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존재하기/달리기와 존재하기

달리기와 존재하기 20 : 삶은 어찌 이리 비껴가며 살아가는가

지산22 2020. 12. 7. 16:26

달리기와 존재하기 20 : 삶은 어찌 이리 비껴가며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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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두달만에 달리기와 존재하기 글을 쓴다. 비로서 몇자 적으면서 달린 존재감을 확인하게 된다. 조해진의 문주라는 단편소설 중에 삶은 어찌 이리 비껴가며 살아가는가 ? ”문장이 있다. 결국 왼쪽 대퇴근육이상으로 한동안 달리기를 할 수 없었다. 조급함에 참지 못하고 몇 번의 달리기는 재활과 노화의 슬럼프로 이어졌다. 대신 조기축구회 주말운동으로 달리기의 허전함을 위로 했는데, 코로나3차 확산으로 이마저 지난 주부터는 전면중단이다. 생애 처음으로 축구단에 입단하고, 입단테스트?를 거쳐 유니폼까지 받았는데, 소풍날 아침 비가 와서 소풍이 취소된 날처럼 허무하다. 삶이 어찌 이리 비껴가며 살아가는가. 연말의 분주함과 떠들썩함은 한참 오래전의 빛바래진 사진 속의 추억이다. 가버린 가을을 아쉬워하며 비껴간 2달의 시간을 천변러닝으로 달래본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조기축구회는 일요일 오전에만 운동을 해 왔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주 3일 아침 6-8시 운동을 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주말 일요일 6-8시 난 운동장 사정에 따라 7-9시에 정기모임을 해왔었다. 함께 축구를 하고 늦은 아침을 먹고 커피한잔을 하고 헤어지는 시간이 11시다. 축구가 사라진 일요일 아침 11. 천변레이스로 뛰쳐나갔다. 이맘때 쯤엔 쌀쌀한 날씨에 러닝복장을 정하기가 어렵다. 차가운 날에는 근육이 경직되기 때문에 부상이 잦기도 하고, 체온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하나라도 더 입거나 두꺼운 재질의 옷을 걸치면 그날따라 땀도 많이나고 갑자기 불던 바람도 사라지고 어찌이리 비껴는지 괜히 운이 없도 없다며 날씨마저 나를 버린다고 원망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하늘과 바람에 나부끼는 천변의 갈대가 경쾌하다. 달리기 전의 망설임은 좋아하는 산에 오를 때와 닮았다. 매번 좋아하는 산을 가는데도, 산에 오르기 전까지 걱정스러움과 심난함이 있다. 막상 오르면 한없이 몰입하며 경외감까지 느끼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쁨과 충만이 가득한데도 말이다. 달리기도 그렇다. 어쩌면 러닝복장과 날씨걱정은 달리기전까지의 주저함, 매번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인간다움? 어찌 이리 매번 비껴가며 살아가는가.

 

천변의 햇살은 반짝이는 잔물결위로 쏟아지는 빛무리를 만들고, 쌀쌀한 초겨울 바람을 흥겹게 춤추게 한다. 나도 느리게 춤추는 러너가 되어 반짝이는 천변레이스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반환점을 돌아오니 정오의 햇살은 오랜만에 나온 러너를 지켜본다. 천변의 사라진 2달이 잡힐 듯 말듯. 낙엽이 다 떨어진 왕벗꽃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흰구름, 추수가 다 끝난 고즈넉한 들판, 비닐하우스 옆 미나리 밭, 홍가시나무의 붉은 잎을 지나 배롱나무들을 지나친다. 개망초꽃 가득했었던 들판을 달리고, 노란금계국이 꽃사래 쳤던 레이스를 지나, 노울이 예뻤던 징검다리를 건너서 집으로 왔다. 달리기는 정직하다. 흐르는 땀 만큼 개운해지는 영혼과 삐걱거리는 몸을 마주하고 겨울에 인사한다. 푸쉬킨의 시처럼,,, 다시 달리는 삶을 위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