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6
# LETTER 15 : 그늘 넉넉한 나무
H의 편지를 받고 열흘이 지났네. 16번째 편지를 받곤 답장을 생각하며 몇가지 (10년이라는 시간, 열심히 살다)단어를 메모해 놓고, 한계절이 지나버렸네. 5월은 영화속 설국열차는 아니지만 급행열차를 타고 사는 것 같다고 할까 ? 급행열차안에서도 앉아있지못하고 이쪽저쪽 종종거리며 바쁘게 살아버렸네. 바삐, 빨리, 급하게는 싫은데 말이지. 어쩌다보니 코로나장기화로 못 만났던 사람들, 미뤄두었던 교육들을 한꺼번에 하며 만났던 2주였네.
천천히 가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마라.
시간은 짧다.
그 음악도 언젠가는 그칠 것이다.
어딘가를 향해 너무 빨리 달리면,
그곳에서 얻게 될 행복은 반으로 줄어든다.
일생을 애태우며 허둥지둥 사는 것은,
열어 보지도 않은 선물을 버리는 것과 같다.
삶은 숨 가쁜 경주가 아니다.
조금 더 천천히 가라.
그 음악이 끝나기 전에
아름다운 선율을 마음에 새겨라
- ‘삶에 대한’(작자 미상) 시 중에서
오랜만에 석가탄신일 연휴를 맞이해 여성산악회 선배들과 충남공주의 캠핑장에서 별밤야영을 하며 산책독서모임을 했어, 10년 전 산책독서모임을 제안하며 산악회 선배들과 함께 만든 모임인데, 코로나가 아니었음 10주년 기념으로 몽블랑에 오르고 알프스를 돌아다니거나, PCT 장기 트레일을 걷고 있었을텐데 말이지. 어째든 오랜만에 그동안 줌을 통한 만남의 허기짐을 일시에 채워주는 시간. 아카시아 꽃비가 바람에 날리고, 나무그늘에 메단 해먹에 누워 책을 읽고, 시원한 맥주에 시름을 잊고, 별밤 토론을 했지. 밤새 불멍을 하며 몇몇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타프아래 텐트아래 침낭을 깔고 애벌레처럼 잠을 잤지. 다음날은 태화산 마곡사 연등아래 소원을 빌고, 작약꽃의 환영을 받으며 고요한 아침 푸른 숲길을 걸었어, 연결될수록 좋다는 말처럼...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함께 만드는 지구공동체의 평화로운 일상의 소중함, 코로나로 더 절실해졌네.
산책모임의 10년, 아련히 10년전의 나를 떠올리며 또 앞으로 다가올 10년후도 막연히 생각하네.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까 ?
오히려 산책은 10년전이나 10년후도 (늙어가는 몸들만 제외하곤)변하지 않고 그대로 인 것 같은데 말이지. 정작 나는 예측할 수 없네. 50에서 바라본 40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나 ? 50에서 바라는 60의 나는 얼마나 달라질까 ? 지금의 50의 나는 40과는 180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잠시 스쳐간 도시의 기차역에 내려 눌러 앉아 홀로 정착할 줄은 몰랐네. 50이 이럴진데 60은 가히 상상이 안되기도 해.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60, 아름다운 사람들과 흥겨운 선율에 춤을 출 수 있다면 더욱 좋겠는데...
“삶에 생로병사가 있듯 사람 간의 관계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은 한때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말을 처음 한 사람은, 모든 관계가 생로병사를 겪으며 자연사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게 분명했다. 나는 지척에서 우리에게 닿을 것처럼, 닿을 것처럼, 밀려왔다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사로 끝나는 수많은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기습적으로, 불시에, 사멸하는 관계들.”
- 백수린의 ‘길 위의 친구들’ 중에서
13년 된 단체의 일을 정리한다는 H의 마음을 전해듣고 보이지 않는 세월의 무게와 스쳐간 사람들, 인연들 이런저런 사념이 가득차네. 우리는 같은 나이로는 서로 만날 수 없지만 10년전의 40의 내가 현재의 40의 H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또 50의 H는 50의 나와 만난다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 H가 그리는 10년 후 50의 삶의 풍경이 궁금하네.
편지를 쓰다가 오후엔 공유공간 주차장 담벼락에 벽화 작업을 하는 날이라 내내 나무를 그렸네. 60이라는 인생의 벽에 그늘 넉넉한 나무같은 삶도 좋겠지.
공평하게도 우리모두 하루씩, 오늘만을 산다는 것이지.
지금-여기 오늘이라는 나뭇잎하나를 그리는 일.
참 H와 EE의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전주나들이 고맙고 반가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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