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 2 : on my face와 시
2021년의 기쁨이 벌써 도착했다는 반가운 소식 잘 받았어. 적지않은 사람들이 꿈꾸는 날들을 H는 지금 살고 있구나. 조금은 은은한 여유 나른함이 묻어 있는 오후햇살같은 일상같은데...2월부터는 즐기지 못하니 맘껏 누리길 바래. 내가 좋아하는 책중에 버트런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는 데 몹시 서투르다.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는데도 걱정거리에 매달려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사람들이다.” 문장이 생각나네.
오늘은 대한(大寒)이야, 24절기 중 겨울추위가 시작되는 소한(小寒)과 더불어 겨울에 해당하는 절기. 전주는 지난 주 한파와 큰눈이 녹아, 이번주는 따뜻한 날이야. 뭐니뭐니해도 햇살이 주는 온기가 좋아. 지난 주부터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오늘같은 날은 공기마저도 달려달려 빨리 나오라하네. 겨울러닝은 체온유지에 신경을 써야하거든, 추운날씨로 인해 경직된 근육은 부상의 원인이 되기도 해 사전 스트레칭과 사후 스프레칭은 필수. 오후 3시 영상 10도 이상까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 오후 달리기를 해야지.
그림처럼 그려지는 H의 하루일과에 비하면 나는 좀 규칙적인 삶인 듯해. 보통은 6시전에 기상하는 편인데, 갱년기라 4시에 잠을 깰 때도 왕왕있어. 일어나면 먼저 물한잔을 마시고 EBS라디오를 듣거나 라디오문학관 팟캣을 틀면서 바로 베란다로 나가 날씨를 확인하지. 주1회 업로드되는 단편소설작품들을 소개하는 라디오문학관은 나의 최애팟캣이지. 아니면 북카페 종류의 1시간짜리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해. 더불어 아침수건체조와 해맞이요가를 3회 정도 모악산을 바라보면서 하고. 7시가 되면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가져오고, 화초에 물을 주거나, 각각 눈도장을 찍고 말한마디씩 건내고 요즘 정성드리는 풍선초 넝쿨이 잘 올라갈 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을 해, 화초들의 이름이 있는데 이집의 가장 연장자인 집들이 선물로 들어온 고무나무-가이아(내 모든 화초의 첫 번째 이름은 가이아임), 후배가 선물한 스파트필름-기쁨(김점선화가 그림 ‘기쁨’이 밑에 있어서), H와 E가 선물한 스파트필름-타라(침대방에 있어 치유의 여신이름을 붙여주었지) 그리고 우리집 귀염둥이 홍야와 콩자 - 홍콩야자 2그루, 크리스마스에 우리집에 온 노란 가랑고에- 카랑, 코로나19감염병 자가진단을 위한 애플민트-사과, 풍선초와 잔챙이, 염좌 등 아주 작은 다육이 4개(최근에 자라서 분양을 해 화분이 늘어났네) 적다보니 식물식구들이 많구나. 우리집 종적 다수자들이네.
간단히 신문해드라인을 보면서 아침 밥을 먹어, 아침은 빵과 과일이나 간단한 밥과 국, 그리고 주 3-4일 공유공간연구실에 나가는 날은 도시락을 싸고 자전거를 타고 8시쯤 출근을 해. 한 30-40분 정도 걸리는 데, 자전거타는 것 좋아하는 편임, 바람을 가르며 가는 희열. 생각해보면 6살때부터 자전거를 탔으니, 근 40년 넘게 자전거를 탔네. 연구실에 나가면 먼저 아래층 카페에 커피를 사와 먹으면서 1시간 30분 정도 신문을 정독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양한 책을 읽고 쓰려고 노력하고 독서모임이나 팟캣스트 준비를 하는 편 퇴근은 6시 늦으면 9시 자유룹게, 공유공간 사람들과 점심을 함께 먹기도 하고, 짬짬이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하고-요즘 이모티콘을 그리고 있거든.
공유공간에 가지 않는 날은 아침을 먹고 신문을 정독하고, 아날로그 종이 신문을 좋아하는데 매일 신간-책한권이라 여기며 읽고 가끔 필사도 하고 시사팟캣제작을 위해 스크랩도 하는 편이야. 산에 가거나, 산에 가지 않으면 10시 요가를 가고 점심을 먹고 책을 읽고 오후에는 달리기를 해 3-5시 오늘처럼, 신나게 달리고 개운하게 씻고, 저녁을 만들어 먹고 한줄 그림과 글을 쓰고 있네, 자기전에 3가지 감사기도를 하고, 보통 11-12시에 잠을 자.
듣고 읽고 쓰고 달리거나 산타고 먹고 자는 단순한 삶이네. 고전적인 취미가 독서인지라 독서모임이 취미생활의 중요한 만남 중 하나. 독서없는 독서모임은 ‘안고 없는 진빵’이지. 30년째 독서모임을 매번 끊임없이 만들고 부수도, 부숴지기도 하고 망하고 사라지고....반복하고 있지. 그러나 한번 만들면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는데.... 힘들땐 케세라세라⁓ 그래도 자발적으로 창조적으로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 읽고 함께 나누는 쾌락은 좋으니까?
보통은 3개정도의 독서모임 늘 하는 편, 전주에 내려와서 장단기 관심있는 주제로 프로젝트형 독서모임을 2-3개 참여하게된 것이 인연이 되어 지속하고 있지. 월1회와 격주1회를 하고 있어 매월 책을 최소 10권이상은 읽을 수 밖에 없어. 재미있는 책들을 읽을 땐 하루가 넘 짧아.
2021년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은
1) 산책 여성산악인들과 함께 산에 관련된 책을 나누는 독서모임 9명 월1회 (since 2010⁓현재)
2) L reading and changing L들과 하는 월1회 소설모임 4명이상 부정기적(since 2017⁓현재)
3) 아침솔바람 수요조찬 북클럽 여성작가들의 단편소설 월2회 소설모임 5명 (since 2020⁓현재)
4) 비비(비혼여성생활협동조합) 작가별 소설모임 월2회 6명 (since 2018⁓현재)
5) 수요SF페미회 (SF소설모임 월4회 또는 3회 6명 (since 2019⁓현재)
1-3)은 내가 만들어서 좀 더 정성을 들여야 하고, 4와 5번의 소설모임들은 부담없이 참여해 즐겁게 책을 읽고 있지. 덤으로 3-5번의 소설모임은 전주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동내서점주인, 협동조합 실무자. 여성단체활동가, 무형문화원연구원, 시민교육강사, 주부, 프리랜서 디자이너, 회계사사무실 총무, 출판사 직원, 심리상담소 원장, 카페 매니저 등 2-50대 까지의 다양한 여성들. 2021년은 산책 10주년이라 그동안의 기록물을 정리해 뭔가를 출판해야 하는 숙제가 있어. 산책모임은 10년이상 산에서 만난 여성산악인들인들인데 저마다 왕성한 산라이프를 즐기고 있지 지금도 빙벽을 타기도하고 원정 경험도 많고 일천한 나의 산력에 비하면 뛰어난 선배들이지. 산책에서는 분기별로는 야영도 하고 산에서 책을 읽고 토론도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당분간은 화상으로 만나고 있어. 전주의 모임들은 대면을 주로하는 편. 힘든 점이 있다면 독서모임 후 기록을 정리하는 글쓰기 어려움이야, 그래서 올해는 좀 더 기록과 글쓰기에 정성을 들여야지 하는데...
생계의 불안과 위기만 도래하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일과 지적?호기심에 인생을 탕진하며 보내는 삶 좋지 아니한가 ? 이러다가 가끔 현타가 와서 50이라는 나이를 자각하고 주변을 돌아보면 인적물절 자원없는 중년의 홀로있는 나를 보며 자괴감이 들기도 해. 모두들 바삐 자신의 삶의 자리를 단단히 하고 나아가는데, 나만 제자리 걸음으로 같은 자리를 뱅뱅 도는 것은 아닌지 하고.... 어쩌면 책속으로 도피하는 것인지도. 독서와 독서모임으로 승화. 그리고 다시 책을 덮고 나만의 속도로 on my face를 외치며 나를 애도하고 위로하고 반복하고...
아참. 시를 필사한다고 했지, 둘이라는 풍경이 풍요로워 지는 주말을 보내는구나. H와 E의 함께 하는 삶을 응원해. 요즘 난 ‘충일감’(어떤 기운이나 분위기가 가득차서 넘치는 느낌) 단어에 꽂혀있어. 마음속이 가득차는 듯한 뿌듯한 느낌 말이야. 허한가 ? 나는 시와 시인, 시 읽는 것을 좋아하지. 시를 한줄 필사하거나 암송하면 가득 차오르 거든,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허무도 모두 찰나의 생의 아름다움으로 소멸하는 충일감. 시는 영혼의 풍요를 채우는 양식이지. 내 ‘가난한’ 영혼의 8할은 시에게 책임이 있어. 시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시를 생각하면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같아.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제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에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또 이 시를 낭송하면 푸른 숲과 들판의 바람이 나를 스쳐가네. 20일동안 지리산둘레길을 혼자 걸으면서 들판을 가로질러 이 시를 암송하면서 가던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아마도 H가 필사한 시는 앞으로 H의 삶에 함께 살아가게 될꺼야.
덕분에 오랜된 시 필사노트도 들쳐보네. 필사할 시를 추천해 달라고 있는데 난 시는 운명처럼 우리들 앞에 찾아온다고 생각 해. 우연과 필연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게 당도하는 거지. 최근에 필사한 시는 2020년 노벨문학상을 탄 루이즈글릭 시인의 ‘눈풀꽃’이야. 코로나라는 ‘새로운 세상의 살을 애는 바람속에서,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다시 한번 외치게 해 주는 77세 할머니시인. 내가 H의 시를 안내하는 우연의 꼬리가 되나 ?
나의 시 필사노트의 첫장은 백석과 고정희시인으로 시작해.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백석의 ‘흰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 그 한번의 따뜻한 감촉.....사람과 사람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그 한번의 그윽한 기쁨이
단한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평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고정희의 ‘천둥벌거숭이 노래 10’ 중에서
백석이 주는 서정성, 찬란하게 빛나는 가난하고 서글프고 외로운 마음이 나를 울리고, 아픈 상처와 실존의 허무에서 나를 한없이 위로하거든, 그의 아름다운 언어와 운율, 자연과 공존하는 품격이 느껴지는 시. 백석의 서정성을 닮아 자연의 아름다운 위로를 담은 고재종, 이재무, 신경림, 김사인, 고두현, 오규원, 이성선, 정호승, 도종환, 김용택 등의 시도 즐겼어, 하지만 가끔 그 익숙한 서정성에 날카롭게 파고든 수컷의 비리한 어머니정서에 욱하고, 수컷 그들에게만 허락되는 한없는 자유가 주는 불편함에 잠시멀리 하기도 하고, 고정희 시들과 신현림의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로 세척을 했어. 심심할땐 최승자와 김혜순시집을 들추고 미투이후에는 최영미시인의 시집을 다시 읽고 그녀의 시와 그녀가 소개한 마야 안젤루의 시들을 필사하고, 작년엔 허수경시인의 작품들을 많이 읽었네. 최근에 김민정과 김소연시인을 만나는 중,
시는 시가 안내하더라고, 내 경험에 의하면, 주변을 돌아보면 어디라도 시가 있을 거야.
H가 만나 시가 궁금하네. H의 삶에 다가와 조용히 마음을 열게 한 시 말이야.
“마음은 자신에게 공급하는 원료를 아주 놀라울 정도로 잘 혼합할 수 있는 신비한 기계다”
- 버트런트 러셀 (1872-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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