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7
LETTER #3 앎과 앓음다움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습니다’
코로나19덕에 온라인 화상과 편지를 통해 H를 더 자주 만나게 되네. H가 안다는 고정희시인의 시를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았어. 고마우이.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그런데 그게 쉽지는 않습니다’ 매순간순간 쉽지 않아 쉽게 살고 싶은데, 생각하지 않고 쉽게 살면 ‘악’해지고 ‘괴물‘이 되거나,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네, 그 길을 가르쳐 줄 스승을 급구합니다. 서울에 살 때 집앞산 도봉산에 자주 갔었어. 도봉산에는 선인봉, 만장봉과 자운봉 3개의 봉우리가 있어. 그중에 고정희 시인은 만장봉 계곡물에 발을 담그게 한다고 했어. 선인봉에서는 바위를 탔고 자운봉에서는 쇠말뚝을 넘어 오르고, 자운봉에서 낭만길릿지 등반을 했었는데... 계곡물에 발 담기는 험한데....고정희 시인의 세상의 절반 밥그릇이 아직까지도 비어 있기에 25일 밤부터 어제, 오늘까지도 속 시끄러운 날을 보내고 있어, 오래되어 찌그러진 스덴 양재기에 독자갈이 굴러다니며 듣기 싫은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찌그렁찌그렁 거려. 정의당대표 성추행사건으로 2000년 운동권내 성폭력뿌리뽑기 100인위 활동후 20년이 흐른 지금까지. 2014년 문단내 성폭력 해시태크, 2015년 메갈리아, 2016년 강남역살인사건, 2017년 미투의 수많은 가해자들과 조직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김종철 성추행사건까지.... 이 쓰레기들은 끝이 없다. 쓰레기들의 무덤에서 용감한 서지현, 김지은, 장혜영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의 피눈물을 통해 악취나기 쓰레기 산들을 무너트리며 한걸음씩 가는구나싶어. 디지털쓰레기까지...쓰레기를 치우면서 새로운 쓰레기들이 도처에 생겨나고 다시 버려지고....신현림시인은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 나폴레옹의 말을 인용하며 시를 썼는데 “...치열한 반성이 없어 허물이 허물인지를, 불행이 불행인지를 깨닫지 못한 날들, 쇠창살 같은 젊음의 오만한 이빨들” 그녀의 시집을 들추며 쓰레기들의 악취를 잠시 벗어났어.
그 동안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진보의 잘못 보낸 시간, 성평등없는 민주주의와 진보의 민낯을 연일 마주하고 있어. 그럼에도 불행이 아닌 희망의 일상을 연결하는 장혜영의원과 정의당 여성동지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하며 달리기를 했어.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시한편으로 위로했네
너는 약해도 강하다
쉬잇, 가만히 있어봐
귀를 창문처럼 열어봐
은행나무가 자라는 소리가 들리지
땅이 막 구운 빵처럼 김 나는 것 보이지
으하하하하, 골목길에서 아이 웃는 소리 들리지
괴로우면 스타킹 벗듯 근심 벗고
잠이 오면 자는 거야
오늘 걱정은 오늘로 충분하댔잖아
불안하다고?
인생은 원래 불안의 목마타기잖아
낭떠러지에 선 느낌이라고?
떨어져 보는 거야
그렇다고 죽진 말구
떨어지면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어
칡넝쿨처럼 푸른 지평선이 보일 때까지
다시 힘내는 거야
- 신현림의 ‘해질녘에 아픈사람’ 시집 중에서
속 시끄러울 땐 달리기 처방전이 좋지. 천변러너가 되어 달리면서 H의 3번째 편지를 떠올렸어. 이승택의 설치미술? 설치미술은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주어진 공간에 설치하여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미술, 주위배경, 공간에 맞추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데, 회화를 더 좋아하는 나로서 즐겨 찾지는 않는 것 같아. 설치미술을 달리면서 상상하다가 혹 신이 나라는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지구라는 주어진 공간에 설치하여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을까? 하는 맥락없는 상상 이렇게 천변을 달리고 있는 나라는 작품의 제목이 무엇이었을까 ? 바람의 조각 ?
올해 90세 노장 이승택설치미술가였더라구. 덕분에 온라인 서핑을 하면서 작품을 감상했어. H가 인상깊었다는 그의 형체없는 작품 - 바람과 연기, 불의 조각들... 바람의 조각은 나에게는 조금 익숙한 작품이었어. 티벳의 룽다-바람말-깃발이 생각났거든, 티벳 사람들은 서로의 안녕와 축복을 신께 기원하며 5색룽다로 타르초를 세워 신에게 기도하지. 덕분에 나라면 바람의 조각을 무엇으로 했을까? 상상을 하게 했지. 아마 나도 노장이승택작가처럼 룽다-천을 이용-깃발을 했을 것 같고, 또 한가지는 5월 자작나무를 세웠을 것 같아. 나무의 언어가 바람이라는 시가 있어,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바람이 전하는 말이라고, 흔들리는 푸른 봄의 자작나무잎으로 바람의 조각을, 마지막으로는 파도나 파문(물무늬)으로 바람의 조각을 설치했을 것 같아. 바다를 옮겨올 수 없으니 바닷가에서 전시회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 ? 기회가 되면 미술관 순례도 좋은 것 같아. 전국의 미술관 순례라 설레네.
한편 올해의 작가상 2020에서 최근 논란이 된 정윤석 작가의 리얼돌전시관련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어. 작가는 인간의 욕망과 소비를 고발하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질문하고자 했다는 데, 작년의 리얼돌관중석전시에 이어 여성의 성적대상화-리얼돌-여성혐오가 내재된 작품이 버젓이 작품으로 전시되는 불편함이 있어, 도대체 포그노그래피와 뭐가 다른지 ?
H가 스스로의 삶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림을 꾸준히 그린다고 했지. 자신만의 감성-선과 색, 가치관-을 뚜렷하게 가지고 싶어서 그러기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고. 편지를 받고 내가 최근에 관심있게 보는 기사가 생각났어. 최근 한겨레 신문에서 강호에 칼럼리스트를 공모하고 있어. 모집을 위해 신문한켠에 내노라하는 글쟁이들이 글을 왜 어떻게 썼야 하는 지에 대한 자신만의 ‘설’을 기고 하는 기사(한칼 칼럼이 칼럼에게)를 흥미롭게 읽고 있어. 그 중에 한가지를 소개하자면 조지오엘은 글쓰는 이유를 4가지로 말했는데
1) 순전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에고이즘
2) 언어의 아름다움을 고취하는 미학적 열정
3) 역사적 진실을 낱낱이 파헤치려는 역사적 충동
4)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사람들을 이끌려는 정치적 목적. 세상의 모든 글을 아우를 만한 적절한 구분법이라고 소개하고 있어. 내 사정은 미천한 1과 2의 욕망의 콜라보.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그림도 글도 “아름다움은 그냥 오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아름’은 알음이자 앓음이다. 앓지 않고 아는 아름다움은 없다” 혜곡 최순우 선생의 말처럼.
H의 생의 아름다움을 위한 앎과 앓음다움은 무엇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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