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7
LETTER #6 응원할께
아침에 일어나니, 휙이- 회오리치는 겨울눈보라에 화이트 아웃, 회색빛 블리자드가 입춘이 지나 먼저 온 봄을 저멀리 날려 버렸어, 요란한 바람소리와 함께 싸래기눈이 날리다가 금새 합박눈이 되어 내리네. 변덕 심한 아이처럼 아이스크림에 꽁한 마음이 풀리듯 정오가 되니, 햇살에 말끔이 녹아 이만 총총 사라졌어. 눈보라에 숨은 모악산이 고개를 들고, 아침의 심술을 잊은 듯 천연덕스럽게 나를 내려다 보네. 천변 햇살의 따사로운 유혹에 베란다 창문을 여니, 바람은 여전히 차. 유리문 하나로 안과 밖의 온도차가 이렇게 달라. 예측할 수 없는 날씨를 보며, 환경에 따라 저마다 사람들의 변화무쌍한 내면의 풍경과 마음의 온도차를 생각해보네. H와 했던 어제 화상만남후 후 두가지 정도가 남았어. 해주고 싶은 말인데 첫째는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야 여성, 여성과 같은 약자 장애, 소수자 등은 불평등한 구조와 문화속에서 늘 상처를 받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지, 과거의 트라우마나 고통이 극복되었다고 해도(누군가는 상처가 꽃이 되는 그날까지라고 하지만 상처는 꽃이 되지 않아 옅어져 예전과 같지 않을 뿐이지) 일상의 전투에서 분노나 스트레스, 심리적 탈진을 겪게 돼, 그만큼 내면의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해, 이렇게 일상에서 건드려진 분노의 감정과 감각을 바라보고 잠재우는 작업이 꼭 필요해.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이 있어야 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즐거움, 기쁨을 주는 것, 지지와 연대, 자연과 동물 등 행복감을 몸에 채워서 내면의 역량을 키워야 하지. 먼저 자신을 돌보는 것(자기를 알고 관심을 주는 것)을 중요하게 다룰 것 즉 자기자신 스스로를 더 많이 인정해주고 사랑해 줄 것, 응원,지지/연대하는 사람들속에서 치유모임 또는 커뮤니티에 있을 것, 마지막으로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 문화가 상처의 원인이기에 저항에 동참할 것. 상담자로서 여성들에게 해 주었던 말이야. 두 번째는 작년부터 관심있는 주제 중 하나인데, 밀레니엄세대(대략 1981-1996년 출생)에 관한 이야기, 작년에는 90년대생들의 특징인 ‘개별성-나들의 우선주의’‘경쟁’‘수차화로 계산되는 합리성’ 등에 대한 이해와 다름이었다면, 최근에는 80년대 생들 위아래낀 세대들의 이야기지. 80년대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수혜를 동시에 받고 자란 세대, 한편으로 양극화와 불평등한 한국현실을 겪은 세대지, 80년대 생들의 특징을 이렇게 이야기 하더라구,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한 세대/ 존중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세대인데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이끌어야하는 어려움이 있고, 60-70세대윗세대와 90년대 아래세대들이 가치관과 이해가 달라 언어를 변환, 해석해주어야 한다고. 80년대 생들은 일을 할 때 자신이 성장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조직의 성장과 개인의 성과를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다고. H가 다시 일할 때 조직과 개인이 윈윈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응원할께.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는 중. 그 중에서 온라인 리테일, 우리가 먹고 마시고 여가시간을 보내는 일상의 소비와 관련된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그 소비의 편리함에 사람들은 언텍트 라이프스타일이 익숙해지고 있어. 온라인 화상서비스, 홈트레이닝, 넷플릭스와 왓챠 등 스트리밍 콘텐츠 서비스가 일상화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네. 편지를 통해 H의 최첨단 기술의 소비와 라이프 스타일을 엿보며, 오프라인 중심의 디지털 문맹인으로 단절과 소외의 장벽을 실감하고 있어. 창조적인 시간을 위해 TV없는 삶을 지향하는데, 넷플릭스를 드디어 봐야만, 할 수 밖에 없는 뉴노멀시대가 온거야, TV를 사고 코로나시대에 생존하기 위해 집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세상과 사람들과 연결해야 하는가 ? 대면의 축소와 비대면의 확장속에 소통의 장벽을 넘기위해 넷플릭스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가.... H가 소개해 준 흥미로운 영화들이 그림의 떡이야. 좋은 영화들 추천 고마워. 오래전 TV가이드란 잡지가 있었는데, 넷플릭스 가이드를 하나 만들면 좋겠어. 나의 리스트를 하나 둘씩해 정리해 놓고 보면 좋겠네.
SF소설을 요즘 관심있게 읽고 있는데, ‘승리호’는 보고 싶은 영화야, 도래할 미래, 재현된 우주가 궁금했거든, 또 시공간을 초월해 여성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승리호에 등장하는 주인공 김태리-우주선 선장으로 나온다고 들었는데, SF는 현실너머미래를 이야기하지만 과학(기술)을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사고실험을 가능케해 현실 즉 지금의 세계를 더 잘 보이게 하거든. SF는 현재의 문제를 낱낱이 고발하기도 하고. 우주선 이름이 좀 구리지 않아. 승리호라니 ? 뭔가 국가주의적 냄새가 나는데.....참 H의 20대의 꿈이 문화평론가였구나, 가끔 유트브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소개하는 유튜버들을 보는데,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영화를, 영화소개를 좋아하더라구, 자뻑도 좀 있고, 즐기면서 말이야. H만의 영화, 문화비평을 자주 해주길.
소개해 준 ‘화이트 라이’ 보고 싶네. 언제가 읽은 것 같은데 왜 거짓말은 색으로 표현하냐는 것, 화이트라이 즉 거짓말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선한 거짓말, 진실보다 유용한 거짓말. 사랑합니다 고객님 ?인가 좋고 나쁨의 경계는 누가 판단하는 것인지 ? 반대의 블랙 라이는 악의가 있는 거짓말, 나쁜, 해를 가하는 거짓말. 그럼 새빨간 거짓말은 영어에는 없는 것 같은데, 붉은 색은 불을 나타내는 말로 자주쓰이는데 불을 보듯 빤하다. 자명하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터무니없는 거짓말, ‘제주도가 사라졌어’ 완벽한 거짓말인 셈. H가 말한 ‘거짓말을 해야만 살아가는 거죠’를 읽으면서 오래전에 읽은 아고타 크리스토퍼의 ‘존재의 3가지 거짓말’이 생각났어. 그 작품에선 3가지 화이트, 블랙, 새빨간 거짓말이 난무하거든. 헝가리출신 작가는 2차세계대전의 참혹한 실상을 배경으로 전쟁 후 헝거리 국경의 할머니집으로 피난을 간 9세쌍둥이 형제의 비빌노트의 기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전쟁을 피해 대도시에서 할머니집으로 피난을 온 쌍둥이 형제, 악만 남은 사람들의 세상에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폭력과 거짓말, 살인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하고, 강제수용소에서는 사람들이 불타죽고...성장한 쌍둥이 형제들이 이별과 실종을 겪고, 50년이 흘러 죽음을 앞두고 재회하지만, 전쟁의 절망과 외로움에 쌍둥이라는 존재의 거짓말을 만든 이야기. 아고타크리스토퍼의 거짓말같은 잔인한 진짜세상에서 거짓말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전하는 이야기에서 영화를 봐야 알겠지는 ‘화이트 라이’의 주인공은 ‘화이트 라이’인 것 같은데. 영화속 주인공의 거짓말이 전하는 그녀의 진짜세상은 어떤지 궁금하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아고타크리스터퍼의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는 것에 엄청난 반성을 했지. 또한 그녀의 책 ‘문맹’은 작가로서의 자서전인데, 헝가리 이민자로 스위스에게 모국어가 아닌 제2의 언어로 글을 쓰고, 모국어 특권을 누리고 글을 쓰지 않는 게으른 나를 돌아보게 했지. 기회가 되면 읽어보길 추천 해. 벌써 읽어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편지를 주고 받으며 H와 나의 공통의 관심사를 보니, 글쓰기와 그림을 통해 존재의 불안?을 허기진 영혼을 채우려는 것 같은데, 베이트릭스포터는 선물같았어. 결국 또 지름신이 당도해 그녀의 책을 주문하고야 말았지, 결국은 소비와 소유를 통해 존재의 불안을 극복하는 나약한 인간이 되었네. 만족을 모르고 끊임없이 책소유에 대한 나의 욕망으로 아마존만 배부르네. ‘미스 포터’ 오랜만에 피터래빗의 작가의 베아트릭스 포터(1866-1943)의 피터래빗과 다람쥐넛킨 그림책을 다시 읽어 보았어, 그녀만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담아 그린 따뜻한 동화속 동물들이 반가웠어. 한번쯤 누구나 편지지에, 작은 노트에 그녀의 토끼와 다람쥐 각종 슾속의 동물들은 친숙한 삽화로 만났을 거야. 가끔 의인화된 동물과 치렁치렁한 드레스와 망토가 거슬리긴 했지만 그녀의 재능, 그림과 환경 보호운동은 존경스러웠지. 영국에서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하여 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환경운동이 활발히 펼쳐지는 데,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도 잘 보전되어 있어. 힐탑의 그녀의 정원과 화가이며 동화작가였던 삶과 작품이 한눈에 볼 수 있는⌜베아트릭스포터의 집⌟ 책이 있어. 최근에 ⌜버지니아울프의 정원⌟ 내서널지오그라피에서 그녀의 집을 구입해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해 책을 출판했는데 버지니아울프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어. 작가의 혼이 담긴 집과 정원은 그녀들의 내면의 풍경을 만들고 작품을 탄생, 창조하는 에너지와 자원이 되는 것 같아. 부러웠어. 기회되면 한번 읽어 봐. 보기만 해도 휴식이 되거든
H의 연휴의 풍요로운 문화생활 덕분에 앞으로의 나의 넷플릭스 입문이 앞당겨질 것 같아. 나의 연휴는 긴 잠, 졸리면 무조건 자기와 음식, 산책과 독서였는데, 특별한 것은 하루에 한가지씩 나만의 레시피로 음식에 도전했다는 것 정도. 하루는 로컬푸드에서 구입한 옥수수를 이용해 옥수수스프와 야채감자스프를, 어묵버섯잡채를, 황태떡국 등을 만들어 먹었네, 건강을 위해 잠을 보충하고, 삶을 간소하고 단순하게 사는 방법, 소박한 음식으로 연휴를 조용히 보냈어, 조용한 생활에 일조한 것은 한용운의 채근담, 법정스님의 책들과 오드리 로드의 시집 ‘블랙유니콘’이었네. 돌아오는 38여성대회 기념으로 페미니스트 여전사이자 시인인 오드리로드의 시를 읽고 글을 써서 블러그에 올렸지. 나는 글과 그림 사진 시 등이 함께 실려 있는 여백있는 책을 좋아해. 생각을 필사하기 좋은 책들이거든, 아마도 옛날에 태어났으면 경전을 좋아했을 것 같아. 현대판 경전들이라고나 할까. 생각날 때 마다 여러번 읽으면서 나만의 조급함과 욕망대신 ‘한량’의 은은한 맛과 여유와 마음의 한적함 찾고자 해. 법정스님의 고독에 대한 응답 중 “홀로 있을수록 넉넉한 뜰을 지닐 수 있다...홀로 있을수록 함께 존재한다. 수행자는 어차피 홀로 가는 사람이니까. 고독은 보랏빛 노을이 아니라 당당한 있음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 중에서)
편지가 길어졌네. 언제쯤 어른이 될까 ?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지산은 어른이 되었나요? H의 물음에 도리어 H의 어른이야기가 듣고 싶어지네. H의 마음을 건드려 화두로 떠올린 어른, H를 토탁거린 어른과 H의 세상, H를 침잠시킨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말이야. 화상만남때 잠깐이야기를 했는데, H의 편지를 받으면 몇가지 키워드가 떠올라 글감메모노트에 생각을 끄적꺼려. ‘어른같은 아이, 아이같은 어른’ ‘철이 있다 없다 철이란 뭘까?’ ‘베낭 가득한 그 많던 철들’ ‘소인과 군자’ ‘여성과 어른’ ‘자기를 일구고 타인과 세상을 보살피는’ ‘照顧脚下(조고각하-자기가 서있는 자리, 지금 자신의 현실을 살피는)’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였어. H의 어른이야기와 함께 나누세. 건강하게 잘지내시고 우리의 2월을 위해.
추신 :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데 ‘인디언의 속삭임’에 나오는 인디언들이 부르는 울림있는 12달의 이름을 좋아해. 가끔 자신만의 이름을 붙여보거든 몇가지를 소개해볼게.
2월은
바람부는 달/홀로 걷는 달/기러기가 돌아오는 달/삼나무에 꽃바람이 부는 달/새순이 돋는 달/강에 얼음이 풀리는 달/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달/햇빛에 서리가 반짝이는 달/ 더디게 가는 달/사람이 늙어가는 달/오솔길에 눈이 없는 달/춤추는 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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