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reading /즐거운 할머니

김초엽☓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2021/사계절)를 읽고

지산22 2021. 3. 9. 21:46

20210309

 

김초엽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2021/사계절)를 읽고

 

이책은 2018년 김원영의 제안으로 과학을 전공한, 소설가 장애인으로서 고민을 함께하는 김초엽에게 메일을 전하며 시작되었다.

 

1부 우리는 사이보그인가 ?

1장 사이보그가 되다

2장 우주에서의 휠체어의 지위

3장 장애와 기술, 약속과 현실 사이

4장 청테이프형 사이보그

 

2부 돌봄과 수선의 상상력

5장 불화하는 사이보그

6장 장애-사이보그 디자인

7장 세계를 재설계하는 사이보그

8장 슈퍼휴먼의 틈새들

 

3부 연립과 환대의 미래론

9장 장애의 미래를 상상하기

10장 잇닿아 존재하는 사이보그

 

몸과 기계, 기술과 인간의 결합 우리는 어떤 미래를 상상하는가 ? 상상은 현실을 재료로 과학기술이 여는 놀라운 세계를 순진무구하게 낙관하고 긍정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 ? 김초엽과 김원영의 장애와 결합된 삶과 경험의 자원으로 비장애중심주의, 능력차별주의를 너머 이미 현실에서 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 사이보그들의 구체적인 삶에 주목해야 한다고. 장애와 과학기술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인간과 기술문명의 미래를 우리에게 질문한다. 미래의 첨단과학기술의 초인간적인 사이보그들만 익숙하게 떠올리는 나에게 두사람의 낯설고도 익숙한 장애장애인 사이보그를 통해 비장애중심으로 설계된 이상적인 환상의 과학기술의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 현실의 살아가는 동안 장애/장애인/노화와 취약함의 인간들에게 유용한 기술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우리가 도래할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지?

나에게 인상깊은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1)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다

우리모두 언젠가 질병, 노화하고 취약해지고 의존하게 된다. 누구나 손상된 몸, 취약함 몸, 의존적인 몸을 갖게 된다. 사이보그cyborg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e와 유기체organism의 합성어. 사이보그는 기술에 의해 개조된 새로운 형태의 인간으로 장기이식과 약물주입, 기계와의 결합 등을 통해 극한의 우주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증강된 인간의 의미한다.

 

기술문명과 인간이 밀접하게 결합한 이 시대에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 ?

기계와 인간이 결합한다면 어디까지를 인간으로보아야 할까 ?

사이보그는 여전히 인간일까 ?

사이보그 신화는 사이보그 현실이 기계와의 불완전한 동거, 즉 불화에 가깝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기술에 의해 새롭게 탄생할 새로운 인간 포스트 휴먼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변화하는 미래사회에서 장애는 결국 무엇이 될까?

과학과 기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기술에 대한 낙관과 긍정 트랜스 휴머니즘트랜스 휴머니즘이 인간의 죽음과 질병, 장애의 종말을 내세우는 것의 문제점은 언제나 미래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을 기계, 기술, 환경과의 복잡한 상호작용에서 일상을 경험한다. 장애인 사이보그는 포스트휴먼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렇지만 현실의 진짜 사이보그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포스트 휴먼도 사이보그도 공허한 상징으로 남고 말 것이다

 

장애인 사이보그의 삶은 우리의 취약함과 의존성이 어떻게 기술과 관계 맺는지 보여준다.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불완전함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술의 단서를, 우리는 그 관계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장애와 장애권리운동

장애는 사회적 장애물과 사회적 억압의 문제이지, 손상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순위는 구조적인 변화에 있으며, 개인을 사회적 규범에 맞추도록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치료담론은 손상을 개인화하고 병리화하는데, 손상은 결함이 아니라 차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장애란 단지 신체의 기능적(도구적) 역할을 결여한 상태가 아니라, 그 몸을 본 사람들이 비정상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할 때 비로소 장애가 된다.

장애는 손상된 몸을 가진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손상과 상호작용하는 사회 및 환경이 어떤 몸을 장애화하는 것. 장애를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가진 개인만의 문제로 규정하는 의료적 모델에 맞서 손상을 장애로 만드는 사회구조 자체를 바꿔야한다.

장애를 단순한 결함이 아닌 어떤 가능성과 다양성의 자원으로 이해 하는 것. 장애를 무리하게 치료하고 극복하려는 태도에서 자유로워지고, 나아가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수용하고 몸과 정신의 다양성을 긍정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20세기 후반의 장애권리운동의 이념이다.

 

3) 과학 기술의 지식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

과학기술학은(STS)은 과학과 기술, 사회문화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관련된 복합적 맥락의 총체로 바라본다. 과학과 기술 지식은 문화, 정치, 경제적인 맥락 속에서 생산되고 구성되며, 그렇게 생산된 지식은 또 다른 질문과 문제를 만들어낸디. 과학과 기술이 중립적이고 색관적이라는 오랜통념을 깨드리며 기술지식의 생산에 관여하는 권력을 해부한다. 과학과 기술지식이 생산되고 이용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 대담에서 김원영은 인간의 어떤 필요에 초점을 맞춘 테크놀로지를 개발할 것인가는 결국 정치와 경제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이에 더 적극적으로 기술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4) 기술은 장애의 종말을 가져올까 ?

장애는 신체정신의 손상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제한을 말하는 것이지 그자체로 질병은 아니다. 문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손상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의 지배적인 관점이라는 것이다. 치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관점은 현실에서 장애인들이 지금보다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워버린다.

 

기술의 발전이 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관점-테크노에이블리즘 Technoableism은 기술낙관론에 기반한 비장애중심주의다. 테크노에이블리즘은 장애인들이 실제 삶에서 가가의 기술이 어떻게 느끼고, 상호작용하는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지금 이곳의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고통과 장벽을 해결하는 일을 언제가 기술이 발전할 미래로 자꾸만 유예한다.

 

장애가 사라진 미래가 올 수 있을까 ? 비장애중심주의 즉 능력차별주의는 취약한 몸, 의존하는 몸에 대한 혐오이며, 건강하고 탁월하고 독립적인 몸을 훨씬 더 가치있게 여기는 관녀미다. 취약하거나 건강한 몸으로부터 산출되는 능력은 언제나 상대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능력차별주의가 미래에도 지배적인 이념으로 남아 있는 한 어떤 몸들은 늘 멸시의 대상이 도니다. 아무리 발전한 미래라도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미래의 기술, 미래의 과학은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장애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결함없는 완전한 기술을 거머쥘 수 없고 불멸에 도달할 수도 없다. 대신 우리는 다른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바로 능력차별주의를 끝내는 것. 그것은 손상과 취약함, 의존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5) 장애의 미래 상상하기-사이보그 중립

사이보그는 언제나 멸시와 우월 사이에 위태롭고 불안정한 존재다. 그렇다면 트랜스휴먼의 최전선에 서 있는 아이콘이 아닌,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상을 찌뿌리는 소외된 기계인간도 아닌, 단지 인간이 가진 하나의 중립적인 특성으로서 사이보그성을 상상할 수 있을까. ‘사이보그중립에는 몸의 위계를 줄 세우고 적합한 몸만을 세계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정상성 규범에 저항하는 일이 전제된다.

 

모든 사람들이 유능한세계보다 취약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제 자신으로 존재 하는 미래가 더 해방적이지 않을까? 어떤 손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미래보다는 고통받는 몸, 손상된 몸,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몸들을 세계의 구성원으로 환대하는 미래가 더 열려 있다. 건강하고 독립적인 존재들만의 세계가 아니라 아프고 노화하고 취햑한 존재들의 자리가 마련된 시공간. 서로의 불완전함, 서로의 연약함, 서로의 의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세계.

 

6) 잇닿아 존재하는 사이보그 -연립이라는 삶의 조건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이 언제나 비극은 아니며, 누군가를 돌보는 삶도 그저 동정의 대상이나 숭고한 예찬의 조건으로만 이해될 수 없다. 돌봄은 관계의 문제이므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결여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한 기술에 열광한다면, 자칫 서로에 대한 착취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 돌보고 돌봄을 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기술이 아니라, 돌보는 일을 돕고 돌봄 받는 사람이 더 잘 돌봄받도록 돕는 기술도 가능할까? 인간의 의존성을 더 잘 의존하도록 반드는 기술.

 

돌봄 테크놀로지, 반려 로봇이 우리곁을 지킬 때 우리가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지나치게 잃어버릴 우려는 없을까 ? 우리는 사생활을 지닌 개인이 아니라 그저 안전과 보호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돌봄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노인들의 사회적 접촉기회를 앗아갈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를 실제로 만나는 대면상호작용 가치를 포기해도 괜찮을지 ? 서로의 차이속에서 열려있는 상호작용의 장에서만이 가능한 우정, 환대, 사랑과 연대의 만남들 포기해도 좋을지 ? 돌보는 기술이 지향해야 할 바는 개인을 다른 존재와 잘 연결해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들의 협력과 연대, 연결을 넘어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타자와도 잇닿는 연립이라는 삶.

 

장애를 디자인하는 사례, 사이보그디자인, 모두를 위한 디자인 등 세계를 재설계하는 사이보그의 다양한 사례들, 크립-사이보그 등을 인상깊게 읽었다. 또한 김초엽이 소개한 sf소설들과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자들의 책들(테크노 페미니즘/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계획된 불평등/ 사이보그로 살아가기 등)과 김원영이 소개한 장애 정의와 장애인권리운동, 장애인 사이보그의 역사와 개념들과 사례, 사진들 통해 장애에 대해 개념의 이해로부터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기술이 가져다 줄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 현재의 삶에서 질문을 이어가야 하는 중요성을. 비장애중심주의를 넘어 장애, 손상, 취약함의 태도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