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지나 dreaming/쓰기 writing

# LETTER 24 이번주까지만 놀고...해야지.

지산22 2021. 8. 12. 20:45

20210812

LETTER # 24 이번주까지만 놀고...해야지.

 

3달동안 진행된 예술비평학교 수료증을 품에 안고 나오니, 축하라도 하듯 시원한 빗줄기가 지나갔네. 흐르는 시간과 고통, 인간의 망각이란 선물로 이제는 추억의 여름이 되었네. 코로나로 기억되는 여름이 아니라 비평글쓰기의 시작의 계절이 되었어. 언젠가는 夏雨가 되는 비평글을 쓸 수있으면 좋겠네. 여름을 식혀주는 비처럼.

 

H의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 초상화작업, 책읽기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상의 평화속에 사람사는 향기가 찐하게 느껴지네. 사람사는 향기 그 중에서도 찐한 향기가 외로움과 그리움이 아닐까 싶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이라는 종을 잘 드러내주는 특징말이야. 존재 자체의 외로움과 사회적 동물로서의 그리움이라, 한편으론 외로움과 그리움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일상의 평화 또는 풍요로움 ?을 갖고 있다니. 감정의 강이 흐르는 인생의 순간이라면 지금 잘 살고 있지 않을까 ? 아침에 읽은 단편 한 작품이 생각나네. 조간신문을 읽기 전에 짧은 단편을 한편씩 읽는데, 요즘은 전세계의 sf신작 SFnal(2021/허블) 2권을 읽고 있어. 쟁쟁한 sf작가들의 2020년 신작단편들이야. 좋아하는 책과자라서 한편씩 아껴서 먹고 있지. 12편의 이야기가 2권에는 실려 있는데 아닐메논의 에덴의 로봇들이라는 작품이야. 포스트휴먼 즉 인간이 개량화 수술을 하는데, 바로 두뇌를 개량화-두뇌를 정비해서 (감정)충동을 제어해, 두뇌조정기능을 해서 정신건강관련 의학적 면역체계를 갖추는 거지. 소설에서는 포스트휴먼 수술한 사람들 개량인들이라고 부르지, 개량인들을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공포, 불안, 자기연민 등 부정적인 걱정거리들로부터 인간의 복잡한 감정작용을 사랑, 상냥함, 인내와 이해로 쉽게 다룰 수 있도록 해주는 거야. 정신건강면역체계는 사랑, 상냥함, 인내, 이해인 셈인데, 인생의 충격 등 뭐든지 조정할 수 있는 뇌를 갖는 거지. 또한 서로 원하면 개량인들의 두뇌는 서로 연결될 수도 있어서 노래도 같이 듣고, 이야기도 나누게 되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니 과학이 개입해 그 문제를 해결한 거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파악하고자 항상 안절부절할 필요가 없지, 타인의 감정을 알 수 있게 돼, 결국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필요가 없는 사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량인은 자살을 해, 과학기술은 삶을 개선할 수 있었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끌어내지는 못해 죽는 아이러라니. 흔들리는 감정은 살아있다, 살고자 하는 증거인셈인가. 외로움과 그리움은 인간종으로 살아가는 혹은 사람들과 부대끼는 찐한 선물이네.

외로움은 수행와 순례의 인생친구로 삼았으면 좋겠고, 작은 것부터 좀 더 많은 이들을 그리워할 줄 아는 품위있는 삶이면 더 좋겠고 말이지.

 

어젠 오랜만에 축구장에서 열심히 달렸는데, 공을 만나지 못했어. 공사이로 뛰어다니는 나, 가차없이 원치않는 선수교체를 당하고 터덜터덜 축구장 밖으로 걸어나오는 심정. 경기장에 끝까지 머무룰 수 있는 것만으로 영광이겠구나. 흘린 땀만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는 힘들더라고, 나는 개량인이 아니니 자기연민과 열패감으로 마음은 울퉁불퉁 결국 저렴한 비용에 고효율 맥주한캔으로 생의 의지가 불쑥 불쑥, 맥주는 정신건강면역체계 상냥한 평화를 찾았네.

 

9월초까지 연구사업을 마무리 해야 해, 그동안 미뤄뒀던 연구논문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해야 하는데 쉽지않네. 성실한 연구자의 자세로 살아야하는데 시험과 할 숙제가 있으면 더 책을 읽고 싶어. 이번주까지만 놀고...해야지.

낼은 지리산살이 가는 날. 지난 주부턴 새벽에 찬바람이 불더라구. 참 지난 주에는 벌집을 치웠어. 모기장을 치고 차면 꼭 마루 벽한쪽 뒤주에 벌들이 많더라고, 모기장 밖이니 괞찮겠지 했는데 너무 많이 있는거야. 지난 주 우연히 뒤주 안을 보니 벌집이 있었어. 무시무시한 벌떼들. 살충제를 엄청뿌리고 뒤주를 마당으로 던졌어. 죽어가는 벌떼를 보면서 안되는데....살생인데....그러면서도 공포심에 더 많이 벌떼들을 죽였어, 후회하면서도 무서웠어. 그러게 정신없어 하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는데 엉덩이에 멍이 들었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벌들에게 벌을 받은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새벽 지리산에 올라 마고여신께 참회하니 맘이 조금 나아졌어. 멍든 엉덩이도 속죄의 재물로....

 

요즘 난 비빔국수로 여름을 나고 있어, 비빔장소스에 온갖 지리산텃밭야채를 넣고, 소면 중면 가리지 않고 일주일째 먹는 중이네. 선배네 작은텃밭야채들이 풍성해서 앞집뒷집에도 나눠주고 말이지.

이번 주는 지리산 삼신봉에 올라 청학동으로 가 볼까 ? 세석으로 갈까 ? 어디든 지리산 넉넉한 품에서 발길 닿는대로 여름과 가을을 만나볼게.

여름을 맛있게 보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