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2
SF 15: 켄리우의 종이동물원(황금가지/2018)을 읽고
켄리우는 1976년생으로 중국 란저우 출신으로 11세때 미국을 이민, 하버드대 영문학과 졸업, 마이크로소프트 등 프로그래머로 일한 후 하버드 법학대학원을 졸업, 변호사로 7년간 일을 했다. 대학시절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했으나, 2002년 ‘포브스 SF 단편선-카르타고의 장미’를 발표 소설가로 데뷔. 2011년에 발표한 ‘종이동물원’으로 2012년 휴고상과 네블러 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모두 휩쓴 작가. 2013년에는 ‘모노노아와레’ 휴고 상을 2016년에는 장편소설 ‘민들레 왕조 전쟁기’로 로커스 상 수상. 창작 뿐 아니라 2015년 류츠신의 ‘삼체’를 번역했다.
켄리우, 작가의 머리말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판타지와 SF, 장르문학과 주류문학에 별 관심이없다고 툭 던진다. “ 나에겐 소설이란 손쓸 수 없을 만큼 변칙적이고 무분별한 현실보다 은유의 논리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기억의 본질이고,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우주를 견디며 살아간다고 한다. 번역자이기도 한 작가는 “모든 의사소통행위는 번역이라는 기적이다. 종이위의 기호들이 부딪쳐 파장이 되고....사유가 된다. 우리 정신은 어떻게든 서로에게 닿는다, 비록 짧고 불완전할지라고. 사유는 우주를 조금 더 친절하게, 조금 더 밝게, 좀 더 따듯하고 인간적이게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기적을 바라며 산다.” 작가의 사유의 기호들이 나에게 닿기도 하고, 지적동물의 뇌를 갖지못해 이야기의 미로속에 갇히기도 했다. 중국의 신화와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문자와 책을 넘나들며 지적 상상력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 흥미로운 작품들이었다.
종이동물원은 총 1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있다.
1. 종이동물원
2. 천생연분
3. 즐거운 사냥을 하길
4. 상태 변화
5. 파자 점술사
6.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만들기 습성
7. 시뮬라크럼
8. 레귤러
9. 상급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10. 파 (波)
11. 모노노아와레
12.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略史)
13. 송사와 원숭이 왕
14.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타리
1. 종이동물원
중국의 문화대혁명 혼란의 시기가 배경인 가슴아픈 이야기. 모든 것을 다 잃고 타국의 신부로 팔려가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시절, 중국인 엄마는 종이동물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어 나쁜 기억을 물리치며 아들에 대한 사랑을 전한다.
잭의 엄마는 1973년 18세 때 홍콩의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미국으로 시집을 온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엄마는 아들 잭에게 종이를 접어 호랑이 등 다양한 동물들을 장난감으로 만들어 준다. 어린 잭은 친구들로부터 짱개라 따돌림을 당하고 종이동물들은 쓰레기 취급을 받고 중국인 엄마도 중국음식도 원망스럽다. 결국 잭은 영어를 하지 못하는 엄마와 의사소통을 단절하고, 점점 엄마도 입을 닫는다. 시간이 흘러 잭은 성인되고 엄마는 암으로 사망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2년이 지나 우연히 종이동물 , 종이 호랑이 라오후를 발견한다. 그날은 죽은 이를 기리는 청명절이었다. 라오후를 접은 포장지에는 엄마가 남긴 편지가 있었다. 엄마는 아들 잭에게 온마음을 담아 중국어로 자신의 가족과 문화대혁명시절의 고통스럽고 슬프게 살아온 삶의 이력과 아들에 대한 사랑을 적어 놓았다.
2. 천생연분
인간은 생각하기를 멈추고 기계가 대신한다는 익숙한 이야기, 알고리즘, AI 빅테이터가 세상을 지배한다. 사람들은 거대한 센틸리언의 인공지능 틸리에 모든 것을 의존한다. 센틸리언은 세상의 정보를 편집하여 인류의 격을 높이자는 목표아래 인류를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 쾌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결국 사생활이란 없고 모든 것은 데이터화 되어 관리된다. 주인공 사이는 인공지능틸리에 의해 자신과 어울리는 이성을 소개받고 데이트하고 틸리에 의해 통제받는다. 사이의 옆집 제니는 인간을 원형감옥에 가두는 고삐풀린 알고리즘 센틸리언에 반기를 들고, 축적된 데이터를 파괴하려 한다. 그러나 파괴의 계획은 발각되고 오히려 센틸리언은 인공지능 틸리의 개선하기 위해 일해달라고 제안을 받는다.
“ 전자적으로 확장된 자아 없이는 살 수가 없게 된 이상, 당신들이 센틸리언을 무너뜨려 봤자 금세 다른 대체제가 등장해서 우리 자리를 차지할 겁니다...우리는 생각하기를 돕는 기계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그 기계가 우리를 대신해서 생각을 한다”
“ 차라리 센틸리언과 함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낫지 않을까요 ? 피치 못할 운면과 마주쳤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적응하는 것 뿐입니다.”
3. 즐거운 사냥을 하길
과거의 전설, 신화와 미래의 사이보그, 기술과 엮는 새로운 상상의 세계. 흥미롭게 읽은 작품이다. 중국의 전설 속 인간을 홀리는 마지막 요괴, 여우 후리징과 요괴사냥꾼의 이야기다. 후리징은 사악한 요력을 얻으려고 순진한 서생을 홀려서 정기를 빨아먹는 요괴, 그러나 마지막 후리징 염은 인간에서 여우로 변신이 점점 어려워진다. 여우로 변신을 하지 못하니 사냥도 쉽지않고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요괴사냥꾼 량도 쓸모가 없어진다. 염과 량은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위해, 홍콩으로 이주한다. 철도와 전기의 시대가 지나고 시간이 흘러 량은 기계를 만지는 사람이 되고 염에게 자신의 몸의 변신을 청한다. 금속과 불을 이용해 염을 사이보그 요괴로 만들어 준다. 자유롭고 무자비한, 새 시대를 위해 만들어진 후리징.
금속/기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사람의 육체보다 기계를 더 좋아한다는 거(로봇을 좋아하는 것?), 어떻게 해야 사람 몸을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고 신경을 전선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실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어쩌면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에게 인간의 경계선 자체가 도전일지도 모르겠다.
(전형적인 여성혐오신화, 남자홀리는 여우, 창녀와 정부가 되는 후리징, 사이보그가 되어 몸이 기계로 해방이 되어 과거와 다름없이 미래를 위해 사냥하는 후리징 ?)
4. 상태 변화
인간과 더불어 생과 사, 영혼이나 靈에 대해 관심이 많다. 영혼이나 영이 물성으로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기도 했는데, 소설 속에서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쉽게 풀어나간다. 자신의 영혼이 사물에 부여되어, 영혼을 곁에 두며 관리해야 한다. 주인공 리나의 영혼은 각얼음이라 차가운 곳에 보관해야 한다. 자신의 곁에 냉장고나 이동시에는 보냉통에 안전하게 보관이동해야한다. 리사에게는 영혼을 보존하기 위해 냉장고 확인은 생존이 걸린 문제. 영혼은 육체의 지척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가 죽어버리니까. 어떤 이의 영혼은 커피, 너도밤나무가지, 은숟가락, 조약돌, 담배한갑, 소금 등이다. 작가의 ‘성장=상태변화’ 라는 흥미로운 발상이 재미있다. 상태변화는 영혼이 담긴 물체가 상태변화가 되었을 때 성장한다는 이야기. 마음이 탁 트인 기분, 만사가 태평한 기분, 어디에든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영혼은 상태변화를 겪고 성장한 것이다.
육체와 떨어져 있는 영혼, 생과 사가 영혼관리에 달려 있다 ?
각자의 영혼은 어떤 물성으로 드러날까 ?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보고 싶은 이야기
5. 파자 점술사
중국현대역사, 대만의 2.28대학살 사건, 공산주의에 대한 시대의 아픔과 더불어 한자/파자로 운명을 읽는 매력적이고 슬픈 이야기.
1961년 미국에서 타이완으로 이주한 릴리다이어는 새로운 학교와 마을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우연히 중국본토에서 망명 온 간선생의 도움을 받고 야구를 좋아하는 그의 손자 테디를 알게 된다. 릴리는 간선생집을 방문하고 그의 파자점술, 한자로 점을 치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와 忘年之交를 맺는다. 릴리는 간선생의 삶과 2,28 대학살로 테드의 부모가 죽은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릴리는 우연히 간선생과 나눈 2 28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말을 하고, 그후 간선생은 체포되어 공산당의 스파이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테드와 함께 살해 당한다.
6.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만들기 습성
책과 독서에 대한 범우주적 이야기, 지적 생물인 작가의 상상, 사유의 확장을 잘 보여주는 단편이다. 서로 다른 6종들의 이야기.
“ 모든 생물종은 대를 이해 지혜를 전수하는 자기 나름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 사유를 눈에 보이는 곳, 만질 수 있는 것, 거스르지 못할 시간의 파도에 맞서는 방파제처럼 잠시나마 동결된 것으로 만드는 방법 말이다. 모두가 책을 만든다”
알레시아인들은 책의 말 뿐만 아니라 글쓴이의 어조와 음성, 억양, 강세, 성조, 리듬까지 담아낸다. 악보인 동시에 녹음이다. 이들에게 독서란 문자그대로 과거의 목소리를 듣는 것, 이들은 문자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금단의 도서관을 운영한다. 기계몸을 지닌 퀘촐리언 물려받은 지혜로 자신의 몸 자체가 책인 종족, 헤스페로인들은 죽기전 육신에서 적출되어 동결되고, 에너지로 이루어진 툴독인은 살아있는 텍스트들, 미세한 독자이자 작가인 카루에이인, 향과 맛으로 글을 쓰며 은둔을 즐기는 운토우인....모두가 책을 만드는 것이다.
7. 시뮬라크럼
시뮬라크럼은 원래 '유사성'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서 실재의 재현 또는 모방을 의미한다. 폴래리모어는 특정 시기의 사람을 인격(본질)까지 포착, 재현해서 현재에서 상호 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이용한 시뮬라크럼카메라를 발명하고 자신의 성적욕망을 충족한다. 13세 딸 애나는 우연히 아버지 폴의 시뮬라크럼을 이용한 4명의 여성과의 성애 장면을 보게되고 그 이후 아버지와 관계를 단절하고 집을 떠난다. 시뮬라크럼은 피찰영자의 의식패턴을 촬영한 스냅사진으로 ‘인격의 재현’을 캡쳐해 디지털화한 다음, 이것을 이용하여 프로젝트로 영사되는 이미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사고를 당하고 아버지를 만나는데 아버지 폴은 떨어져 있는 동안 7세 애나의 시뮬라크럼을 통해 딸과의 유대감과 연결감을 유지하며 영원한 과거를 현재로.... 애나는 사진, 영상, 홀로그래피...그렇게 실재를 포착하는 기술이 발전해 온 과정은 곧 현실에 관한 거짓말, 현실의 모습을 바꾸어 왜곡, 조작, 공상화하는 과정으로 현실을 그대로 정지시켜 보관하고 싶은 욕망이자 현실을 회피하는 욕망이라고 아버지를 떠난다.
누구나 한번 쯤 과거나 어떤 특정한 순간을 붙잡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시간을 정지하고 기억을 보존한다?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줄 아는 아이, 영원히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상대/아이를 박제한다. ?
8. 레귤러
탐정 루스는 살해당한 모나의 엄마로부터 사건을 의뢰받는다. 사건을 조사하던 중 모나와 같은 신종망막임플랜트시술을 한 성매매(콜걸)여성들이 연쇄살인을 당하는 사실을 발견한다. 범인은 안구(비밀카메라) 시술을 한 여성을 타켓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안구삽입된카메라를 적출하고 녹화된 성매수범/고위간부를 협박해 돈을 갈취한다. 경찰이었던 루스는 손과 발은 사이보그였고 몸에 레귤레이터를 장착했다. 레귤레이터는 대뇌와 혈관속의 도파민, 노르아드레날인, 세레토닌 같은 화확물질의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기본 감정을 조절하는 것으로 법집행기관의 실무자들은 반드시 몸 속에 심어야 한다. 레귤레이터는 인간들의 감정의 영향을 최소화하여 선입견과 불합리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직감이나 충동에 의존, 편견에 이끌리지 않고 원칙적(regular)으로 일하도록 하는 것이다.
손발/육체가 사이보그 기계로 대체되고, 감정을 일정하게 조절하다 결국은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되는 합리적인 기계인간이 되어가고, 인간과기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
9. 상급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가장 읽기 어려웠던 단편이다. 상급독자가 아닌 하급독자라 이해력과 더불어 가독성도 현저히 떨어졌다. 우주의 생물체들 텔로시아인, 이솝트로인, 틱톡인, 시리얼인, 포컬포인트호 승무원들의 다양한 생존방식과 인지활동에 대한 비교연구 ?
인상깊은 문장은
“사람은 누구나 배에서 살아. 지구는 별들의 바다에 떠 있는 커다란 땟목일 뿐이거든”
우주는 바다.
10. 파 (波)
인간을 창조하는 여와의 신화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인류의 미래. 시폼(바다거품)호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 처녀자리61 향해 400년이 걸리는 긴 항해를 하고 있다. 시폼호는 긴항해를 염두해 두고 설계되어 인구계획, 배아선별, 유전자 건강성, 기대수명, 자원 재이용과 회수율 등 철저리 관리된다. 어느날 지구로부터 영생의 기술, 새로운 의료시술을 받게 된다. 인간은 이제 죽음으로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우주선의 폐쇄 생태계에 따라 누군가는 죽지않는다면, 누군가는 지금 이상태로 어린아이로 영원히 머물러 있어야 한다. 엄마 매기와 아들 보비는 영생을 선택하고, 아빠 주앙과 딸 리디아는 노화와 죽음을 선택한다. 400년 동안 매기는 35세, 보비의 10세에서 육체로 동결되고 시간이흘러 처녀자리61에 도착한다. 처녀자리61에서는 지구에서 먼저 도착한 진화된 인류가 그들을 맞이한다. 처녀자리 61행성의 현생 인류의 몸은 강철과 티타늄으로, 두뇌는 그래핀과 실리콘으로 파괴가 불가능한 몸, 보호장비없이 우주공간에 살 수 있는 기계가 되어 부패하기 쉬운 유기체 육신은 버리고 진화했다. 육신을 금속으로 바꾸는 일은 하드웨어를 업드레이드하는 것이라며 영생시술을 받지 않았던 리디아의 후손 세라부터 최조의 기계인간이 된다. 결국 행성의 마지막까지 유기체의 몸을 가진 매기도 기계로....
인류는 다시 신세계를 찾아 우주로...매기는 자신의 기계의 틀을 버리고 빛의 일부가 되기로 한다. 에너지 패턴이 되어, 다른 이들과 합쳐지고, 뻗어 나가고,,,,,,
11. 모노노아와레
제목처럼 일본인들의 수용과 체념의 세계관과 정서에 바탕을 둔 작은 영웅 이야기.
호프풀호는 대략 300년 후에 처녀자리 61에 도착할 것이다. 호프홀에 승선한 주인공 히로토는 일본에서 보낸 어린시절과 지구의 남겨진 부모님/아버지를 생각한다. 어느 날 그는 우주선 표시등 패턴의 이상증후를 발견하고, 우주선 밖 태양 돛에 구멍이 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히로토는 우주선 밖의 태양돛 수리를 마치고 돌아오지 못한다.
“ 히로토 , 모든 것은 지나가는 법이란다. 지금 네 마음을 차지한 그 기분, 그건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われ)라는 거야, 삶의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지는 감정이지....그래서 우리 모두 결국에는 사라질 운명을 타고난 짧은 패턴일 뿐이야”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것은 타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그물속애서 차지하는 자리이다”
12.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 (略史)
1920년 대공항시기, 아시아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 횡단 터널건설과정에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 목소리마저 영원히 묵살당한 채 이름마저 잊히고 만 사람들.
9,408K 태평양횡단터널은 700만명이 참여해 1929년부터 1938년까지 10년간 진행되었다. 이 터널 공사에는 일본은 식민지 포모사, 조선인, 중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며 건설되었고 마지막 1938년 터널공사의 마무리는 만주와 중국의 전쟁포로들과 잡범들의 강제노역으로 충당하였다. 심지어 터널 폭파와 봉쇄 등으로 이들을 산채로 매장하였다.
13. 송사와 원숭이 왕
진실의 힘 앞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전호리는 어린시절부터 원숭이 왕의 모험담에 푹 빠져 살고, 매사 원숭이 왕과 혼자만의 대화를 하며 매순간 함께 살아간다. 글을 읽고 쓸 줄아는 그는 소소한 마을 사람들의 사정이나 송사를 도와주며 근근이 살아간다. 어느날 과부 이소의의 억울한 사연을 알게 되고, 재치로 송사를 해결한다. 며칠 후 이소의는 전호리에게 은밀히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소의의 오빠인 이소정은 황제의 부하들에게 쫓기는 신세였다. 그는 지난 100년전 만주족 군대가 양주성민들에게 가한 잔인한 학살, 유린, 약탈의 처참한 실태를 기록한 왕수초의 ‘양주십일기’ 책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호리는 고민 끝에 소의와 소정을 일본으로 피신시키고, 황제의 혈적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죽는다. 원숭이 왕은 양주에서 죽어간 이들이 기억을 지켜낸 전호리에게 경배한다.
“ 진실을 알아버린 지금, 원혼들이 계속 침묵하게 놔둬도 되는 걸까 ”
“ 그렇게 평범한 우리가 특별한 선택에 직면할 때가 있어. 그 선택이 순간에 영웅적인 대의는 우리에게 자신의 현신이 되라고 요구하기도 해 ”
“ 과거는 기억이라는 형태로 계속 살아가게 마련이고, 그래서 권력을 쥔 자들은 언제나 과거를 지우고 침묵시키려해. 원혼들을 땅속에 묻어 버리려고. 이제 자네도 과거를 알아 버렸으니 더는 무지한 방관자가 아니야.....자네가 목격자야...자네도 어떻게 할지 선택해야 해. 결정을 내려야 해. 언젠가 숨을 거두는 날 오늘의 선택을 후회할지, 안 할지를 ”
14.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타리
일본의 731부대는 생화학무기를 개발, 인체의 내구력 한계 조사연구 등 중국인과 연합군 포로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미국인 아케미기리노와 웨이 박사 부부는 뵘 기리노 입자를 이용 과거를 보는 기술을 개발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술이다. 웨이박사는 아시아의 아우슈비치라고 불리는 하얼빈의 핑팡지역의 731부대 잔악행위를 목격한다. 또한 731부대 희생자의 유가족들 중 지원자를 받아 역사속으로 과거로의 여행을 한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과 나라에서 과거 여행자들의 목격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기리도 입자 관측법의 일회성에 대한 우려, 731부대 증언의 부정 등으로 ‘시간여행 전면 중지협약’을 체결하고 역사의 흐름을 역행한다며 웨이박사를 비난, 교수직을 박탈한다. 결국 웨이박사는 자살을 하게 되고 그의 죽음 후 부인 아케미기리노는 남편에게 감추었던 비밀을 드러낸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731부대의 외과의사였고, 그녀는 뵘기리노 입자를 통해 과거로의 여행을 갔었다. 외할아버지는 731부대에서 그녀의 할머니와 엄마에게 편지를 쓴 후 실험실에서 방금 꺼낸 사람의 따끈한 사람의 뇌를 바라보는데....
“가장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가 아니면, 도대체 언제 사람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
“사람의 진정한 본성은 암울한 시절에 막중한 압박감에 시달릴 때에만 드러나는 법입니다”
“괴물이라는 말....괴물 같은 건 없습니다. 우리가 괴물인 겁니다”
“진실은 연약하지 않고, 누가 부정한다고 해서 훼손되지도 않습니다. 진실은 아무도 진짜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숨을 거둡니다”
“과거를 떠난 희생자들의 침묵은 그들의 목소리를 복원할 의무를 현재에 부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무를 기꺼이 떠맡을 때 비로소 더 없이 자유로워 집니다”
“우리 모두는 망자들의 착취자 노릇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과거는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발 딛는 곳마다 마치 창밖을 내다 보는 것처럼 쉽게 과거를 보게 해 주는 뵈기리노입자장이 우리를 뒤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작품은 일본에서 글을 쓰는 황모과의 ‘밤의 얼굴들’에 수록된 ‘니시와세다역 B충’과 ‘연고, 늦게라고 만납시다’가 떠올랐다. ‘니시와세다역 B충’은 1989년 사망한지 20년이 지난 유골들이 발견되고, 2차세계대전 육군의과대학의 카데바, 731부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종전이 끝인 후에도 1970년까지 인체실험실이 존재했다는 이야기, 결국 발견된 유골을 이용 DNA 증폭과 자기복제기술을 적용, 기억도 복원해서 입력한 후 홀로그램을 만들어 그 데이터가 직접 과거를 증언하는 이야기다. 또한 ‘연고, 늦게라고 만납시다’에서도 일제 강점기부터 발생했던 주요 의문사 관련 유족들이 자발적으로 DNA를 입력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전세계 각지에서 수습된 한국인 추정유골 테이타와 매칭해 찾고,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증언시스템의 증강현실속으로 찾아가기도 한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증언자들의 구술과 각종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사건 당시를 재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잊혀진 역사의 공백과 감춰진 이야기를 밝힌다.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의 얼굴과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서서히 괴물이 되어가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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