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5 # LETTER 20 주저리주저리
굿수비의 희열을 느끼고 싶다. 볼을 놓치지 않는다. 구멍이 되지 않는다. 거리조정 - 몸의 무게중심 - 스텝 - 타이밍/ 거리조정 - 몸의 무게중심 - 스텝 - 타이밍/ 거리조정 - 몸의 무게중심 - 스텝 - 타이밍/ 거리 - 공격수와 수비수의 거리조정 → 언제든지 달릴 준비를 하면서 시야를 넓게 뒷발에 무게 중심을 두고 → 옆으로 스텝 하면서 공격수를 사이드로 몰아 → 타이밍 - 볼을 뺏는 타이밍 슈팅 블로킹 공을 뺏는다. 혹은 걷어낸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내몸이 반응하는 것은 낮과 밤만큼 다르다. 지난 주 내 축구수비에 관한 영상을 보다가 막상 축구장에 들어서면 상대편 공격수에 끌려다니고, 스탭도 꼬이고 타이밍도 늦고 우왕좌왕 땀흘리며 뛰어다니기만 해, 어젯밤에 공격수의 슛을 걷어내고, 미친 듯이 쫓아가 공을 뺏고 패스하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넘어지고 일어나 또 달리고..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아프다. 넘어져서 무릎과 팔꿈치의 생체기까지, 아마도 시합 중에 공격수의 공을 걷어낼 때 다친 것 같은데 시합이 끝나고 집에 오니, 밤 11시 멍이들고 부어오른다. 밤새 냉찜질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보라색 멍으로 옷을 입었네, 휴 또 부상이네. 결국 정형외과를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네. 실금이 의심되기는 하는데, 일주일 후에 한번 더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하네. 어제까지만 해도 더 축구를 잘하고 싶어서 안달이었는데, 오늘은 걷고 함께 달리고 훈련에 참가하지도 못하는게 속상하네. 상대팀 슈팅불로킹을 하려고 노력했는데, 부상으로 당분간 내축구자체를 블로킹 해버렸다. 삶은 비극, 슬프고 잔인하다.
주저리주저리, 안타까운 마음에 축구넋두리로 편지를 시작했네. H의 엄지손까락은 잘 계신가 ? 안부를 묻네. 2번째 페미니이력서에 담긴 H의 젠더 트러블, 젠더의 비정체화에 대한 글과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한다는 소식 더구나 주제별 페미니즘 관련된 소설과 인문학을 다룬다고 하니 흥미로운데, 재미있는 배움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 되길 응원할게. 마사누스바움(정치철학자)은 소설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삶을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함으로써 상상력을 넓히고, 나아가 공적인 삶이 요구하는 판단을 보다 잘 내릴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을 명쾌하게 보여준다고 말했어.
“ 나의 중심 주제는 타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에 해당한다. 문학작품은 일반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의 입장에 서게 하고, 또 그들의 경험과 마주하게 한다. 만약 우리가 소설을 주의 깊게 읽었다면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다”
“ 문학을 통해 세상의 불의와 참상을 목격한 이상, 고통받는 타인의 얼굴을 마주 본 이상, 이제껏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와 소설, 즉 문학의 힘을 바로 이런 것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희망과 도래하지 않는 세계를 꿈꾸게 하는 ...”
-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정의’ 중에서
그녀의 글을 읽고, 소설을 더 가까이 두게 되었어, 소설읽기를 통해 인간이 처한 다양한 조건에 대해 성찰하고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눈, 안목을 기르고 싶었거든. 최근에 비평강좌를 들었던 내용 중에 레비나스의 “타인의 얼굴은 ‘나’에게 일어나는 ‘윤리적인 사건’이다”라는 말이 생각나네. 얼굴을 알면, 타인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막연한 대상이 아니라 관계가 형성되어 공존, 연대를 위한 시작이 되지 않을까. 종종 책과 함께한 모임의 소식 들려주길.
H의 편지를 통해 익숙한 페미니즘을 나의 언어로 말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네. 페미니즘은 나에겐 ‘나에 대한 이해’와 ‘세상에 대한 질문과 지향’을 던지게 해 준 ‘빛’이지, ‘인간’ ‘여성’에 대한 질문과 ‘내가 원하는 나’, 나는 ‘누구’와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 ?’에 대한 것인 셈이지. ‘누구’와 ‘어떻게’가 조금씩 더 확장되어 공존하는 연대의 원을 넓힐 수 있길, 변화를 위한 실천으로 성숙해지길, 멈춰있지 않길 바라며, 살아있는 삶을 살아가길.
예기치 않는 생의 비극(엄지발의 부상)이 오기전 까진 요즘 친족/친족만들기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어. 인간은 누구나 취약한 존재이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건강한 상호의존과 함께하고 싶은 공간과 삶의 풍경을 자주 생각하게 되네. 나, 우리, 친구, 인간과 비인간을 넘어, 반려동물, 사이보그, 새로운 반려, 가족,새로운 친족을 상상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전주에 내려오면서 시작된 고민인데, 포스트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어떤 삶의 연결망을 만들고, 살아가야 할까... 슬슬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찾아 길을 떠나야 겠어. 2년전 백두대간종주할 때 만났던 여성산악인선배가 만든 (보스톤 결혼필이 나는)여성공동체가 있어. 생각난 김에 여름이 가기전에 다녀와야겠어.
장마에 습한 날씨를 지나니 폭염 찜통이 연일 계속되네.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 지치고 힘들수록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안부를 묻고, 서로서로 작은 위로의 마음을 전하길.
시원한 바람, 아이스커피, 비빔국수, 수박, 읽고 싶은 책, 즐거운 대화, 맛있는 한식, 아침 모악산, 천변의 저녁놀, 달빛 축구장, 편지, 선물, 폭포, 옥수수, 나무그늘, 지리산 그리고 맥주의 여름이다.
H의 여름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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