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3 # LETTER 28 삶은 비극, 마음이 건강한 9월
전보라는 H의 편지가 속달로 도착했는데, 답장은 파란 가을하늘아래 비둘기행 완행열차에 더디 실어보내네. 허리통증으로 와병이라니, 속상하지?, 몸도 아픈데 자책으로 보이지 않는 마음이 더 다칠 까 걱정이네. 홈트와 산행 등 운동의 즐거움과 건강한 몸에 대한 기대가 컸을텐데, 안타까운 마음이네. 나도 매번 운동을 하면서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는데, 할 때마다 속상한 마음에 사소한 것부터 각종 원망?과 억울함?이 들곤 해서 반복반복해서 부상을 떠올리고 심신을 지치게 했어.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인지라 몸에 대한 소중함과 현재의 감사함을 다시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어. 재활의 시간을 보낸 뒤에는 삶의 작은희열들과 좀 더 괜찮은 몸과 운동을 좋아하는 내가 되어있더라구. H에게도 천천히 여유롭게 오래오래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야. 한편으론 7, 8월 열심히 운동한 덕에 더 심해지지 않고 조금씩 더 나아질 거야. 한가위 추석휴가동안 잘 쉬고 치료잘 받고 회복하길 기원할게. 아침 모악산에 올라 H의 건강과 즐거운 운동라이프를 위해 축복할게. 허리를 편애하는 시간을 갖길....
무릎이 무르팍이 되기 위해서
이문숙
넘어져서 무릎을 다치고 난 뒤
무릎을 편애하기 시작했다
무룻 무릎이라 하면
기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픈 무릎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무르팍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불쑥 솟아난 돌의 미간
서걱거리는 잎을 달고 꼼짝 않고 서 있던
마가목 나동그라진다
나는 엎어져서 깨진 무릎을
들여다본다
찌륵거리며 건너온다
그만 저곳으로 갔던 게 아니다
아직 마가목은 파르스름 흠칠대는 기류를 흘러보내고 있다
귀뚜라미 수염 같은
가슬가슬한
귀뚫이의
마가목 가지는 하나도
헐거워지지 않았다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철제 난간에 저를 뻗어
걸치고 있다
무릎이 무릇 무르팍이 되기까지
꽉 힘주어 일어서기까지
H가 궁금한 나의 추석연휴는 돌아보니 평소와 다르지 않았는데. 책읽고 운동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로컬푸드매장이 문을 닫아 칩거하며 냉장고 비우기를 했다는 정도인데.
추석연휴의 시작은 매년 이맘 때 쯤 2000, 2002년 군산 성매매집결지 대명동, 개복동 화채참사 기념 민들레 순례단 행사에 동참하는 것이네. 화채참사로 무연고 피해여성 2명이 안치된 군산의 임피승화원을 방문했어, 올해는 꼭 성매매매방지법이 개정되어 성착취피해자인 성매매(당사자)여성들은 처벌받지 않고(비범죄화), 피해여성지원강화 하고 성구매자만 처벌하는 노르딕모델이 될 수 있길. 전주로 돌아오는 길에 군산의 명물 이성당빵집과 대북경(해물짬뽕집)에 들렀어. 함께 간 친구가 안내한 해물짬뽕집은 오징어, 전복, 홍합 등등 각종해산물 전골식의 짬봉으로 15년 된 가게더라구. 매콤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일품이었네. 이성당빵집은 1945년도부터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전국에 택배주문까지 하고 있는데 아마 H도 알고 있을 듯한데, 나는 1년에 한번 먹는 셈이네. 여긴 단팥빵과 야채빵이 인기인 듯, 나는 통밀, 보리, 호두 등 견과류가 들어가는 담백하고 고소한 거친 빵들을 좋아해. 이성당은 항상 사람이 많아 구례에 목월빵집만큼 인기가 많아. 계산을 하기 위해 빵집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면 ‘배급줄’같아. 가끔 학생식당같은 곳에서 배식 줄을 서서 밥을 먹은 기억이 있어도, 절박하고 절실한 굶주림의 경험은 없잖아 우리세대에겐. 만약 빵하나만 배급을 받을 수 있다면 무슨 빵을 가져가야 할까? 크고 배부른 빵 아마도 그중에 하나가 단팥빵이었겠지. 온김에 단팥빵도 몇 개사와 아파트지인들과 나눠먹었네. 주말에 축구를 하고 연휴엔 소설책을 읽었어. 추석날 비가 오지 않았으면 지리산 종주를 하려고 선배와 약속을 했는데,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했어. 창밖의 가을비가 전해주는 모악산의 절경과 노란연두빛의 들판을 보면서 차분한 독서를 했어. 10월에는 인도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와 ⟦지복의 성자⟧를 읽기로 했는데, 연휴에는⟦작은 것들의 신⟧의 먼저 읽었어. 이 책은 10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읽으니까 새롭네. 아마도 지난 번에 치마만나 응고치 아디치에 작품들에 나온 아프리카식민지에 대한 역사와 더불어 아룬다티로이의 책은 영국의 식민지 인도의 역사, 기독교, 힌두교 등 종교적 갈등과 공산주의와 카스트계급차별, 여성차별 등을 한가족의 비극과 몰락으로 인도사회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어. 두 여성작가 모두 정치사회적 발언과 글쓰기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네. ⟦작은 것들의 신⟧은 1996년에 쓴 그녀의 첫 번째 소설로 발표하자마자 출간 사흘만에 초판이 매진되고 20개국 번역출간된 베스트셀러로 세계문학계의 최대사건으로 뽑혔다고 하네. H도 읽었을 줄 모르는데,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종교와 카스트계급이 공존하는 격변의 시기 1969년을 배경으로 인도의 케랄라 주의 아예메넴을 배경으로 2주일 동안 일어난 비극을 이란성쌍둥이 에스터와 라헬의 눈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10년전에 읽었을 때는 밑줄친 문장 “늙지도 않는, 젊지도 않는, 하지만 살아도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 쌍둥이의 엄마 암무가 죽는 31세를 표현한 문장이네. 작가의 손끝에 펼쳐진 암울하지만 슬픈 서정성이라고 해야 할까? 혼자걷는 깜깜한 밤, 내가 모르는 암담하고 참혹한 인도의 역사와 현실을 그린 달빛같은 문장들. 어제는 소설속 쌍둥이들이 읊조리던 삶의 교훈들이 잔상에 남았어. 1) 누구에게든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2) 준비해두는 게 상책이야 3) 피부가 검은 사람은 피가 나도 보이지 않는다 4) 그래도 냄새는 난다. 역겨운 달콤함. 바람에 실려오는 오래된 장미향.
사실 1) 누구에게든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는 삶이라는 비극의 속성, 한순간 삶은 달라진다. 2) 준비해두는 게 상책이야,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준비할 수 없으니 이 또한 삶은 비극 3) 과 4) 온갖 차별과 부조리 등 카스트계급과 그에 대한 묵인의 실연實演 중인 역사. 작가가 전하는 인간본성에 가능한 4가지 사랑, 광기, 희망, 무한한 기쁨를 찾아 가는 삶의 비극. “구조, 질서, 완전한 독점을 추구하는 본성 ‘신의 의도’로 가장한 채, 어린 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간의 역사 한 시대가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이들에게 자신을 각인 시킨 것
실연實演 중인 역사”를 고발하네. 소설 속 불가촉천민 파라반 벨루타는 구타•살해를 당하는데 카스트제도는 4계급과 계급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으로 이루어져 있어. 작가는 카스트제도를 “실제로는 사랑의 법칙이 만들어진 그날들에서 시작됐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사랑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받아야 하는 지를 정한 법. 그리고 얼마나 사랑받아야 하는지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세상에서,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역겨운 달콤함이라니. 바람에 실려오는 오래된 장미향이라니.
아룬타디 로이는 첫 번째 소설 후 23년 만에 쓴 두 번째 소설 ⟦지복의 성자⟧를 썼어, 20년동안 정치평론가로 글을 쓰다가 최근 인도의 비극의 현대사를 배경으로 쓴 ⟦지복의 성자⟧가 기대가 되네.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삶의 비극 속에서도, 살아간다는 것, 지금 살고 있다는 것는 기쁨을 잊지 말길. 위로의 시를 보내.
산다
타니카와 순타로
살아있다고 하는 것
지금 살아있다는 건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무사이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갑자기 어떤 멜로디를 떠올린다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너와 손을 잡는 것
살아있다고 하는 건
지금 살아있다는 건
그것은 미니스커트
그것은 플라네타리움
그것은 요한스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알프스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만난다는 것
그리고
숨겨진 악을 주의깊게 거부하는 것
살아있다고 하는 것
지금 살아있다는 건
울 수 있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화낼 수 있다는 것
자유라는 것
살아있다고 하는 것
지금 살아있다는 건
지금 멀리서 개가 짖고있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있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갓 태어난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
지금 어디선가 병사가 상처받고 있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지금 순간순간이 지나간다는 것
살아있다고 하는 것
지금 살아있다고 하는건
새는 날개짓을 한다는 것
바다는 울려퍼진다는 것
달팽이는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네 손의 따스함
생명이라는 것
남은 9월 마음이 건강한 한주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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