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7
# LETTER 12 봄엔 냉이튀김을
5시에 일어나 세계 최고의 여성 클라이머 ‘카트린 데스티벨’ 그녀의 책을 한 장 읽고, 푸른새벽 쌀쌀하지만 상쾌한 천변, 재잘거리는 조팝꽃들과 8K 달려 태양을 맞이하고, 씻고 신문보면서 아침 밥을 먹고, 화상으로 4월의 작가 이주란의 ‘한사람을 위한 마음’으로 조찬소설독서모임을 하고, 푸릇푸릇 연두빛 새잎이 나는 가로수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바퀴사이로 미소짓는 분홍꽃잔디를 지나 공유연구공간에 도착해 고소한 커피한잔에 여유를 찾는 아침. 내책상앞에서 보이는 옥상텃밭에 쭈빗쭈빗 귀여운 초록의 잎위로 뽀얀 얼굴 같은 딸기꽃이 피었네. 나의 딸기딸기 2그루에 완두완두콩콩콩콩콩 9개의 완두새싹이 나기 시작했네. 딸기꽃은 흰노란빛 다섯장 꽃잎에 자자란 수술이 마치 속눈썹처럼 어여쁘네. 농부의 발소리에 자란다는 말에 성큼성큼 다가가 발소리에 칭찬을 담아 들려준다. 수선화가 진 옥상정원에는 노란, 흰색, 붉은색 튤립들이 하나둘 피기 시작하고, 봄바람에 홍가시나무 붉은 잎이 경쾌하게 손을 흔드네. 꽃비가되어 내리는 벚꽃에 인사하러 지난 주부터 모악산에 자주 가 초록빛 융단에 꽃길을 걷고 있지. 바람과 비에 날리는 벚꽃만큼 시간은 흩날리고, 다시 오지 않는 날들이 빠르게 흩어지는 봄. 봄볕에 세월을 말려 붙잡아두고 싶지만, ‘하르르하르르 무너져내리는 꽃잎처럼’ 떠나보내는 슬픔, 그래 가거라 외치는 시인처럼 나도 아름다운 벚꽃에 이별을 하고 모악산의 마지막 꽃길을 걷고 있네.
“ 지난 날들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밤 그날들은 지나갔고 다른 날들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모든 것들은 지나간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적이 있었으나 어쩌면 그 사실이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모든 날들을 비슷하게 만들며 살고 싶었다. 나혼자 그런다고 되는게 아닌 걸 알면서도.”
- 이주란의 ‘한사람을 위한 마음’ 중에서
벚꽃이 진자리에는 진달래도 따라 지고, 순한 산철쭉이 피기시작한다. 봄은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쓰는 계절이네. 일주일동안 청소년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H, 지금쯤 여행자의 몸 만들기 프로젝트가 한창이겠네. 일상을 벗어나 시와 운동회, 세상을 보는 다큐멘터리 여행. 무엇보다도 사람을 알아가는 여행, 사람만큼 흥미로운 것이 없지 아마도. 사람이라는 여행지에서 일주일을 함께 한다고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의 ‘섬’ 시 중에서
H 일주일동안 가고 싶은 섬을 가고, 사람들 사이에서 섬길을 따라 서로에게 이어지길 응원할게. 먹방과 먹방러를 보지 않는 모험과 도전 정신으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을 탐험하길 고대할게.
참 내일은 교육하러 용인에 가는데, 역시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처럼, 용인에 사는 H는 여행을 갔네 그려. 3-4월은 프로젝트 공모라 코로나19로 인해 여기저기 프로젝트를 응모하고 있어. 살롱드전북 팟캐스트는 전주시 커뮤니티 지원사업으로 일부를 지원받고, 나도 성평등연구사업으로 지난주 내 연구주제와 계획서를 제출하고 어제 구두면접심사를 보고, 오늘 결과를 통보 받았어. 17팀이 지원했는데 9팀을 선정했어. 공모한 연구주제들이 모두 시의 적절하고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선정되었네. 9월초까지 연구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지. 내가 무엇을 주제로 했을지, H도 알걸.
중년, 노년 여성 1인가구 주거공동체의 필요성과 의미 (부제: 전주시 사회주택을 통한 여성의 주거권 확장에 대한 논의)/ 전주시 여성의 먼지차별 경험과 심리적 디스트레스, 여성주의 정체성 발달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 성인지 관점에서 바라본 교사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전북지역 성소수자 차별ㆍ혐오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노동ㆍ교육ㆍ안전 및 의료이용을 중심으로/ 페미니스트sf소설속의 재난과 코로나19의 지역여성활동가들의 페미니스트라이프 스타일 비교연구 : 일(노동)·삶·관계를 중심으로/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공백이 맞벌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 전주시의 초등학교 저학년 부모 중심으로/ 전주생활문화동호인들의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연구/ 전라북도 중·고등학교 성매매 예방교육 실태 파악을 통한 인식개선 및 효과성 증진방안 연구/ 긴급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의 성평등적 고찰 : 재난지원금으로부터 배제되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서
막상 선정이 되니, 즐거운 (자율노동)일이 (타율)노동이 되네. 암튼 세부연구계획서 제출하고 9월까지 연구활동을 마무리하는 것. 당분간은 연구자의 자세로 살아가볼까 ?
요즘은 중국SF의 대가 류츠신의 ‘삼체’를 읽고 있어. 오바마 대통령이 추천한 책으로 유명한데 총3권이야. 내 뇌가 너무 순수해서 방대한 스타일에 삼체문명, 지구와 우주/가상현실게임, 천체물리학 등 상상력에 위대한 상상력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각각 450쪽, 700쪽, 800쪽이 넘는 분량인데 2부를 읽기 시작해. 1부는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삼체우주의 세계와 지자프로젝트, 인간의 과거의 역사와 철학을 중심에 두고, 인간과 우주의 원리를 엮어낸다. 어떻게 이렇게 쓰지 ? 좁은 지구안에서도 저마다 자신의 작디작은우물안에서 안달복달하는데 우주밖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인간의 삶의 의미를 묻는 글을 쓰는 작가라 완독 후 하드SF의 세계를 되새김질하며 글로 써봐야겠어.
H의 먹방편지를 읽으며, 난 요즘 제주 덕인당 보리빵을 맛잇게 먹고 있어. 마치 가득찬 곶간을 뿌듯해하듯 냉동실에 쌓아놓고 하나둘씩 꺼내 먹는 맛에 만족하며 기뻐하고 있어. 진빵과 곡물빵의 중간, 술빵같은데 고소하고 심심하며 건강한 맛이라고나 할까. 사먹는 빵을 끊고 당분간은 보리빵으로. 삶을 보살피는 자활노동,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고 하는데, 시금치와 무나물을 즐겨만들어 먹고 있어. 참 며칠 전에 아파트 후문 가까운 로컬매장에서 봄나물 봄내음 가득한 취나물을 처음으로 만들어 먹었어. 취나물은 간장으로 양념을 하더라구, 숲을 닮은 향과 걸맞는 약간 씁쓸한 맛에 입맛을 돌게 하는 취나물은 효능도 뛰어나더라고 노화방지는 물론 칼륨이 많아 몸에 염분을 배출해주고 칼슘, 철분, 비타민 A가 많고 비타민A는 배추보다 10배가 많다네. 혈액순환, 노폐물배출, 콜레스테롤 수치도 낮추고 피부노화방지까지....와 대단한 나물이야. 취나물은 3-5월이 제철 지금 먹을 때. 그러고 보니 지난 주 토요일에 아파트 위층지인이 냉이튀김을 해 함께 먹었네. 처음 먹어본 냉이 튀김, 막걸리 한병을 들고 가서 봄을 먹었어. 간단하게 튀김옷만 입혀 튀겼는데 냉이가 난생 처음 만난 비밀같은 맛있는 별미였어. 알만한 사람들만 아는 비밀이었겠지, 냉이튀김. 50평생에 이제 알다니 봄에는 냉이 튀김을 꼭 먹어야 하는 시작이 될 듯. 내년 봄엔 냉이튀김을 함께 먹세.
4월은 푸르른 여백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초록햇살에 마음이 머무는 봄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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