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reading /소설읽는 밤

sf 5: 김초엽의 '관내분실 '

지산22 2020. 2. 20. 18:10


20200219 

sf 5 : 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과 함께

                                                              수요조찬북클럽의 2월의 작가

 

엄마를 만나러 도서관에 갔는데...,엄마가 없다...관내분실


아침솔(수요조찬북클럽) 2번째 모임을 맛있게 시작

오랜만에 내린 폭설과 추위가 물러가고 아침의 고요가 여유있게 다가오는 2번째 북클럽, 싱그러운 샐러드와 옥수수로 풍성한 조찬, 반가운 뉴페이스까지 맛있게 시작한다. 2월의 작가 김초엽(93년생)관내분실이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대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북클럽원들의 이어달리기를 하듯이 스토리텔링을 하며 책속으로

지민은 임신을 하고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난다. 수십년전부터 사후마인드 업로딩이 보편화되어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미래의 도서관엔 책 대신 망자들의 기억과 행동패턴을 마인드업로딩으로 저장(마인드는 한 사람의 일생에 이르는 정보모음으로 기억들이 언어화할 수 없는 형태로 저장하여 마인드마다 일종의 인덱스를 붙이는 방식으로 마인드를 분류하여 저장)한다. 엄마를 만나고 싶어 도서관에 갔으나 관내분실도서관 어딘가에 있으나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가족 중 누군가가 엄마의 인덱스를 지워 찾을 수가 없다고. 엄마의 마인드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엄마를 찾을 수 있는 엄마만의 기억, 물건/유품을 찾아야 한다. 결국 지민은 엄마의 마인드를 찾기 위해 남동생과 아빠를 찾아가게 된다. 남동생은 이제 와서 엄마를 왜 찾냐고 반문한다. 과거 지민은 엄마의 산후우울증으로 서로를 못견뎌하고 관계를 단절했었고 엄마가 죽은지 3년동안 한번도 찾지 않고 지냈었다. 모녀 사이가 힘들고 괴로웠는데 이제 와서 왜 나는 엄마를 찾을까 ? 결국 지민은 아빠 통해 엄마의 흔적을 찾는다. 결혼 전 북표지디자이너로서 엄마, 그녀가 만든 책을 통해 엄마를 찾고 마인드에 접속하게된다. 작은 서재에 있는 엄마의 모습, 지민의 엄마이기 전에 김은하로서 사랑했던 것들, 자신의 삶을 구성했던 것.... “무슨 말을 하더라도 엄마의 진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 엄마를 이해해요”.

 

인간의 마인드를 업로딩한다 ?

언제든지 도서관에 가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재회를 할 수 있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본 미래의 세계, 도서관에 가면 죽은 자들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당신은 과연 사후 마인드 업로딩을 할 것인가 ?의 질문으로 함께 나누기가 시작되었다.

 

: 인간의 마인드를 어떻게 컴퓨터안에 다 집어넣을까? 그 마인드가 그 사람일까 ? 아닐까 ? 그렇게 상상을 해 본 것이 아닌가 ? 이런 작품의 소재가 신선했다. 한편으로 인간의 뇌가 실은 컴퓨터 안에 있고, 마인드로 존재하는 엄마를 찾으러 간다고 했지만 결국 그 마인드로 만나는 엄마는 자기 머릿속에 엄마를 판단하고 찾은 것은 아닌지 ? 머리 안의 기억 된 엄마를 다시 리셋하는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닌지 ?

 

삶은 단절(죽음) 이후에도 계속 삶일까?

삶과 죽음, 인간이란 무엇일까 ?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물질은 무엇일까요 ?

인간의 삶의 단절/죽음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 죽음은 축복이지 않을까 ?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게 살길 바란다면 저주가 되지 않을까 ? sf 소설을 읽다보면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질문 중에 하나 인간이란 무엇인가 ?” 였다. 인간의 유한성과 불완전성을 포기하는 순간 파멸하지나 않을까?

 

: 죽음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지구상에 사람의 개체수도 넘 많아서 문제가 너무 많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데 죽은 사람 데이터까지 남겨서 오염시키다니... 죽음이라는 것은 굉장히 인간에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끝나는 거 잖아요. 그런데 그걸 산 사람들을 위해서 이어놓는 것. 저는 부모님의 데이터를 업로드하지 않을 거예요.

 

: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마인드를 통해 보관, 저장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망자들을 마인드 업로딩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끊임없는 욕망인 것 같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 홀로그램을 통해 가상의 현실에서 엄마를 만나는 것은 마치 엄마/ 엄마의 뇌를 AI로 인공지능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엄마의 기억과 행동패턴을 저장해 자기가 힘들 때 와서 쉽고 빠르게 위안이나 이해를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 나라면 사후 마인드 업로딩, 마인드를 저장하고 싶지 않고 싶다. 마인드를 남기는 대신 잊혀지는 것, 인간은 유한한 존재, 그 유한한 생명(나약함, 불완전성 그럼에도 아름다움과 소중함) 그리고 죽음이 있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 이렇게 저장된 마인드와 인공지능과 무엇이 다를까 ? 죽음은 인간을 성장, 성찰하게 한다. 마인드도서관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인데 이 도서관은 무한을 꿈꾸는 인간의 탐욕? 욕망이 아닐까 ? 엄마의 마인드를 업로딩한다는 것은 엄마의 뇌를 AI로 만드는 것 같았고 AI에겐 영혼이 없다. 살아있는 생명이 갖는 영/영혼을 믿는 편인데 책속의 문장이 와 닿았다.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는 물질은 무엇일까요?” .

 

: 부모님 두분이 다 돌아가셨는데 죽음으로 단절되었다고 느끼지 않아요. 그냥 이 햇빛속에 공기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단절이 되기는 하지만 우리 안에 있다. 그래서 저는 마인드업로드를 굳이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주와 인간의 탄생과 순환 그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나 ? 두분의 부모님을 보내드리면서 제가 경험한 죽음은 전체 우주의 흐름으로 흡수되는 느낌...아 이 우주만물에 이 공기 이 해빛 속에서 우리 부모님이 계시는구나, 이렇게 느껴지는 것이 이 천체 우주의 순환의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것이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마인드 업로딩되어 도서관이나 매장무덤에 있지 않고 우주공간의 어딘가에 에너지로 존재하지 않을까 ?

 

사랑할 수 없는 관계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엄마와 지민은 더 불행해 진게 아닐까 ?”

: 부모와 자식, 엄마에게 느끼는 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사랑이라고 하기에 너무 사랑이 아닌 것 같을 때도 많고, ‘잘가요 엄마라는 극본 내용이 맴돌았다. 우울증이 걸린 딸이 세상에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엄마는 자신의 뭔가를 이야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는데 엄마와 끝까지 소통이 안되고 결국 권총 자살을 한다. 죽기 전에 나 죽을 거야 문 닫으면서 제발 죽지 마라고 하면서 소설내내 되풀이된다.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저사람이 나를 이해해주는 것에 너무 집착을 하기 때문에 서로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 정말 사랑해야 하는 사이 많나 ?

 

: 부모님과 정말 인간적인 교류를 해야 하나 ? 회의감이 든다. 원가족과 진실된 교류를 하는 것을 멈췄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부모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 말고 인간적으로 어떤 연결이 끊어졌다고 느끼기에, 부모님은 나란 존재에 대해 알고 싶고 궁금해한다고 존중하기 보다는 부모님의 원하는 모습으로만...해야 한다는 화가 나고 답답하다. 작가의 에필로그에 엄마와 아빠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남긴다는 글을 볼 때 이렇게 부모님이 사랑과 감사를 표할 마지막 사람일 때 이 소설을 쓸 수 있었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회의적이었다. 가족문제에 고착되어 있는 나와는 달리 작가는 계속 탐구해서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 관계를 흘러 가는데로 놓아두면 안되나 ? 나의 세계에 들어와 함께하는 사람도 있고, 들어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는 관계를 꼭 불행이라고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 그런데 그냥 놓아두면 제가 원치않는 방식으로 저의 세계에 들어와요. 거리두기가 안되는 사이가 있죠.)

 

엄마를 이해해요” - 엄마는 딸을 이해하려고 할까 ?

: 엄마의 존재에 대한 것이 와 닿았다. 엄마처럼 있으나 없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 나는 또 어떻게 존재하고 있지? 내가 또 타인의 존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 저도 부모님을 엄마와 아빠로서만 바라볼 뿐이었지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한 존재로서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 잘 모르고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도서관에 찾아가서 엄마를 다시 만날려고 하는 것, 그 엄마와의 만남보다는 오히려 찾아가는 여정, 엄마의 책을 통해 엄마가 아닌 김은하로서 삶, 그리고 남동생, 아빠, 가족이라는 다시 구성되고, 지금 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나를 다시 질문하게 되었다.

 

: 마지막에 엄마를 이해해요 하고 끝나잖아요. 가상현실속 홀로그램에서 손을 엄마가 잡고 그 장면이 너무 답답했다. 엄마를 이해하는 것. 딸들이 엄마를 많이 이해하는 것 같거든요. 진짜 이해할려고 노력하는데, 소설에서 그 다음이 있다면 엄마랑 딸은 다시 싸울 것 같거든요. 엄마는 딸을 이해하려고 할까? 그러면서 엄마와의 관계가 생각나면서 뭔가 이 숨막힘이 전개될 것 같은 생각. 마무리를 따뜻하게 끝나지만 저한테는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고 좀 답답했다. 저는 이게 sf소설이고 마인드 그런 것을 남기는 수단이었지만 저는 엄마와 딸의 관계로만 집중해서 읽게 되더라구요.

 

: 나는 엄마를 이해해요하는 문장이 엄마가 살았던 우울했던 삶을 다 이해한다는 것으로 읽혀지지 않았어요. 한 인간으로서 엄마도 인간으로 내가 아이를 갖고 여러 가지로 고민하면 살았던 지점. 이렇게 고민하면서 살았던 한 인간이었구나라는 것을 아는 것. 엄마 삶을 다 이해하고 아닌 것 같다.

 

: 저는 엄마를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 다른 행성에 살고 있지 않나?, 태양계가 다르지 않나. 제가 10대부터 다른 행성에 거주하고 20세에 엄마/가족을 떠나와서 느꼈기 때문에(빨리 포기한 것일까 ?) 내 행복을 찾아서. 내 행성과 태양계를 찾아서, 다른 은하에 살기에 서로가 무엇을 중심으로 도는가를 알고 각자 살아가는 것이 엄마를 존중하는 것-원가족은 내삶의 영역이 아닌 것, 관계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리를 두고 새로운 태양을 찾아가는 것이지 않았나. 마지막 엄마를 이해한다 그말은 사실은 이해할 수 있을까 ?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임신이라는 모태가 키워드가 된 것은 여성한테 주어진 삶을 지민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하는 출발점이 엄마와의 연결점이 되지 않았나? 이야기 하다보니 이 소설이 굉장히 전형적이었구나 사람들이 이런 것을 좋아하는구나! 사람들에게 익숙한 각본이였구나.

 

: 엄마를 이해해요, 글의 배경이 도서관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요 ?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도서관은 뭔가를 칮아 보고(책과 자료) 이해하고 알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 않아요 ?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소 통속소설(공영방송드라마)처럼 대중들이 생각하는 익숙하고 한편으로 전형적인 주제(엄마--임신)와 마인드업로드라는 sf소재를 잘 버무려만들지 않았나 싶다. 가부장제 사회와 가족에서의 전형적인 엄마와 딸을 보는 것 같아 아쉽다. 엄마도 지민을 임신해서 일을 그만두고 경력단절, 저는 소설속의 엄마와 동일시된 지민이 엄마처럼 산후우울증이 오면 어떻게하지 ? 걱정이 되더라구요. (올 것 같아- 미래에도 산후우울증이 있다니 !) 그 마인드 업로딩의 과학기술은 산후우울증에 적용이 되지 않는 거야 ? (과학기술은 여성의 몸/현실에는 적용되지 않는 독박육아 현실의 연장인 미래라니...)

 

어느 덧 풍성한 조찬과 함께하는 2번째 모임이 끝나간다. 소설을 읽는 모임은 처음이라며 모카님은 각자의 다른 이야기가 모여, 그냥 완전한 이야기가 되는 것을 느꼈다고 소감을 나누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다음시간엔 정시에 와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모임원들. 애쓰셨습니다.

 

봄을 마중하고 겨울을 배웅하는 아침. 2층창가 햇살이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