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존재하기/달리기와 존재하기

달리기와 존재하기 18 : 흔들리면서 흔들리지 않는다

지산22 2020. 9. 17. 13:45

달리기와 존재하기 17 : 흔들리면서 흔들리지 않는다: 단단하고 다정한 달리기

 

91710k 아침러닝

 

어제부터 내린 비, 비가 내린 새벽천변, 5시다. 일어나자마자 습관적으로 베란다로 어기적어기적 잠을 메달고 유령처럼 서있다. 하늘한번, 천변한번 병든 닭처럼 날씨를 가늠한다. 아침형 인간이라 발딱발딱 잘 일어나는 편인데, 요즘 신체나이 50이라 갱년기 열오름 증상으로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깊은 잠을 이루기 어렵다. 노화와 시간의 무게에 비관과 우울보다는 잠못드는 밤을 생산적으로 보내자고 달리면서 다짐한곤 한다. 지금이 제일 몸이, 신체가 좋을 때 건강할 때라고 몸으로 도전하고 싶은 것을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문뜩문뜩 외로움과 허무가 스멀스멀 짙은 안개가 되어 피어오르는 날이 있다. 객관적인 현실의 날씨가 아니라 주관적인 마음에 짙은 밤안개가 피어오르는 날 말이다. 사람은 제각기 주관적인 마음의 세계에 살며 울고 웃는다. 어젯밤 문뜩 비와 함께 집에 오는데, 초대하지도 않는 손님 외로움과 허무가 짝이 되어 나를 방문했다. 존재의 값 치르는 날인가 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본값인 삶과 죽음말이다. 하루하루 부질없는 생명 같다는 밤안개가 스멀스멀 ..... 짙은 우울의 냄새가 난다. 삶이 가져다 주는 상실과 외로움, 허무와 우울 죽음,의 안개가 끼기 시작한다.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가 있어 다행이다. 흔들리면서 흔들이지 않는다. 달리고 나면 나의 오늘을 단단하고 다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정한 달리기를 하고 싶었는데, 밍기적밍기적 거리다 6시에 집을 나선다. 시원한 가을 아침은 사라지고 비가 잠시 멈춘 하늘엔 곧 비가 내릴 듯 억새사이로 축축한 바람과 모악산자락 짙은 먹구름이 가득이다. 달리기는 항상 달리기전까지 번뇌이지, 막상 달리고 나면 잡념이 사라지고 오직 달리기에만 몰입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다.

 

달리기 책 중에 헤어진 다음날은 달리기만화책이 있다. 이별 후 에 달리기 말이다. 실연과 이별애는 달리기만한 좋은 것이 없다. 물론 외로움과 고독을 떨치거나 만끽하는 것도 예외는아니다. 달리기 책을 읽다보면 달리기가 심신의 만병통치약이다. 달리기의 고전 본투런에서는 인간이 달리기를 멈춘 다음부터 신체의 질병이 왔다고 했고,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는 달리기 예찬의 실용서이다. 또한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에서는 삶의 목표와 희열을 달리기가 증폭시키고, 삶을 완성시키는 그 무엇에 비교되니 말이다. 초보러너인 나의 일상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달리기에 기대어 재난같은 존재의 부질없음을 건너고 있다.

 

다정한 달리기라고 하다보니, 최진영이 생각난다. 최진영작가의 인터뷰들 중에서 그녀의 인정해 주는 다정함이라는 말을 인상깊게 읽고 요즘 곰곰이 생각하며, 내가 그동안 참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조금 더 내안의 군더더기들을 버려야 하는구나....

간섭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옳교 그름을 대 놓고 말하지 않는 거예요. 그 존재에 대한 존중감이 있는 거죠. 그게 있으면 상대와 나를 동일시 하거나 내 것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잖아요. 저는 그게 진짜 소중한 감각인거 같아요. 존재 자체로 인정하는 거. 이애도 그 자체로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라고 보는거요. 저는 밥을 먹고 싶지 않은데 밥을 먹으라고 하는 그런 다정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내게도 식욕이 있고 식성이 있다는 걸 인정해 주는 다정함이 좋아요.”

 

내가 살아온 과거의 레이스와 페이스대로 달릴 수 없는 수많은 날들이 오늘이 되길 바라며

달릴수록 연륜있는 사람이. 쬐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길.

흔들리면서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