더 눈에 들어온다. 도심을 벗어난 지역, 농촌은 60대가 청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마을 전체가 70대이상의 노인들인 경우도 있다. 오정연의 양로행성은 지구 밖이 아니라 지구안 곳곳 우리 주변에 있는 셈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고령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평균수명이 11위로 78.8/85.5세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으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노인1인당 사망 전 요양병원, 요양원 입원은 평균 23개월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 기대수명이 더 늘어나면 더 오랜기간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고령화사회에 일찍 진입한 일본의 경우는 평균 남자는 10, 여자는 13년을 병원과 요양원에서 보낸다는데 일본 다음으로 기대수명이 긴 우리나라도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선진국들은 1970년대부터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여 일찍부터 에이징 테크(Aging-tech)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에이징테크기술(실버/장수기술)발달과 반려로봇, 헬스케어 스마트웨어러블디바이스, 인공지능스피커 및 인터넷네트워크를 활용한 가전제품제어기술, 경증치매환자를 돌보는 돌봄로봇 등 국내에서도 돌봄로봇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스마트토이 로봇을 고령층 대상으로 제공해, 인공지능 돌봄서비스를 실시했다. 간단한 말동무부터 긴급S0S호출, 건강지키미(체조나 약복용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기능부터, 우울증이나 만성질환, 인지장애로 힘들어 하는 독거노인맞춤형컨텐츠 제공), 치매예방서비스(두뇌톡톡) 등 치매환자 및 독거노인과 대화하고 반응형센서가 내장되어 사용자와 교감할 수 있는 돌봄 로봇이 보급되고 점차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술과학의 발전은 우리의 삶의 조건을 재편하면서 물리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뿐 아니라, 변화가 수반하는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들을 끊임없이 성찰하게 한다. SF는 가능한 변화를 상상하고 그 변화로 인해 재편된 세계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초고령사회 우리는 어떤 인간적인 삶/죽음을 만들어가야 하는가 ? 인생의 마지막 순간 포스트휴먼이 여는 돌봄의 미래가 우리의 가야할 여정일까?

 

평균 연령 114세 양로행성과 폐기위성

 

긴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폐기 직전의 인간들의 보금자리” (195)

그래봤자, 대면하고 싶지 않는 예정된 미래를 멀리멀리 보내 버리겠다는 거잖아. 대단하지 않냐? 인간이 인간이지 않는 상태로 얼마나 오랫동안 생을 지속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우주적 규모의 실험, 저건 대처가 아닌 방관이지” (182)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가는 곳이야, 나도 이제 나 살고 싶었던 대로 한번 살아보자” (158)

 

웜홀을 통해 먼 우주여행이 일상화된 시대, 양로행성은 지구의 남십자자리로부터 몇광년 떨어진 외계행성으로 대부분의 지구인들은 행성위치를 눈으로 더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주인공 해리는 20-70대까지 다양한 직업(보험설계사, 어린이집 선생님, 콜센타상담원, 가전제품수리기사, 특급호텔주방장, 육아 도우미 등)으로 경제활동을 한 후 15년의 은퇴 생활을 보낸 뒤 양로행성으로 이주했다. 해리에게는 자신의 남은 인생의 밑그림 즉 인생을 어떻게 보내고 싶다는 확실하고도 구체적인 바람이 있었다. 해리의 바램대로, 양로행성입주신청서에는 해리가 원하는 정체성, 가족형태, 직업, 거주형태와 생활환경(독신, 지역도서관사서, 아날로그 모방한 주거 등)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

1억명이상 거주민을 거느린 양로행성은 무인행성으로 행성 전체를 다스리는 거대한 인공지능 안에서 크고 작은 인공지능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양로행성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거주민들을 2구역으로 나누어 운영한다. 유사직업생활이 가능한 7,200명이 살아가는 A구역과 치매가 일정단계 이상 진행되어 인지 및 신체 능력상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불가능한 2,800만명이 관리되는 B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A구역이 은퇴자를 위한 거대 테마파크 겸 거주지라면 B구역은 테마파크기능을 탑재한 요양병원이다. 실제 경제활동이 가능한 실 거주민과 살고 있는 A구역의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는 일상을 채워가지만, B구역 주민들은 알츠하이머(치매) 진행정도에 따라 휴머노이드에 의해 세심하게 제공된 유사일상환경에서 살아간다. 양로행성의 거주민들은 행성을 발을 들이는 순간 행성시스템에 모든 것이 귀속되어 경제활동은 물론 이동의 자유 등 많은 행위가 금치산자 수준으로 제약받게 된다. 입소와 달리 퇴소는 자의로 결정할 수 없으며, 가족이 양로행성 방문하는 것은 자유로우나 행성안과 밖의 여행은 절차와 검사가 까다롭게 적용된다.

인간의 노화와 질병, 죽음의 미래를 대비하여 설계된 지구밖 양로행성, 언제가 닥칠 미래를 생각하며 자신의 마지막 여생을 선택한 해리, 양로행성은 도래할 디스토피아일까? 유토피아일까? 양로행성의 거주민들은 대량생산된 로봇(AI)이 아니라 개인기억, 자아인식, 돌봄과 간병기능이 가능한 휴머노이드가 24시간 활성화되어 그들을 케어한다. 인공대기처럼 행성을 메우고 있는 인공지능에 모든 것을 의탁해 버린 초고령미래사회의 모습이다. 주인공 해리는 가능한 기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와 힘으로 해내야 한다는 작은 신념과 생활수칙을 지키며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려 노력한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노화, 질병, 치매 양로행성 거주민들의 두려움은 A구역에서 B구역 판정을 받는 것이다. B구역 이주결정이 내려지는 기준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해리.

 

“B구역 주민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본인이 누구이며 왜 이곳에 있는지 깜빡하기 일쑤였는데,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없어 간병인외에는 만날 사람이 없는데도 거울을 손에 놓지 못하는 인간, 목표없는 인간의 갈 곳 잃은 눈빛, 자꾸만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하루 열 번씩 끼니를 요구하며 반찬투정을 하는 인간, 잘가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매일 아침 마지막 인사를 나눈 지 168일째 (중략) B구역은 달라 익숙했던 나 자신이 점점 멀어지고, 새로운 자아가 그 자리를 파고드는데 저항할 수 없지. 그렇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과정이 심지어 순차적이지도 않아, 얼마나 오랜시간이 걸릴 지도 몰라, 상상이 가? 그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는 심정?” (180)

 

양로행성에는 지구의 달처럼 위성이 존재하는데, ‘폐기위성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태양계 곳곳을 비롯한 우주 구석구석에서 인간이 생산하는 지상 및 우주쓰레기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 되자, 행성전체를 폐기물 처리용도로 사용하자는 해결책이 현실화된 결과물이었다. 마치 지구에서 폐기처리된 양로행성처럼, 양로행성에서도 다시 배제, 격리, 버려질 B구역 거주민들처럼. 소설에서 폐기위성은 미아와 해리의 우주여행지이다. 여행은 두사람만의 오랜된 약속이다. 지구에서 달을 보듯 둘은 우주정을 타고 먼 우주의 시공간을 건너온 쓰레기들위(폐기행성)에서 양로행성을 바라보며 하룻밤을 머물며 추억을 잇는다. 그들은 양로행성이 위성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뒤 반대편에서 항성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칠흙같은 어둠의 구간들을 넘겨야 한다. 심연(Abyss),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구간, 어둠을 더듬어 서로를 토닥이며 함께 건넌다. 해리의 사라진 기억의 심연, 어둠 너머 미아가 길을 찾아간다.

 

기억제조와 관리업체 워킹메모리/포스트휴먼-휴머노이드(돌봄과 고강도 간병 AI)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인간 이후의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미아는 양로행성의 휴머노이드를 만든 워킹메모리에서 일한다. 휴머노이드의 기능과 활동 분야가 다양해 짐에 따라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로봇이 아닌, 삽화적 개인 기억-오감을 풍부하게 채운 기억을 동반한 안정적인 자기인식이 필요해졌다. 미아의 일은 인공지능의 용도와 인격에 맞는 최적의 기억을 제조하여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다. 일명 기억제조사개별의 삽화적기억을 조합하여 하나의 인격으로 만들어 안정된 자아를 형성하여 환자와의 안정된 관계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초기인공지능상담로봇의 개발과정과 환자와의 마음치료를 통해 발전하는 인공지능변천사는 흥미롭다. 미아 회사는 기억을 제조하여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을 만들고, 반대로 인간은 치매와 블루필로 기억을 잃거나 지워져 결국 사이보그, 포스트휴먼이 된다.

양로행성 B구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개발된 신약 블루필. 해리는 미아 회사의 임상실험적합대상으로 선정되어 스스로 사이보그가 된다. 블루필은 일종의 인체에 이식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치료나 예방의 목적이 아니라 치매라는 절망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기술이다. 치매에 걸린 인간을 불량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총체적으로 기능이 저하된, 그러나 수리나 교체가 불가능한 중앙처리장치로 생각한다. 즉 부실해진 하드웨어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에뮬레이터를 달아주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치매 진행 중인 해리의 기억을 트레이드오프, 해리의 현재와 과거, 신규화일의 저장공간과 처리속도을 확보하기 위해 저장여부조차 가물가물한 옛파일(과거의 기억)을 바꾸는 기술이다. 기술의 발전은 영원한 생명을 꿈꾸는 인간에게 기계와의 결합을 통해 생물학적인 인간을 넘어선 인간생산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인간은 점차 기계화되어 가는 반면에 기계는 외형뿐 아니라 인간의 사고능력과 감정까지도 닮아가고 로보사피엔스 단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돌봄과 간병 휴머노이드의 제조과정과 간병노동강도로 인한 잦은 고장에 관한 것이었다. B구역은 치매정도에 따라 100% 휴머노이드의 케어를 받는다. 케어를 수행하는 휴머노이드는 고된 돌봄과 간병노동으로 고장이 발생한다. 미아는 치매간병이라는 일의 특징을 고려해 휴머노이드의 자아민감도를 최대한 낮춰 제작을 한다. 그러나 언제나 제자리인 인간을 구원하는 일의 스트레스는 엄청나 휴머노이드의 자아를 좀먹는다. 또한 인간의 노화와 치매방식은 저마다 달라서 휴머노이드와 인간이 호흡을 맞추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고 일상적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쌓이는데도, 상호작용 레벨을 낮추거나 기억을 포맷할 수도 없다. 고작해야 휴머노이드의 자아민감도를 낮추는 방법뿐이다. 그럼에도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진 휴머노이드는 인간다워져서 잦은 고장을 일으킨다. 이와 반대로 인간답지 않은 돌봄로봇과 인간보다 나은 간병로봇작품이 비교가 된다. 바로 윤이형의 대니와 김혜진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이다. 윤이형의 소설 대니에서는 육아돌봄로봇이 등장한다. 로봇대니는 미아가 만든 휴머노이드와는 달리 사람에게 있는 감정이 없어 절대적인 안정과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24시간 아이와 함께 고립된 공간에서 기계처럼 일해야 하는 양육이라는 돌봄노동의 성격, 노동의 강도,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 엄마의 소외된 노동의 현실을 반영한다. 김혜진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TRS간병로봇의 기능은 비용에 따라 사양과 사용기한이 정해진다. 식물인간 상태의 어머니 간병을 힘들어하는 인간 성한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TRS는 성한의 어머니가 죽지 않을 경우 보호자인 성한이 자살할 확률이 95% 이상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고 인간대신 선택한다. 양로행성의 휴머노이드는 대니와 TRS의 다른 버전인 셈이다.

SF소설이 제시하는 로봇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의 질문을 던지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질문안에 기능하고 있는 정치적, 윤리적 문제이다. 인간/비인간을 가르는 구분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대로 곧 인간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가는 정치화 과정 안에서 이루어진다. 오정연의 인간다워지는 로봇이야기는 인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담고 여성의 소외된 돌봄과 간병노동으로부터 해방과 소망이 투영되어 현실을 고발한다. 현실의 대니와 TRS는 로봇이 아닌 인간여성들이다. 요양보호사 94.7%가 여성인 노동현실, 돌봄과 간병을 하는 노동자들, 타인을 보살피지 않는 노동은 거의 없다. 모두 대인서비스다. 현재 여성들이 하는 돌봄노동은 대개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되고, 계량화하기 힘들며, 무임금이거나 저임금노동으로 사회적 가치가 낮다.

 

다독임-상호의존과 돌봄/친족자매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으며 잘못된 것은 없다라는 다독임이었다” (187)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 네가 기억해주면 되지” (204)

 

작가는 양로행성, 즉 노인의 첫 번째 불안감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 현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의 배려와 다독임이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다독임이 가능할까? 서로를 감싸고 편이 되어주는 것. 누구나 나이들고 취약하고 병들고 아픈 몸이 될 수 있다. 상호의존과 돌봄은 인간 삶의 조건이며 관계맺기와 연결을 통해 이루어진다. 미아는 비혼모의 딸로 해리는 미아의 육아도우미였다. 그러나 의무감으로 키운 해리의 친자식보다 더 가까이 서로의 삶을 기억하고 보살피고 연결한다. 해리와 미아는 양로행성의 기술(휴머노이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닌 돌봄의 새로운 대안적 친족관계(공동체)을 만들고 확장한다. 서로 돌보고 또 함께 돌봄을 실천하는 새로운 친족자매 메이까지, 해리와 미아, 해리와 메이의 삶은 지속되고 서로의 낮과 밤이 포개진다.

 

초고령화사회,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

 

지금을 함께하기 위해 함께 살기 ” (206)

 

어쩌면 SF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가능세계의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가능성보다 불가능성을, 성공보다는 실패를, 비전보다는 한계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르인지도 모른다. 과학적으로 가정된 법칙에 따라 우리가 어디에서 부딪치는지, 걸리는지, 멈추게 되는지 알려주는 장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때로는 우리가 누구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현실적인 조건 속에 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오정연은 양로행성을 통해 초고령미래사회의 기술발전이 어떻게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지 보여준다. 특히 인간과 휴머노이드, 포스트휴먼의 미래상, 기술발전이 인간의 더 나은 노후의 삶/죽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대안적 세계를 상상할 수 있도록 한다. 과학기술이 고령화사회를 형상화할 때 지구밖 외계행성과 폐기행성, 지구와 달, 빛과 어둠, 늙음과 젊음, 해리와 미아, 북두칠성과 남십자자리, 삶과 죽음, 인간과 휴머노이드 등 소설 속 상징과 은유를 통해 풍부하게 풀어낸다. 장르문학의 독창성은 장르의 관습을 알고 적절한 도상과 소재를 활용하되, 조금 새로운 이야기 공식과 문법의 결합에서 나온다. 새로운 이야기는 부족했지만 SF의 관습과 도상,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고령화, 돌봄과 간병 등 동시대적 현실의 연결성을 드러내어 재사유하게 한다. 또한 이제까지 SF페미니즘 안에 로봇의 젠더화를 다룬 소설보다 진일보하였고 돌봄로봇 즉 휴머노이드의 소재를 풍부하게 해 주었다. 이로 인해 간병과 돌봄을 둘러싼 여성노동현실은 드러내 주었으나 초고령사회의 고강도간병노동, 포스트휴먼의 전망이 아쉬웠다. 소설 속의 미아, 해리, 메이 3명의 인물들이 때론 우주의 행성을 가로질러, 양로행성의 구역과 경계를 넘나들며 연결하고 연대공존하는 대안적 관계망과 (친족)공동체는 희망으로 다가온다. 다름을 넘나드는 돌봄, 인간, 비인간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돌봄이 필요와 지속가능성에 따라 공평하게 그 가치가 인정하고 사용되는 돌봄의 윤리가 필요하다.

노화는 어제와 똑같은 일을 했는데 늘 조금 더 힘들어지는 것. 해리의 일상을 유지하는 제1생활수칙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다. 결국 노인은 늙어가는 과정에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몸상태는 전보다 나아지지 않는다. 작가 오정연은 해리의 기도를 통해 매일의 기도는 항상 같았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죽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말한다. 방치된 미래에서도 삶은 지속되고, 시작한 인연을 소중히 키워가며, 매일 아침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며 옆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주고 받는 것, 감정을 담아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금을 함께하기 위해 함께 살기로 했으니까 그러니 과거도 미래도 아니라 지금을 함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