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2
# LETTER 15 삶의 풍경과 맥주한잔
어제는 봄이더니 오늘은 여름이야, 한낮의 더위에 선풍기를 찾고, 해질녘 자전거에 스치는 바람이 반갑네. 사계절 옷을 꺼내놓고 살아야한다는 기후위기에도 멈추지않는 소비와 코로나를 핑계로 점점 늘어나는 쓰레기들... 여름과 겨울이 점점 더 빨라지고 길어지고, 환경재앙, 기후우울로 순간순간 멈추자고 다짐을 하면서도 4캔의 만원하는 맥주를 사들고 기뻐하며, 오락가락하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되네.
H의 마음의 날씨와 재발한 허리, 어쩔까? 아픈 몸보다 더 힘든 마음의 통증이 느껴지네. 힘겨운 일상과 심리적 탈진, 아서프랭크의 상처입은 스토리텔러가 떠오르고 그럼에도 삶의 물음에 마주하고 자신을 반추하고 곁을 돌아보고 이해하려는 H, 편지를 읽으며 H가 우산없이 홀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어. 시간이 가면 비는 그치겠지만,...우산대신 몇일전 읽은 소설의 한귀절로 위로의 마음을 전해. 비맞으며 외로이 스스로에게 과한 책(責)은 하지 않길.
“ 우연히 이뤄지는 일도 없고, 한가지 원인에서 한가지 결과가 도출되는 것도 아니다.....기울인 수고에 맞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을 누구탓이라고 해야 할까?...애쓰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애쓴 것이 반드시 이뤄지는 것도 아니라는 세상의 이치를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상실감과 슬픔은 시간과 함께 묽어지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과 함께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
-이승우의 ‘마음의 부력’중에서
파타고니아 바이세 500ml, 버나드 보헤미안, 오뎅, 에어프라이어, 지구는 결국 멸망하고 목성 박물관 1억년을 위해, 에코페미니즘, 사라지는 것은 여자들이거든요, 아침솔바람, 소금꽃당신, 2021년 조직교육관련노트, 외로움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크릿터, 무례한 시대를 품위있게 건너는 법, 후회와 회한, 연기(緣起), 나이들수록 빼앗기기 전에 스스로 내려놓아야 한다. 21명의 changers, 김점선의 기쁨, 다시 오뎅과 에어프프라이어, 호가든, H의 편지-편지를 써야지 마음을 먹고, 수요일 밤 11시 10분 전 지금 이순간 내 삶의 풍경이야.
H, 마음을 나눌 수 없다면 서로의 삶의 풍경이 될 수 없겠지. 자연스럽게 인생에 풍경이 되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 누군가의 삶에 배경이 되어주고, 삶이라는 연극에 등장한다는 영광. 의미있는 조연들이겠지, 상대에게는 내가 스쳐가는 엑스트라이지만 나에게는 내마음을 준 조연. 준 마음을 후회는 하지 말자. 마음은 노답이 없는 것, 인연이라는 강에 마음을 다해 서로의 삶을 만나고 현재에 머물 수 있다면 더 좋겠지. 함께 머물 수 없는 지금이라며 흐르는 인연의 강에 서로를 흐르게 하는 거지. 다시 만날 언젠가를 위해.
파타고니아 바이세 밀맥주를 좋아해, 남미피츠로이, 세레토레 등 트레킹을 언젠가 가고 싶어. 파타고니아 파란맥주캔 배경도 좋아. 봄바람의 유혹에 굴복해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네. 4월 말부터 2주1회 수요일 야학으로 에코페미니즘의 고전 마리아 미스와 반디나시마의 책을 읽고 있어. 2시간동안의 낭독과 토론을 끝내고, 함께한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지 못한 후회와 뱉어낸 말에 대한 회한을 핑계로 맥주를 먹네. 한동안 좋아해 즐겨 마셨던 체코의 버나드 보헤미안맥주 사은품 잔에 마셔. 안주로는 에어프러이어에 오뎅을 넣어 7분간 돌려 바삭쫄깃한 오뎅안주. 수요일은 일정이 가득찬 날이야, 수요조찬독서모임 아침솔바람을 시작으로, 격주 SF모임까지, 그리고 자기전 편지쓰기까지 열심히 산 나에게 ? 작은 위로와 치유음료를 주는 거지.
책상에 류츠신의 삼체3권이 펼쳐있어. 총 1.950쪽 분량의 삼체 1-3권, 3권 800쪽 중 679쪽 드디어 지구는 외계문명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지구문명을 기록, 남기는 장면을 읽고 있어, 최첨단 기술의 먼 미래에 가장 원시적인 돌에 새겨 (돌에 세기는 방법이 가장 오랜 간다는 역설-1억년). 4월부터 자기전 밤마다 생쥐가 감춰둔 치즈를 혼자만 알고 먹듯이 삼체를 읽는 재미. 세계인구의 20%가 80%의 자원을 쓰는 현실, 제한된 자원과 현실에 살고 있으면서도 무한성장과 이윤을 위해 식민지-저개발국가와 제3세계에 비용을 전가하고, 약탈과 착취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아래 자연, 여성, 아이, 이주민은 내부의 식민지, 미래는 누구의 것인가 ? 환경정의없이는 지속가능성이란 불가능하며, 젠더정의, 세대간 정의없이는 환경정의도 없다고, 우리모두 마지막 사람, 마지막아이를 생각하자고 간디의 말을 인용하며 마리아 미스와 반디나시마님이 외치네. “당신이 아는 가장 혜택받지 못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시오. 그리고 당신이 한 행동이 그/그녀에게 해를 줄 것인지 아니면 혜택을 줄 것인지를 질문하시오” 80년대의 세계적현실을 드러내는 통계를 인용하며 93년에 나온 에코페미니즘책인데, 20년이 흐른 후에도 변함없는 현실, 아니 더 심화된 불평등과 위기와 재난의 미래를 가져왔다는 것에...다시 맥주 한잔.
오늘아침 여성작가단편을 함께 읽는 수요조찬북클럽-아침솔바람의 5월의 작가 최진영(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2020/은행나무에 수록), 그녀의 작품 ‘피스’의 오필남여사의 두딸 보배와 보람. 엄마인 필남은 남동생을 낳기 위해 필요한 존재였고, 그녀의 딸들은 남자보다 더 잘난 이가 되길 바라면서도 끊임없이 딸들에게 내재화된 가부장제로 일상에서 ‘여자가’라는 말고 온갖 먼지차별을 가하며 저주의 예언을 퍼붓는다. 남자보다 잘나면 ‘독한년’이 되고, 기준에 못 미치면 부족한 사람이 된다. 90년대 이후 태어난 보배와 보람자매 2-30대 여성들.
“이보배는 뭐든 뛰어나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엄청노력하면서도 자신은 한없이 부족하다 여겼으며 많은 것을 ‘운’덕으로 돌렸다.”
언니인 보내는 신자유주의 능력주의 사회(과도한 자기책임윤리)의 경쟁의 레이스에서 승자로서의 삶을 위해, 무한반복노오력하지만, 결국 자살을 시도, 열등감와 무력감에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동생보람은 자살시도한 언니로 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남자친구와 작은원룸의 공간에서 1000조각의 퍼즐을 맞추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퍼즐위에서 먹고 자는 삶, 생존만이 남고 꿈조차 꿀 수 없는 사회의 2-30대 청년들의 삶.
“ 상관없이 보이는 일들이 상관을 하며 굴러간다. 나는 견딜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는데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뭐라도 찟어발겨야지 ”
에이 속상해서 다시 맥주한잔. 금요일에 교육할 30대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 일한다는 말, 소진, 번아웃에도 버티며 자기혐오와 외로움에 각자도생하는 현실, 삶의 풍경이 사라진 나쁜환경을 만든 기성세대가 된 나를 돌아보며 씁쓸한 맥주한잔. 책상한곁에 소금꽃당신의 김진숙위원장의 뒷모습이 보인다. 어지러운 책상만큼 연이어 생각나고 이어지는 마음-연기(緣起), 이어지는 마음으로 편지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한잔. 나이들수록 스스로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는 조간신문이 떠오르고.....이제그만 술잔은 내려놓고 고개들어 김점선화가의 ‘기쁨’을 본다. 코끼리가 초록의 들판에 웃고 있다. H에게 기쁨과 웃음이 머물길.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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