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reading /소설읽는 밤

임솔아 작가의 ‘단영’을 읽고

지산22 2021. 2. 17. 16:09

20210217 아침솔바람

 

임솔아 작가의 단영’을 읽고

 

 책 속으로 단영(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2020/은행나무)

재잘거리는 단영과 공양주보살 조와주, 주지 효정, 아란 등 비구니절 하은사의 식사시간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하은사는 종단에서 준 비용으로는 증축이 어려워 신도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주지인 효정은 하은사의 질경이짱아찌가 인기있는 수익상품이 되어 사찰음식으로 인기를 얻어 대량생산을 하게 된다. 연이어 효정은 도시에서 떨어져있는 외지고 은둔하는 비구니 절의 사찰음식과 차, 꽃과 경관 등을 블러그 등에 홍보하고 관광상품 팔 듯이 하여 짧은 시간에 300억 규모의 안정적인 사찰로 자리잡게 한다. 사찰이 나날이 확장되고 효정은 하은사를 이어갈 수행자를 찾는다. 고아인 단영을 후계로 생각해 데려다 키웠으나 단영은 거부한다. 결국 수행자를 찾기 위해 10대 여성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세워 월1회 한명씩 하은사에 머물게한다. 그녀들 중 누구라도 비구가 되기로 한다면 하은사를 물려받게 된다. 이렇게 찾아온 17세 아란은 효정의 권유에 의해 행자생활을 하게 된다. 그 뒤 아란은 하은사에 들어온 능원과 쌍둥이처럼 함께 다니며 친하게 지낸다. 그러나 능원은 소리없이 갑자기 하은사에서 사라진다. 단영과 아란은 수행자인 효정의 이중적인 모습에 실망을 하고 효정은 단영을 하은사에 내보내려고 데려갈 신도를 물색한다. 결국 아란은 하은사를 나가기로 하고 단영에게 자신을 찾아오라한다. 아란은 어느날 소리없이 사라진 하은사의 많은 여성들처럼.....

 

함께 나눈 이야기

1) 무성의 수행자로서 살아남을 수 없는 비구

유난히 정갈하고 소박하고 사시사철 꽃이 피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찰을 떠올려보면, 부드러운 미소로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보살피는 비구니절 한두개는 떠올릴 것이다. 서울에 살 때 도봉산자락의 녹야원이 생각한다. 봄이되면 법당 앞마당엔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고, 분홍꽃잔디와 이름 모를 마당가득핀 꽃화단, 화단 오솔길따라 작은 석등연못의 꽃들, 법당마다 놓인 화병들과 꽃꽂이, 돌담길 따라 아기자기한 동자스님들의 석상들이 넉쿵식물들과 동화의 한장면 이야기세상속의 주인공들처럼 올려져있다. 절내 차향기가 은은하게 퍼지고, 말없는 비구스님들이 미소를 지으며 반긴다. 돌아보니 별천지 같은 녹야원에서 시든 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속세와 떨어져, 꽃과 같은 아름다운 곳의 부드러운 미소와 위로와 보살핌 신도(사회)의 존재가 되어야 하는 이상적인 여성성을 구현하는 비구니 절 하은사. 하은사의 비구가 상품이 되고, 비구의 여성성으로 재현된 꽃과 온화한미소와 음식이 수익상품이 되어야만 살아남는다. 속세를 벗어난 수행자마저도, 수행이라는 해탈이 아니라 비구라는 여성/여성성에 어쩌면 더 철저히 생존을 위한 속세의 시스템이 맞물려 이중, 3중의 감옥에 놓여 있다.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하은사에 여성들은 들어오고 소리없이 사라지고 효정은 밤마다 꽃을 짓밟고 다닌다.

 

2) 닮아간다. 사라진다.... 그리고 남은 것은

산 위 수행의 삶과 산 아래 속세의 삶의 생존의 룰이 다르지 않다. 수행(종교)의 본질이 해탈(구원)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욕망으로 일그러질 때, 나쁜권력이 되고 타인과 약자의 삶을 짓밟고 신의 이름으로 가혹하게 버려진다.

 

하은사를 유명한 비구니 사찰로 만든 능력있는주지 효정은 자본주의 시장과 남성중심가부장제사회의 여성/여성성에 대한 욕망과 자원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상품으로 팔고 금권()을 갖게 된다. 하은사에 거쳐간 여성들은 속세의 룰에 벗어나거나 따르지 않아 살아남지 못하는 취약한 여성들이다. 10대 불우한/낙태를 한 청소녀부터, 이혼 또는 취업 등 자본주의 시장에서 밀려나 낙담한 여성들이었다. 효정은 삼천배를 올리고 철야기도를 하는 조건으로 여성들에게 쉼터와 같은 숙식, 기거할 곳을 제공한다. 수행이라는 이름의 삼천배와 철야기도(입을 닫고 순응하라는 가부장제)는 폭력이 되어 여성들의 상처와 처지를 억누른다. 생존을 위해 대안없는 선택에 최선을 다한 효정, 효정은 여성들을 사라지게 하는 산아래 권력의 얼굴을 닮아간다. 이상적인 여성성을 구현한 비구- 온화한 미소를 지을 수 없는 여성들은 이상한 여자, 거짓말 하던 여자 헛소리하는 여자들로 취급되어 사라진다. 아란을 끌어안고 버텼던 능원도 사라졌고 결국 아란도 사라진다.

 

3) 사라진 여성들이 만들 다른세상을 꿈꾼다.

정형화된 여성/여성성을 벗어나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정체성을 갖고 목소리를 내면 이상한 여자가 되고, 가부장제사회의 순응하지 않거나 살아남기 위해 저항하면 거짓말 하던 여자가 되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새로운 대안세상을 원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하면 헛소리하는 여자들이 되어 사라진다.

사라진 여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 사라진 여성들은 우리곁에 가까이 있다. 이상한 여자들과 거짓말하던 여자들과 헛소리하는 여자들이 모여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써보자.

수행이라는 강요된(혹은 고정된) 집단의 모습과 정체성을 거부하는 단영과 그런 단영을 위해 새로운 삶의 자리(연대)를 만들기 위해 손을 내미는 아란이 살아갈 세상이 기대된다. 아란과 다정이 다른 세상은 효정의 권력, 효정이 살아왔던 시대의 사회와 종교(집단)을 해체하고, 서로를 스스로 구원하여 새로운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가길 응원해본다.

 

인상깊은 문장들

 

효정이 하은사에 온 이후로 처음 얻은 깨달음은 불경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는 것이었다. 출가를 한 승려는 무성의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규율은 누구나 다 아는 전제 조건이지만, 비구니는 결코 무성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신도들은 이상적인 여성성을 하은사에서 만끽하고 싶어했다

 

많은 여성들이 하은사를 거쳐갔다. 대안 교육 명령을 받은 아란 같은 청소년들, 낙태를 하고 찾아온 십대,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이혼을 결심한 여자, 십 년 동안 임용고시에서 떨어진 채 낙담한 여자, 퇴사를 하고 명상을 하겠다고 나타난 여자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