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30 - 0701
#LETTER 19 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주는 즐거움
“시시로 나를 갉아먹던 두려움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충동. 무정하고 불가해한 일로 가득찬 것이 삶임을 깨닫고 순식간에 늙어버렸다고 느꼈던 계절들에 대해서. 삶은 돌이킬 수 없는 것. 지나가버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백수린의 ‘길위의 친구들’ 중에서
5, 6월 백수린의 ‘참담한 빛(2016/창비)’ ‘친애하고, 친애하는(2019/현대문학)’, ‘여름의 빌라(2020/문학동네)’소설들을 읽으면서, 소설속의 주인공들처럼 현재의 내가 지나온 과거의 나와 (나와 관계된 사건의)너를 불러, 지금은 알고 그때는 몰랐던 이야기를 잔잔히 조금은 다정하게 바라보며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생각했어.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야.
“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 ”
- 백수린의 ‘스트로베리 필드’ 중에서
생의 시간이 흐르고 서로의 어쩌지 못하는 것들로 보이는/보이지 않는 경계를 마주하고 적당한 수용(받아들이는 일)과 적절한 체념(견디는 일)으로 조심스럽게 공존할 수 있게 된다고. 비껴같던 우리들의 (대화)과거가 현재에 소환되어 소화되는 것 같았어. 소설을 읽으며 문뜩문뜩 떠오르는 기억들과 내삶의 과거의 너들에게 미안했어,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의 나만의 좁은 우물에서 길러 올린 말의 칼로 그어대는 어쩔 수 없는 나를 돌아보니 씁쓸하고 서글프고 초라하고 부끄러웠어. 그럼에도 가끔 버리지 못하고 칼을 입에 물고 쌍칼?을 손에 들고 뽀쪽하게 날카롭게 까칠하고 퉁명스럽게 침울하고 진지하고 심각하게 던졌던 젊음의 칼사위를.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지금의 나를 보네. 내가 던져던 칼들속에서...
“삶에는 생로병사가 있듯, 사람간의 관계에서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관계가 생로병사를 겪으며 자연사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게 분명하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사로 끝나는 수많은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기습적으로 사멸하는 관계들.”
- 백수린의 ‘길위의 친구들’ 중에서
“ 지금의 나는 아직 늙진 않았지만 더 이상 젊지만도 않다..... 나는 무엇이든 선택을 할 때면
그 대가로 미래를 지불해야 하는 줄 몰랐던 날들이 이미 가마득히 멀어졌음을 안다.”
-백수린의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중에서
할머니, 엄마, 딸 3대의 걸친 이야기 ‘친애하고, 친애하는’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엄마에 대한 딸들의 이야기 결국 엄마도 할머니의 딸이니까. 책을 읽으며 줄을 긋지 못했어. 왠만하면 난 밑줄긋는 사람인데 말이지, 아버지의 딸이 되어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자 하고 살아가지만, 결국 딸의 삶은 엄마의 삶을 담보(그녀들만의의 시간과 애정, 돌봄)로 살아왔거든. ‘우리엄마가 딸/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이었을까 ?’ 주인공 인아의 엄마가 할머니를 바라보는 것처럼, 서로가 닿을 수 없는 무한한 애정과 애증의 관계 그럼에도 딸들은 엄마의 못다한 자유이자 가능성들.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할머니와 엄마의 자유이자 미래를 살고 있는 거지. 할머니와 엄마가 전생에 나의 딸들이었나 ?
“ 시간이 흐르면 꽃이 피고 진다. 그리고 시간이 더 많이 흐르면 마른가지에서 또 다시 움이 튼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단지 그런 것 뿐일지도 몰랐다. 시간의 흐름이 허락하는 선한치유.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시간을 살아낼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그녀는 유리너머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저 나무에서는 하얀꽃잎이 눈꽃처럼 떨어져, 언젠가 너도 볼 수 있기를.”
- 백수린의 ‘시차’ 중에서
H에게 필요한 건 시간, 새끼 손가락 손톱 절반을 다치고 다섯바늘이나 꿔메다니, 놀라고 아팠겠다. 빠른 쾌유를 빌며 위로의 말을 전해. 여름이라 고생이 많겠구나. 생은 불확실과 예기치 않는 사건들의 연속, 그동안 소훨했던 새끼손가락 잘 모시고, 서러움과 우울을 보다는 자본주의 속도전에 벗어나 느리고 유쾌하게 지낼 수 있었음 좋겠다. 작년 가을 난 검지손톱이 아니라 검지손톱안쪽 손가락을 세라믹 칼로 베이글을 자르다가 베였어, 오전에 회의가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피가 멈추지 않아 결국 응급실에 가서 5바늘을 꿰매고 2달을 고생을 했어, 오른손이라 속상하고 부주의한 나를 원망을 했어. 괜히 검지손은 억울하게 다쳐 아픈 것도 힘든데 나의 원망까지 감당하느라 맘고생했지. 가을인데도 2일에 한번씩 병원에 가야했고 다 나을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리더라고, 2달 정도 그런 후에도 한동안 낯선 상처자국을 문지르며 익숙해지는데도 필요한 건 느림의 미학. 시간이 주는 선한 치유,
“이렇게 살아가겠구나, 시간과 함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그런데 그것이 치유일까요 ?”
- 백수린의 ‘참담한 빛’ 중에서
H는 매일매일 소독하고 새끼손톱과 대화하며 새로운 일상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여름이 되길 응원할게.
“예상치 못한 일이 주는 즐거움, 계획이 어그러진 순간에만 찾아오는 특별한 기쁨, 다 잃은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한여름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던 행복의 찰나들”
-백수린의 ‘흑설탕 캔디’ 중에서
수요일밤 편지를 쓰다가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모악산 축구장으로 달려갔어. 주2회 훈련을 하는데 정규훈련은 일요일 오전6시에 하고, 주중 훈련은 운동장 사정에 따라 수요일 7시반에서 10시 반까지 야간자율훈련과 경기를 하고 있어. 지난 주말 정규훈련 때 2시간동안 벤치에 있다가 10분 정도 뛰어 속상했거든, 10분을 뛰면서도 페스미스에 실수연발에 자괴감이 들더라고, 더구나 새로 들어온 신입들이 2-30대 젊은이들, 거기에 축구학원까지 다니며 열심히하고 잘하는 모습을 보니 ‘좌절금지-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나를 꿈꾼다’라는 내 운동 모토(motto)에도 기운이 빠지더라고. 코치앞에 서성이며 눈도장을 찍고 선발요청을 하며 포지션을 얻어야 하는데, 어떤 포지션도 구멍이니, 자신있게 나를 써달라 말을 못하고, 코치입장에서도 승패의 경기이니, 훈련과 경험, 실력이 검증된 선수를 등용하고 싶겠지. 주말 정규훈련 후 몸이 힘든 것이 아니라 무력증에 시달리며, 우울했어. 화요일 아침 분노?의 달리기를 하며, 모든 과정을 즐기자고 마인드콘트롤을 했어. 현재의 나를 수용하고 체념 그리고 나만의 시간,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에 대해서, 벤치의 하늘을, 푸른 잔디를 보자.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난 지금 38번 축구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달리기 할 때, 나이키 런앱을 사용하는데, 아이린이라는 코치가 이런 말은 한다. “기다려주세요. 당신은 지금 달리고 있으니까요!”.
수요일 저녁훈련은 맘편히 갔어. 야간경기장의 벤치를 생각하며.
“생은 수없이 많은 모멸감과 열패감을 선사할 것이지만 그 와중에 아주 가끔 또 영원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할 것이고 또 아주 가끔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할 것이다”
- 백수린의 ‘높은 물 때’ 중에서
이런저런 걱정과 욕심을 내려놓고 편한 맘으로 경기장에 도착하니, 오늘 따라 주전선수들이 일정이 있어 나오지 못해 나까지 총11명이 와 있어. 어라! 삶은 예상치 못한 이벤트! 주전이 되어 경기전후반을 미친 듯이 뛰게 되고 승패에 관계없이 땀범벅인 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는 내가 있네. 축구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미친 듯이 달리는 나로 좋다고
아침신문을 보며 간디학교의 교사의 프로젝트 학습에 대한 글을 읽었어. “프로젝트학습은 학습자를 핵심지식과 이해로 초대하는 공부 과정이다. 어려운 문제나 질문으로 시작하며, 지속적으로 탐구하지 않으면 학습을 앞으로 진전시킬 수 없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의사를 확인하고, 선택을 통해 학습단계를 구성해 나간다. 배운 것을 실제에 적용하며, 성찰을 이뤄가고, 개선점을 발견한다. 모든 활동을 마치면 자신들의 발견과 깨달음을 나눌 수 있도록 공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이병곤의 ”듀이의 ’행함‘, 우리의 ’움직임‘“글-한겨레 2021년 7월 1일자 중에서). H와 수고한 여행학교 그리고 1학기 프로젝트수업의 결과물과 학생들의 발견과 성장이야기가 궁금해지더라구. 다음엔 새끼손가락이 준 새로운 발견의 일상과 한학기의 창조적 결과물과 학생들의 모험이야기를 기대해 볼게.
“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끝인 곳에 이르면 길은 새로 시작된다. 단지 끝을 보기전에는 아무도 그것을 상상할 수 없을 뿐이다.”
- 백수린의 ‘길위의 친구들’ 중에서
여름 유쾌하게 지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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