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0506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수상작품⌟(2020/문학동네)
2009년 27세의 영문학과 대학교 편입생 희원은 영문학 전공수업 영어에세이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고 매주 강사가 선정한 에세이를 읽고 토론하며 영작에세이를 제출하는 것이다. 희원은 비정규직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편입한 학생. 강사가 선정한 에세이들, 작품도 좋고, 오랜만에 공부하는 것이 좋다. 수업을 받다가 생리로 인해 강사에게 도움을 받아 그녀의 집에 가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로 박사학위를 딴 시간강사는 30대의 어려 보이는 여성으로, 몇몇 작품도 번역하고 자신의 글도 책으로 낸 이였다. 희원은 절판된 강사의 책을 찾아 읽게 되고, 그녀의 글 속에서 자신이 자란 용산과 몇몇 장소의 추억과 공감, 더불어 지적인 자극과 호감을 느낀다. 수업 중 희원의 가족이야기와 일상을 다룬 글 ‘통근’에세이가 발표되고 비정규직 은행원의 일상과 경력단절언니들의 삶, 여성노동현실과 용산화재사건 등이 주제로 토론하게되고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게 된다. 기말고사 주간에 함께 영화를 보고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러던 중 희원은 왜 대학에 다시왔냐는 강사의 질문에 대학원에 가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공부는 대학원이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다는 강사의 말을 듣고 공부할 능력이 없다는 판단으로 받아들이고 상처를 받는다. 강사는 자신도 뒤늦게 대학원에 갔다며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바로 나오라고 조언을 한다. 그러나 희원은 강사의 말에 정교수가 아닌 젊은 여자강사라며 (여자강사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무례)폄하하며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헤어진다. 시간이 흘러 희원은 대학원을 다니면서, 논문을 쓰면서, 강사가 되어 10년의 전의 그녀가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는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라진 그녀를 종종 떠올린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 ” 희원은 사라진 그녀가 쓴 글을 기억한다. “더 가보고 싶었다”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 까지는 온 걸까.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망자 6명 (경찰 1명 포함) / 부상자 23명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 또는 용산 참사로 불리는 이 사건은 2009년 1월 20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이하 전철연) 회원들, 경찰, 용역 직원들 간의 충돌이 벌어지는 가운데 발생한 화재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세입자 2명, 전철연 회원 2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경찰16명, 농성자 7명)을 입었다. 사고당시의 폭력 문제, 용역 직원, 안전 대책, 과잉 진압 여부 등에 대한 논란과 함께 검찰의 수사가 이어졌고, 홍보 지침, 왜곡 시도 등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와 질문들
1. 여성의 삶- 그녀들의 현실, 우리들의 이야기
“ 이것은 내가 서른네번째 쓰는 자기소개서다” 라는 첫 문장 뒤로 그녀는 자기소개서에 쓸 수 없었던, 혹은 자기소개서에 썼으나 사실이 아니었던 내용에 대해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아이를 낳고 퇴사한 첫째언니,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서른 다섯이 되면 더 이상 고용될 수 없으리라는 불안을 지니고 사는 둘째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이 두 언니들과 어떻게 다를 것인지 궁금하다고 썼다. 면접장에서 전원이 남성인 회사 간부들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
“ 나는 재미있는 사람도, 웃기는 사람도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나는 비정규직 은행원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다이어트가 필요한 어린 여자애였으며, 누군가에게는 빠른 일 처리가 필요한 기계였고, 누군가에게는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감정도, 생각도, 느낌도, 자기만의 언어도 없는, 반격할 힘도 없는 인형이었으니까 ?”
책을 읽으면서 요즘 티비에서 외출이라는 한혜진이 주인공인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한혜진이 워킹맘으로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끼고 일을 한다. 자신은 엄마에게 아이를 맡끼고 승진을 하고 자신의 친구는 경력단절로 직장으로 다시 돌아오고 이러면서 둘의 삶이 비교하며 전개된다. 어느날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감기에 걸렸다고 딸은 아이에게 감기가 옮기니 빨리 약을 사먹으러라고 한다. 엄마는 약을 먹고 약기운에 잠이 들고 아이는 그사이에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고가 일어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않는가 ? 엄마는 죄책감에 치매가 오고 직장에서는 여자들은 안된다며 책임감이 없다고 비난을 한다. 이에 주인공인 분노로 “누구보다도 여성들은 책임감이 있다. 아이낳고 직장생활하고 여성들이 왜 책임감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느냐 ” 외친다. 아이가 사고사 당해 일정 기간동안 쉬고 바로 직장에 복귀해서 일하니 이번에 비난을 한다. “ 일을 하면 독하다고 이야기하고, 일을 안하면 책임감이 없다고 이야기 하고 도대체 어디에 장단을 맞추느냐 ”
희원의 언니들의 삶, 비정규직 은행원이었던 희원-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에게 육아, 가사, 돌봄 노동을 전가, 강요하고 이를 수행하지 않거나 못하면 여성들을 도덕적으로 지탄한다. 여성들은 임금노동을 하면서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역할과 의무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퇴근이 없는 삶. 또한 여성들에게 노동은 노동의 가치절하와 빈곤의 문제, 성폭력 등 다양한 문제들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 노동에 대한 댓가로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노동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평가되고 취급되는 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일터에서의 성별권력과 그로인한 성차별은 여성들의 저임금, 비정규직-나쁜 일자리, 임신과 출산, 육아와 돌봄 등 경력단절, 낮은 승진, 해고, 퇴출 등을 일상화한다. 대학과 교수집단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학부에서부터 강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마치 봉권제의 성주-권력자-교수의 더할 것이다.
강사와 희원을 통해 드러난 (성별)불평등한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삶, 사회적인 성역할로 주어지는 육아, 돌봄노동과 고용불안정이 결합되어 여성에게 부과되는 이중. 삼중의 억압적인 현실은 여성개인적인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이다. 사회제도적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변화하기 어렵다. 육아휴직을 내는 (남성)동료들은 아예 승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승진고과가 되는 육아와 돌봄노동-성인지감수성, 성평등을 위한 정책적, 제도적 보완이 되어 실행되지 않으면 개인의 선택이 피해가 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더 이상 개인적인 선택/노력에 두지않고 사회가 응답하여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선배 중에 자치단체의 큐레이터로 시작해 지차체에서 처음으로 계장이 되었다. 남자들은 절차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 계장이 되는 데, 매번 성과를 시장에 내보이고 성과를 입증에 입증을 하면서 승진을 하게 된 것이다. 여성들은 리더(승진)가 되기 위해서는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내가 보기에 그 선배는 하루 20시간이상 일한다). 그럼에도 계장이 되니 권한이 주어지고, 작지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훨씬 덜 받는다고 한다. 결국 여성들을 위한 제도적, 구조적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여성들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해야 하고, 대표성을 획득, 실현해야 한다.
2.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 말하기, 글쓰기-여성의 목소리를 담는 다는 것은 ?
삶에서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고, 누가 어떤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가 ? 자신의 관점에서 말하고자 했을 때 타인의 평가를 우려해 선택적 말하기 방식과 그 결과 토론과 같은 공론의 장에서 자기목소리를 지우기도 하고, 수치심과 비겁함, 용기없음에 후회를 하기도 한다. 용산재개발과 관련한 참사를 다루는 강사와 희원의 목소리(글쓰기)를 따라가다보면, 순응주의와 반대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서사를 갖게 되는 것, 자기언어를 찾고 그 세상의 길이 희미한 빛이더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된다.
” 누군가가 내 말을 끊고, 내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상황이 내게는 익숙했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휘둘리느라 자기목소리를 잃어서는 안된다.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을 갖지말라는 충고로 들렸다”
“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할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 누군가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편으로는 덜 외로워졌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그럴 수 없었던, 그러지 않았던 내 비겁함을 동시에 응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내가 하고 싶은 말,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담았을 때 감상적이라고, 편향된 관점을 지녔다고 비판받을까봐 두려워서 나는 안전한 글쓰기를 택했다. 더 용감해질 수 없었다”
3. 희미한 빛 -자기만의 등불을 든 그녀들을 따라
희미한 빛은 무엇이었을까 ?
주위에 언니들 희미한 빛, 사라진 언니들
우리에게 희미한 빛을 주었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
“ 내 눈에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강해 보였던 그녀가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지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 ”
“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것이 허공이 아니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빛을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다. 그 빛이 사라진 후, 나는 아직 더듬거리며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림해보곤 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도, 나는 그녀가 갔던 곳까지는 온 걸까 ? 아직 다다르지 않았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여기서 “희미한 빛” 이라는 것 희미한 빛을 따라가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자기가 희미한 빛이 될지 모른다는 것. 희미한 빛이었으면 좋겠다. 그 빛은 누군가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 희미한 빛 - 자기만의 등불을 든 그녀들 아침 솔바람들은 주변의 다양한 희미한 빛의 자매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인생의 빛에 대해 생각해 보왔다. 빛이 되었던 주변의 여성동지들-시어머니, 친정엄마, 할머니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끌어오셨다. 그녀들로 인해 나의 삶과 그전의 여성들의 삶보다 나아지지 않았는가 ? 생각해본다. 어디에 있더라도 제대로 살고 있구나, 자기이익을 취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밝은 기운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나도 그런사람이 되고 싶다. 희미한 빛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남에게 저렇게도 살아가는 구나... 자기 가진 것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공헌을 하고 재능을 나누면서 도움이 된다면 희미한 빛이 되어 함께 그길을 가고 싶다는 아침 솔바람님
모두 자매들이 다 희미한 빛이라서 문제가 아닌가 ? 자신이 원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 위계와 권력, 야심을 갖고 확실한 빛으로 비추는 것,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누렸으면 하는 솔바람님
지역에서 여성운동을 한 선배들을 많이 봐 왔는데,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분리되는 사람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개인의 문제로 발목잡혀서 조금 힘들어하는 사람 다양하게 있는 것 같다. 관계도 좋은 것을 같이 해나가는 동지로서 천천히 해나가더라도 가야되는 것이 있는데 쉽지 않다.
페미니스트적인 삶을 산다고 하는데 페미니스트들이 갖는 예민함이 아플 때가 있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가 ? 왜냐면 페미니스트를 산다는 것은 꼭 칼로 해야 하는가 ? 인간 조건에 대한 삶에 대한 따뜻한 공감. 서로를 지탱해주는 빛이 더 있으면 좋지 않을까하는 솔바람님.
책을 읽으면서 스토리를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글을 참 잘쓴고 느꼈다. 감수성과 감정선을 따라 여성들의 삶에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자존심을 건드리며 서로 차이 이질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나와 삶과 내 곁의 자매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작가의 글 중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왔다” 가 남는다. 내 곁의 그녀들로 인해 세상과 사람들로 인한 나의 상처와 고통에도 이만큼 길을 걷는 것은 그녀들의 등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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