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7
LETTER #10 고맙습니다.
목련꽃 그늘아래 자전거를 타는 아침일상, 꽃들이 피는 한주, 지난 목요일부터 집을 비운 날들. 돌아와보니, 나몰래 남도의 봄바람이 목련과 벚꽃의 향기를 전해주네. 작년 코로나로 연기되었던 워크샵 교육이 8개월만에 마무리되었어. 오랜만에 게스트하우스에 숙박을 하고, 여성장애인들을 대상으로 16시간 교육을 했어. 별도의 숙박시설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 잠만자고 교육장소로 이동하기에 난 주로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데, 코로나로 10인실은 폐쇄하고 6인실 이하만 운영하고 있더라구, 보통 다인실이라도 혼자지내는 편인데, 내옆 침대에 미국인 여행자가 있네, 코로나에도 정년퇴임한 65세 여성이 장기여행을 다니고 있네, 50리터 100리터 트렁크 2개 장기여행자, 나를 만나자마자 나이를 묻네. 한국문화에 익숙한 여행자. 그녀는 2017년에도 한국여행을 했었고 올해가 2번째 방문이고 코로나라서 오히려 한가하고 좋다네. 정년퇴임전 대학에서 일을 했었고, 여행중간중간 국제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단기 알바를 하면서 여유롭게 여행을 다닌다네. 다음달부터 국제학교에서 2달동안 일을 한다며 은근 수다스러운 할머니. 재미있는 건 한의원을 좋아하고 심지어 이불까지 가지고 다니네. 포스트코로나시대 오랜만에 여행자를 만나 65세 쯤의 나를 생각해 보네. 배낭의 무게가 인생의 무게라고 하는데 그녀를 보면서 길위의 여행자로서 노후를 그려보았어. 트렁크가 아니라 배낭으로 노후를... 그럼에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여행이라면 좋겠지. 그녀의 수다를 듣고 있노라니, 조용하고 적막한 작은 텐트안의 고요가 그리운 밤이었어.
H의 지난 편지를 받고 ‘만남’과 ‘관심’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되네. 둘다 ‘마음을 두는 것’과 ‘에너지’가 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 사람의 ‘출발점’ 또는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구나 싶어. 돌아보니 편하고 익숙한 단골식당의 음식만 먹듯 만남도 관계도 내입맛에 맞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네, 작은 우물안에서도 조차 마음을 두는 관심보다는 까탈스럽거나 미움과 불평불만, 편엽한 기준으로 투덜대며 무관심하지 않았나 싶어. 관계의 강에선 언저리에서만 맴돌다 이해의 징검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반성없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나? 무관심과 게으름이 인식의 사각지대를 낳고, 점점 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고.... 코로나19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불통바이러스’확진자?인셈. 봄밤 홀로 있는 시간, 오래 전 죽비처럼 나를 때렸던 시들을 떠올리네.
그때 왜
김남기
저 사람은 거짓말을 너무 좋아해
저 사람과는 결별해야겠어
하고 결심했을 때
그때 왜,
나의 수많은 거짓말 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저 사람은 남을 너무 미워해
저 사람과는 헤어져야겠어.
하고 결심했을 때
그때 왜,
내가 수많은 사람을 마워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
저 사람은 너무 교만해,
그러니까 저 사람과 그만 만나야지,
하고 결심했을 때
그때 왜,
나의 교만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
저 사람은 너무 이해심이 없어,
그러니까 저 사람과 작별해야지,
하고 결심했을 때
그때 왜,
내가 남을 이해하지 못했던 모습들이 떠오르지 않았지 ?
이 사람은 이래서,
저 사람은 저래서 하며
모두 내 마음에서 떠나보냈는데
이젠 이곳에서 나 홀로 남았네.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신현림
낡은 노트가 책장에서 떨어졌다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나폴레옹의 이 말은 십 년 동안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송곳이었다.
지난 생의 노트를 북북 찟고 어두운 벌판을 오래 떠돌았다.
계속 흘러내리는 괴로운 기억의 계단과
입에 밀어 넣는 수면제 바위와
병원의 냄새는 수없이 목매고 싶게 했다
열심히 살지 못한 날들
실패가 청춘의 곡간(穀間)을 망가뜨린 날들
꼭 실패로만 느껴져 슬퍼한 날들
치열한 반성이 없어 허물이 허물인지를
불행이 불행인지를 깨닫지 못한 날들
쇠창살 같은 젊음의 오만한 이빨들
왜 뒤늦게 깨닫는가 상처는 스스로 만든 족쇄였음을
아픔은 의지가 약한 자의 엄살은 아닌지
그래도 내 아픔의 고압선은 풀지 않으리
잃기 싫어서 우스워서 나만 아픈 것이 아니어서
누가 내게 욕설의 총탄을 퍼부울 수 없나
후회가 두려워 일부를 지웠다
오직 기록한 것만 살아 있는 것일까
살아 있다는 것은 착각이 아닐까
H가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되 타인의 말도 들을 줄아는 조화로운 관계의 기술,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 함께 고민하며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는 마음가짐이 교사로서 중요한 자세아닐까? 잘가고 있구나싶어.
불통바이러스 확진자에게 오늘도 이해의 강을 건너 한사람의 세상, 소우주를 만나는 일-백신은 나에게 다가온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부터, 감사인사를 전하는 것부터 시작해봐야겠어.
“예쁜엽서에 안부인사와 더불어 홈커피선물세트를 보내온 대구의 지인, 택배로 제주보리빵을 생일선물로 보내준 목수친구들. 무선이어폰을 보내준 친구, 옥수수유를 나눠 준 아파트지인, 공유공간에서 음식을 나누며 보살피는 선배, 독서모임 기록을 해주는 후배, 조찬모임 먹거리를 준비해주는 분들, 길고양이 급식소 운영을 도와주는 지인, 친절하고 따뜻한 요가샘, 서로의 삶의 안부들 묻고 듣고 활발한 토론을 해주는 독서모임원들, 빵과 커피를 함께 먹는 공유공간사람들...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고마’와 ‘같습니다’가 하나된 말이라고 하네. 고마는 땅의 신으로 우러르는 신성한 동물 곰을 뜻하고, 고운 또는 곱다도 곰에서 유래된 것이래.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당신은 대지의 신처럼 은혜로운 사람’이란 뜻을 품고 있다는 것. 신현림 시인은 고맙다라는 말은 쓸수록 나 자신도 빛나고, 남도 축복하는 멋진 말이니 마르고 닳토록 써도 좋다고 했어,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면 서로가 더 단단하게 이어진다고. 부족한 내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일, 감사하고 축복함으로써 내면의 솟는 힘을 느낄 수 있고, 진정 자유로워짐이라고.
H와 주고 받는 일상의 편지 글쓰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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