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마음의 안부를.../모른다/꽃이 지고....(김소연 1)
1. 위로
김소연 (1967∼ )
위로이리라, 수백 년을 더
서로에게 가지로
닿아도 된다는 건
-라이너 쿤제,
⌜“필레몬과 바우키스” 주제의 변주⌟에서
나무는
별을 보며 이미지를 배운다
별이
유독 뾰족해지는 밤
나무들은 남몰래
가지 끝을 조금 더 뾰족하게 수선한다
나무들 정수리는
모두 다 별 모양이다
이동력이 없는 것들의 모양새는
그렇게 운명 지어진다
별이
별과 함께 별자리를 만든 건
고독했던 인류들이
불안했던 인류에게 남긴
위로의 한 말씀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은 몇십 센티미터가
몇억 광년과 다름이 없다
그래도 수백 년을 더
뿌리에게 뿌리로
닿기로 한다
내 나무는 어떨 땐
‘플랜트?’ 하고 물으면
‘플루토!’하고 대답한다
그건 내 나무들만의
비밀한 위트다
2. 마음으로 안부를 묻다
김소연 (1967∼ )
목숨 달린 모든 것들이
빛을 따라
거처를 옮긴다
강가에
불을 밝히고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새하얀 이불 위에
물방개가 수북하다
베갯잎 모퉁이엔
잠자리 한 마리
들꽃들이
오므렸던 입술로 힘껏 벌려
빛을 향해 구애를 하는
아침
그들 깊은 사람을
오래 껴안다 깨어난 이 몸도
기억은 몸에만 남아
뼈마디를 돌봐야 일어서지는
아침
벌릴 것을 다 벌려
헐겁게 앉는다
3. 모른다
김소연 (1967∼ )
꽃들이 지는 것은
안 보는 편이 좋다
궁둥이에 꽃가루를 묻힌
나비들의 노고가 다했으므로
외로운 것이 나비임을
알 필요는 없으므로
하늘에서 비가 오면
돌들도 운다
꽃잎이 진다고
시끄럽게 운다
대화는 잊는 편이 좋다
대화의 너머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외롭다고 발화할 때
그 말이 어디에서 발성되는지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시는 모른다
계절 너머에서 준비 중인
폭품의 위험수치생성값을
모르니까 쓴다
아는 것을 쓰는 것은
시가 아니므로
3. “꽃이 지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 주세요”
김소연 (1967∼ )
할망구처럼
상사화 앞에 쪼그리고 앉아
끄덕여본다
목덜미에 감기는
바람을 따라온 게 무언지는
알아도 모른다고 적는다
바다 위로 내리는 함박눈처럼
소복소복도 없고
차곡차곡도 없었다고
지금은 그렇게 적어둔다
꽃 지면 나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걸지라도
꽃 피면 나오겠다는 약속을
어긴 거라고
오히려 적어둔다
잘했다고,
배롱나무가 박수를 짝짝 친다.
저녁밥 먹으러 우리는 내려가서
고깃집 불판 위
짐승의 빨간 살점을
꽃구경처럼 꽃놀이처럼
양양 씹는다.
: 눈이 내려 눈을 떴다. 몰래 소복소복 내린 눈 위에 아침이 되니 차곡차곡 쌓인다. 시집들사이 김소연의 시집-⌜눈물이라는 뼈⌟(2009/문학과 지성사)-을 손에 쥔 까닭은 첫 번째 시가 ‘폭설의 이유’로 시작되니까 “유리창을 한 페이지 넘긴다/ 나는 하얗게로 지워진다 /지워진다로 정확해진다”.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새해 들어 시라는 양식을 매일 먹자고 약속했다. 오늘도 약속을 지킨 나에게도 잘했다고 박수칠 배롱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거슬리지 않던 4연이 고깃집 불판, 짐승-양양씹는 꽃구경이라니, 탐욕의 육식, 인간의 꽃놀이가 새삼 불편하다. 눈이 내리고 있으니, 흰쌀밥에 정갈한 봄똥 된장국을 먹어야 겠다.
“눈이 내리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 주세요”