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5
LETTER # 11 상상력과 진달래꽃의 안부를 전하는 봄밤
봄밤, 봄을 도둑맞은 밤일까? 밤을 도둑맞은 봄일까?
문득 3월이 댕강 사라진 듯, 오늘이 25일이라니... 시간에 쫓겨 봄이 달아날까 안달하는 밤.
밤이도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비낀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 김억 시인의 ‘봄은 간다’ 중에서
봄밤은 그리움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꽃향기에 바람이 들었나봐.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는 길 어제오늘 오자마자 시집과, 시를 적은 필사노트에 한참을 머물고, 그리움으로 바람든 마음에 허전함을 달래고 있어. 뭔가 모를 몹시 애타는, 애달픈 마음이 드는 밤. 봄밤의 아름다움의 끝은 슬픔일까? 모든 아름다운 것은 사라질 운명이니, 가난한 나의 시간과 사람이 안타까운 밤.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쓸쓸하고 호젓한 사람이 되었네. 슬프고도 행복한 향기가 나는 봄밤.
많은 사람이 아니다
더더욱 많은 이름이 아니다
오직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나는 오늘 문득 그리운 것이다.
- 나태주 시인의 ‘문득’ 시 중에서
아파트단지앞 벚꽃이 피기 시작했어, 천변에도, 가로수도, 가로등아래에도 곧곧에서 피는 꽃들은 바람이 불면 꽃눈이 되어 날리고, 비가오면 꽃비가 되어 아름다울 거야. 꽃이 질 때면, 내 그리움, 슬픔도 사라질까 ?
나이가 들수록 ‘상상력’은 사라지고 ‘그리움’만 쌓이는 걸까?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H의 지난편지를 읽고 몇일 전 함께한 소설모임이 떠올랐어, 지역의 여성들과 1년에 6명의 작가의 작품을 세권씩 읽는 소설모임인데, 최근에 정세랑작가의 피플티피플, 목소리를 드릴께요, 시선으로부터 3권을 2주 1회 다루고 있어. 모두가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어. 피플티피플은 주인공 50명의 인물의 삶을 촘촘히 직조하는 상상력, 목소리를 드릴께요 속의 SF단편들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발하고 환상적인 세계를 건설하는 즐겁고 경쾌한 상상력, 시선으로부터는 흡인력과 매력적인 서사와 전환의 상상력....상상력의 출발은 호기심, 애정, 관심이 결국 이해, 생각의 크기를 넓게하고 경계가 없는 미지(낯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일까? 그러면 상상력은 心과 愛의 문제인 걸까 ? 세계를 바라보는, 이해하는 心과 愛가 부족한 걸까 ? 내 가난한 마음이 빈곤한 상상력의 원인이었던걸까?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어디로든, 누구에게라도 갈 수 있고 데려다주는 상상력을 갖고 싶은 밤. 언젠가 상상력이 보랏빛 알약에 담겨 섭취할 수 있는 비타민이 된다면 매일 먹어야지. 상상력비타민!
상상력하면 시인을 빼놓을 수 없지, 시적 상상력이란 말도 있잖아. 문학자체가 현실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 상상하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니까. 시인들의 시적상상력, 시상에 대한 재미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는 메모지를 꼭 넣고 다닙니다. 그때그때 생각이 떠오르면 장소를 생각하지 않고 멈춰 서서 그 생각이 떠날까봐 메모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은 적도 많습니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갈 때 사람들이 올라가는데 무슨 생각이 팍 떠오르는 겁니다. 생각이 떠날까봐 딱 멈춰 서 있는데, 뒤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가지를 못하고 짜증을 내는 겁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는 찰나에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뒤에 사람들이 서 있고 내가 타야 하는데 문득 시상이 떠올랐습니다. 눈총을 받는 게 차라리 낫지 싶어서, 옛날같이 연기처럼 날려보내지 않는다는 생각에 버티고 서 있다가 겨우 한 줄을 건졌습니다. 그럴 때의 희열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누가 미친 여자라고 해도 좋습니다. 자기가 정말 붙잡아야 된다는 것을 메모해 두지 않으면 다 사라집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메모한 노트가 지금 수십 권에 이릅니다. 그래서 그걸 보면서 나는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도 메모 부자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참 웃기는 여자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참 행복할 때가 많다 내가 시에 대해서 이렇게 순정을 바치거든요. 그 순정을 시가 알아주었던지 시가 나를 받아줬어요. 옛날에는 내가 시를 받아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시가 나를 받아줘야지 한 편의 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 이 시가 나를 받아주고 있으니까 시와 함께 살면서 어떤 걸 겪더라도 나는 그걸 고통이던 괴로움이던 행복한 괴로움과 행복한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시를 내 생업으로 삼는 게 팔자라면, 시를 팔자로 삼아 세상을 남들이 아무리 빨리 가도 나는 터벅터벅 낙타처럼 걸어가려고 합니다”
- 천양희 시인의 ‘지하철 계단에서 번개 같은 시상을 매만지며’ 글 중에서
뭐니뭐니 해도 자신과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을 창조하는 힘, 상상력-꿈이 중요하겠지. 상상력은 꿈을 담는 마음의 힘, 애정으로부터 크기를 키워가나보다.
H가 공부하는 포스트휴먼 미래주의, 도나헤러웨이의 상상력, 반려종이야기는 나에게도 흥미로운 주제야. 로지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 인간이후의 삶, 요즘 페미니스트SF소설을 읽으면서, 페미니스트들은 포스트휴머니즘의 핵심을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동물착취, 종차별주의. 환경파괴, 기후변화 등 과학기술의 부작용과 인간남성기술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새로운 비인간, 모든 생명체들과의 연결, 연대의 상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어.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는 결국 지금여기 우리가 사는 현실에 달려 있어. 더 많은 여성들이 SF가 놀이터가 되어 오늘을 바꿀 수 있는 세계를 보여주는 즐거운 상상, 코로나19의 재난과 위기 페미니스트들의 적극적인 상상력이 필요할 때. 천양희 시인의 말처럼 H의 배움이 행복한 고통과 행복한 괴로움으로 받아들이고 냥이들의 사랑으로 도나와 로지와 주디스가 안내하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길 응원할께, 가끔 가는 여정의 소식 전해주길.
주말엔 산에 다녀와야겠어, 아직 진달래를 보지 못했거든. 나보다 먼저 진달래를 만나면 안부전해주길, 'H 용인엔 진달래가 피었던가요 ?' 오랜 전 비오는 여름, 덕유산을 혼자 산행을 하던 중이었는데. 지나가던 산행객이 나에게 묻던 말 “솔라리꽃은 피었던가요 ?” 하고 꽃의 안부를 묻더라고 그래서 잊혀지지 않던 말 어느 사이에 나도 꽃의 안부를 묻게 되었네.
동물가족들의 안부와 안녕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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